적당히 매콤하고 아름다운 능선과 가지 않은 길의 확인
9월 말에야 다시 산을 찾을 수 있었다. 원고도 정리하고 수필도 쓰고 천 년만에 일본 소설 번역까지 하느라 제법 정신이 없었다. 오랜만에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느라 바빠진 것이다. 그동안 무릎이 거의 나은 듯한 느낌을 줘서 400미터를 가볍게 달려보기도 하고 턱걸이 횟수를 늘려보기도 했다. 다쳤던 오른쪽 어깨는 당장 삐그덕거렸지만, 어찌되었든 미약하게 나아지고 있다는 실감을 받을 수 있었다. 느리지만 회복될 것이다. 아마도.
에 일본 소설 번역까지 하느라 제법 정신이 없었다. 오랜만에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느라 바빠진 것이다.
새로이 가기로 한 등산로는 도봉산의 오봉 능선으로 정했다. 도봉산을 몇 번이나 올랐지만 동쪽과 남쪽에서만 접근했지 북서쪽에서 접근한 적은 없었으므로 새로운 방향을 도전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오봉능선은 제법 안온한 길이라고 하니 남을 부를 수 있는 길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물론 허사가 될 확률이 대단히 높지만, 나 혼자만 알아둔다고 특별히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덤으로, 가능하다면 오봉에서 우이봉을 거쳐 하산해보고 싶기도 했다. 작년에 친구들과 우이봉에 갔다가 ‘등산 고수’로 보이는 아저씨 말을 따라 하산했다가 험악하기 짝이 없는 길을 거쳐온 뒤로 그들 중 누구도 등산 따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늦은 일이지만, 그때 택해야 했을 길을 발견하고 싶었다.
9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채비한 뒤 10시반에 출발했다. 새벽에 눈뜨고 간단히 요기한 뒤 곧장 배낭을 챙겨 나가는 사람들이 산 중턱에 올랐을 시간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시간을 남이 대신 걸어주지 않는다는 말로 적당히 넘어가기로 하자.
그나저나 이날은 들머리까지 오로지 버스만 갈아타며 이동했다. 연신내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북한산 옆을 따라 쭉 달리는 기분은 지하철을 선호하는 내게도 뜻밖에 썩 쾌적하고 즐거웠다. 북한산 북쪽으로 넘어가면 그곳은 복작거리는 서울을 거의 벗어난 곳이라 한적한 도로와 산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 한구석이 트이는 듯했다.
12시 19분에 송추 분소 방면에서 버스를 내리자, 서울에서 아주 조금 나왔을 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만큼 한적한 교외 느낌이 났다. 아파트를 제외하면 상가 건물 대부분이 낮았고, 길은 넓었으며, 배경에는 페인트통 도구로 파란색을 찍어버린 듯한 하늘과 산이 자리했다. 인적이 드문 상가 어디에서 나레이터 모델이 호객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나레이터 모델이라니, 20년 가량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점심으로 먹을 소시지와 이온음료를 사고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날의 최고 기온은 29도로 적당한 수준이었으나, 날이 비현실적으로 너무 좋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대단히 강렬했다. 모든 것이 다 선명한 길 아래쪽에는 산에서 흘러나왔을 계곡물이 흘러 미약하게나마 청량한 기분을 선사했다. 아주 멋진 날이지만, 세 시간쯤 일찍 왔으면 압도적으로 좋았을 듯했다.
(서울에서 아주 조금 나왔을뿐이라고 믿기 힘든 풍경)
송추 방면 들머리까지는 30분쯤 걸어야 했다. 계곡 옆에 공터와 정원, 글램핑장 주차장등이 번갈아 나왔고, 이를 지나자 외부인이 거의 유입되지 않는 미국의 시골마을 같은 거리가 나타났다. 이 거리도 지난 뒤에야 오봉탐방 지원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볼 거리가 자꾸 변해서 지루할 틈은 없었지만, 역시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많이 걷는 건 사양이다.
오봉탐방 지원센터 옆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등산로라기보다는 공원 둘레길 같았다. 심지어 ‘울대습지 자연관찰로’까지 딸려 있어서 습지 생태 관찰을 즐길 수도 있었다. 습지의 수풀말고는 딱히 보이는 게 없었지만 확실히 교외의 공원에 놀러온 기분이었다.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산에 가는 길에 습지를 지나게 될 줄이야. 마치 모르도르에 반지를 버리러 가는 프로도 같은 경험이다.
(평생 몇 번 볼 일이 없는 습지를 산에 와서 본다)
그러나 색다른 건 색다른 거고, 내가 갈망하던 길은 아닌 터라 슬슬 맥이 빠졌다. 등산로 분위기가 나질 않았다. 나 원 참. 여기도 북한산국립공원인데 이렇게까지 안온한 길일 줄이야. 이날은 한국 등산화 중에서 최상급으로 튼튼하다는 코오롱의 등산화 2744를 구해서 신고 왔는데, 너무나도 심각하게 튼실한 장비라 텃밭 가꾸는데에 트렉터를 몰고온 듯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등산에 과한 장비란 없다고 주장하고 살아도, 역시 여가용 코스에 전문가 장비를 동원하는 건 약간 남의 눈이 신경 쓰인다.
돌계단도 지나고 1시 25분쯤이 되어서야 아주 천천히 기울어가던 경사가 비로소 걸을 맛이 나는 암릉길로 변했다. 비슷한 크기의 바위만 모아 만든 돌계단과 나무계단, 울퉁불퉁한 바윗길이 뒤섞인 길로, 그럭저럭 완만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힘들기도 한, 아주 오묘한 경사였다. 내가 아주 쉬운 길이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불암산 공릉백세문코스보다 약간 더 심한 경사였지만 결코 어렵다고는 하기 힘든 정도였다. 아마 날씨만 선선했다면 훨씬 낫긴 했으리라.
(걷는 재미가 없지 않은 정도의 길이라 가족들도 많았다)
갈림길이랄 것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도 이 코스가 온화하다고 평할 만했는데, 이를 증명하듯 가족단위 등산객들이 이따금 지나갔다. 체력이 유산소 운동만 종종 챙겨하는 정도만 되더라도 마음을 굳게 먹고 와볼 만한 수준으로 보였다.
그러나 2시 20분쯤 되자 고도가 높아지면서 제법 심한 경사와 난간 깔린 길이 나타났다. 난간을 잡지 않으면 보행에 불안감을 느낄만한 길이라는 뜻이다. 물론 상체를 적극적으로 쓰는 편을 훨씬 선호하는 나로서는 쾌재를 부를 만한 광경이었으나, 반대로 너무나 쉽다고 초보들을 꼬셨다간 적잖이 원망을 들을 법 하기도 했다. 팔까지 쓰면서 이동하는 일을 고생으로 여기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니 어쩔수 없다. 하지만 백짓장도 맞들면 낫고, 내 몸뚱아리의 무게도 팔다리로 분산해서 움직이는 게 이롭다. 그리고 미는 것보다 당기는 게 쉽다는 점에서 난간을 당기며 올라가는 건 아주 편안한 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목적지까지 이렇게 난간을 타고 가고 싶었다.
(난간 덕에 보기보다 훨씬 편안한 길이다)
이 즈음해서 경치가 트이고 먼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산, 다른 방향이라면 대체로 서울이나 근교 도시 풍경이 펼쳐질 텐데, 이쪽은 산지 한복판이라 산 사이의 비좁은 땅에 옹기종기 모인 건물들만 산간 마을처럼 조금씩 보일 따름이었다. 거의 서울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심리적으로 가까운 도봉산에서 이렇게 한적한 광경을 본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나 이곳은 분명 서울 끝을 넘어선 곳이다. 불곡산에서 보는 풍경과 크게 다를 이유도 없는 것이다.
나는 눈에 보이는 저 한적한 거리와 또다른 산도 가보려면 차를 타야 할 텐데 그런 날이 올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데크길과 돌계단등을 지나 높은 능선으로 올라가자니, 보이스카웃처럼 멋지게 차려입은 숲속의 정찰병 같은 남자가 빠르게 능선을 걸어올라가는 게 보였다. 북한산을 관리하거나 인명을 구조하는 요원인듯, 등산객이 묻자 사고가 발생했단다. 나는 불안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 요원의 빠른 걸음 속도에 감탄했다.
3시경에 마침내 여성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간 놀랄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다들 가벼운 차림이고 아이를 동반한 가족도 제법 되었다. 능선이 거의 다 울창한 숲의 그늘 아래 있어서 한가롭게 쉬기에 아주 좋았다. 식사를 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어느 중년 팀은 아예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낮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사패산 정상도 많은 사람이 늘어져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지만, 그곳은 거대한 바위 위라 이렇게 평지의 공원 분위기가 나진 않았다. 유럽의 화가들이 여길 와 봤다면 엄청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능선 끝의 여성봉은 거대 암석으로 된 봉우리로, ‘여성 신체 일부’를 닮아 여성봉이라고 부른다고 설명이 적혀 있었다. 약간 너부적하게 도드라진 두 암석 사이에 갈라진 틈이 있어 여성기를 닮았다고 본 게 틀림없는데, 굳이 뭐가 어딜 닮았나 다 설명하는 건 영 점잖지 못한 짓이라 여겼는지 상세한 내용은 없었다.
(선조들의 작명 센스에 의문이 드는 광경)
여성봉을 구경하고 있자니 지나가는 아이가 “왜 여성봉이야?”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여자 신체 일부를 닮았대.”하고 답했고, 아이가 다시 “어디?”하고 묻자 엄마는 “글쎄.......”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선조들이 약간 더 무난한 이름을 지었으면 좋았으련만, 솔직히 말해서 나도 언덕길을 한참 오른 끝에 발견한 봉우리 모습을 보고 더 고상한 연상작용에 성공했을 것 같지 않다. 지쳐빠진 와중에 ‘천지창조와 낙원의 봉우리’나 ‘세계의 기원 봉우리’ 같은 생각을 하라는 건 과도한 요구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산객 대부분이 여성봉을 정상으로 여기는 것인지 거기부턴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적하고 평탄한 오솔길이 다시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숲에서 슬쩍 옆으로 나가서 위를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오봉이 있었다. 마치 누가 노리고 만들어놓은 듯 각각 큰 바위가 올려진 다섯 봉우리가 바로 오봉이다.
(오봉으로부터 뻗어나온 산줄기와 광활한 대지의 모습)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걷자니 3시 45분쯤에는 119 산악구조대원 대여섯 명을 보게 되었다. 그들 중 두 명은 거대한 환자 이송용 들것을 지고 있으면서도 아주 날랜 동작으로 움직이다 멈추길 반복했는데, 얘기하는 걸 듣자니 넘어졌다가 움직일 수 없게 된 신고자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 파악이 힘든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모든 게 남일 같지 않았다. 아버지가 전직 소방관이었고 어머니가 넘어져서 복합골절을 겪은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속에서 사고를 당한다는 건 정말 본인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에게 비극이다. 그렇기에 히말라야를 가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좋은 등산화를 신고 불 일도 없는 호루라기와 여벌옷 따위를 챙기는 것이다.
그나저나 사고를 당했다고 가정하고, 산속에서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알리려면 어떡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119 공식 앱을 쓰는 것이다. 다음으로 확실한 게 산행중 종종 보이는 ‘국가지점번호’ 표시목을 보고 알리는 것인데, 사고를 당해서 119에 연락할 정도라면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테니 그닥 유용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주소정보누리집’에 들어가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곤 하지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이트는 아니다. 대체 네이버와 카카오 지도 앱으로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불가능한 이유가 뭔지 의문이다.
그나마 경황이 없어도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방법이 카카오맵에서 ‘내 위치 공유’를 이용해서 119에 카카오톡으로 위치를 전송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용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카카오톡을 경유하는 위치 공유는 일상에서도 종종 쓰이니 그나마 나은 듯하다.
국제적으로 통용될 방법도 있긴 하다. 카카오맵에서 확인할 위치를 꾹 눌러 w3w좌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좌표계는 지구 전체를 거리 3미터의 격자로 나누고 모든 칸에 단어를 붙인 것이라 숫자로만 길게 이어진 gps 좌표를 부르는 것보다 식별성이 높다. 예를 들어 백운대의 좌표는 ‘주유.암벽.공지’다. 다만 외국에선 실제 구조에 잘 쓰인다는 이 좌표계가 한국의 구조대에서도 통용되는지 알 길이 없다. ‘제가 w3w좌표를 알려드릴게요’라고 해봤자 ‘아니, 그냥 가장 가까운 봉우리 말씀해주세요’라는 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국가공식 시스템 변화는 대단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역시 극한 상황에는 호루라기처럼 단순한 아날로그 방식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만약 혼자 다니다 사고를 당해 아예 의식을 잃으면 무의식 속에서 그간의 삶에 감사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는 걸까? 여기서 다시 첨단 기술이 나설 차례다. 근래에 나오는 애플워치도 갤럭시워치도 낙상을 감지하고 몇 초 지난 뒤에 자동 신고를 해주는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으니, 이를 설정해두면 구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어든다. 사고를 당하자마자 자동으로 신고가 되는 것과 자정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가족이 신고한 뒤에야 수색이 시작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생존률이 높을지는 뻔하지 않은가. 그런 이유에서도 스마트워치는 등산인에게 꼭 투자할 만한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등산이란 인간의 발 외의 수단으로 갈 방법이 없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활동이고, 인간은 넘어지는 것만으로 중상을 입을 수 있으니, 비상 사태 대비책은 꼭 확보해두도록 하자.
(보기엔 거칠지만 편하고 예쁘고 재미있는 길이다)
난간을 잡고 몸을 당겨야 하는 오르막을 다시 한 번 거쳐, 오후 4시경에 마침내 오봉이 내려다보이는 오봉 능선의 정상부에 도착했다. 그곳은 북한산의 높은 지대가 대체로 그렇듯이 거대한 암석지대였는데, 나무가 자랄 만한 땅이 바로 옆에 있긴 해서 사방으로 경관이 완전히 트이진 않았다. 게다가 작은 통신탑이 하나 세워져 도시를 떠나 극한의 땅에 왔다는 실감을 좀 깎아먹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몇 걸음만 가면 닿을 수 있을것 같은 곳에 봉우리들이 거대한 바위를 얹고 줄지어 솟아 있는 모습은 자연의 무작위한 풍화작용 속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규칙성의 신비를 품은 채 고고히 숨쉬고 있었다.
(늘어선 봉우리와 산들은 우연의 장엄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녹음이 우거진 산자락, 다시 그 뒤에 솟은 바위산, 지평선 아래를 메운 강의 빛줄기와 도시의 빼곡한 건물들의 모습은 무서우리만치 맑은 날씨 덕에 초정밀화처럼 시야에 들어찼다. 정말이지 풍경 묘사에 미쳐버린 예술가가 정신줄을 놓고 그린 듯이 비현실적으로 깨끗한 날이었다. 이렇게까지 기적같은 날씨를 만난 적이 또 있었던가? 나는 연신 사진을 찍어댄 뒤에야 적당한 그늘로 움직여 신선대가 있을 맞은편 봉우리를 보며 미적지근한 소시지로 배를 채웠다. 언제나 감탄을 주는 도봉산이지만, 비교적 쉽게 올 수 있는 오봉 능선에서 이런 감동을 받을 줄은 몰랐다. 경외감을 주는 거석들과 거친 산세의 멋과 도시 풍경과 세상이 끝없이 이어져있다는 사소한 진리를 동시에 접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달리 찾기 힘들 것이다.
(지독하리만치 해상도가 높은 세상의 모습에 놀란다)
한참 앉아서 쉬는 동안 등산객 서너명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했다.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거의 다 나았다고 생각한 오른쪽 무릎이 다시 삐걱였다. 아주 튼튼한 보호대를 가져오진 않은 터라 예비용으로 챙겨놓은 손목 보호대를 감아서 조치했다. 몸을 압박할 수 있는 띠는 갖고 있으면 역시나 도움이 되기 마련이었다.
(산허리 서쪽의 나무들이 물들기 시작했다)
자운봉을 가면 기가 막힐 날씨지만, 슬슬 하산하는 편이 나을 시간이었고, 우이봉을 거치고 싶기도 해서 동쪽이 아닌 남쪽 길을 택했다. 내리막을 걸으며 옆으로 오봉이 늘어선 모습을 보니 옆모습도 위에서 본 것 못지 않게 신비했다. 큰 바위를 얹은 봉우리가 이렇게 꾸민듯이 늘어서 있다니, 오봉을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음모론이 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다. 음모론을 쉽게 믿는 사람들은 산에 얼씬거리지 않는걸까?
오봉에서 우이봉 가는 길은 내리막이 나오기도 하고 오르막이 나오기도 했다. 그 와중에 제법 거친 암릉도 지나고 너덜길도 짧게 돌파했는데, ‘탱크 같다’는 칭송을 듣는 코오롱의 2744가 대단히 큰 역할을 해주었다.(후기는 말미에 정리)
길도 특별히 험하지 않았고 등산화도 훌륭했던 덕에 5시 30분에는 우이봉 밑의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시간 반쯤 걸린 셈인데, 등산을 처음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왔던 이 자리에 다시 와서 보는 풍경은 놀랍게도 그때보다 더 아름다웠다. 아마 날씨와 시각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시야를 가리는 요소가 아무것도 없었고, 게다가 슬슬 해가 기울어 온세상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으니 세상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거울을 보면 자기 자신마저 아름다워 보일 만한 날이었다. 해질녘의 산이란 그렇게 축복으로 가득했다. 일몰 이후의 하산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눈에 담아둘 가치가 있다.
(우이봉 아래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풍경은 트인 맛이 각별하다)
그러나 매직 아워라는 것을 떼어놓고 봐도 우이봉 아래의 전망대는 명당이었다. 내가 거기서 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진 오봉부터 북한산과 그밖의 근교 산과 도시 대부분을 조망할 수 있어 광활한 분지의 중심에 선 듯한 느낌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이곳에 오는 가장 쉬운 코스인 보문 능선도 참 좋은 코스다.
거기서 5분도 걸리지 않아서 우이봉 정상에 올랐다. 여전히 소박하고 아담한 곳으로, 바위 위에서 보이는 산과 도시 풍경이 시원스러웠다. 물론 전망대에서 보는 것처럼 넓게 트이거나 특별히 더 멋진 정도는 아니라, 나는 금방 바위에서 내려와 숨을 돌렸다.
(저녁햇살을 받는 우이봉의 바위와 해상도 높은 풍경 )
2023년에 친구 두 명과 같이 가장 쉬운 코스를 고르고 골라 올라왔던 곳을 1년만에 혼자 도착했다. 그것도 도봉산을 북서쪽에서부터 가로질러서. 인간관계는 퇴보하고 산을 타고 즐기는 능력만 탁월해진 걸까? 아니다. 이건 등산처럼 중간에 그만둘 수 없는 장시간의 육체 활동을 사람들이 얼마나 꺼리는지 더 잘 알게된 결과다. 그런 이들에게 제시할 길은 따로 준비해두었으니, 그 길을 가게 될 때까지 나는 나 나름대로 산을 즐기면 될 것이다. 각자가 애정할 수 있는 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건 인생의 고통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우이봉에서 슬슬 하산을 시작했다. 중간에 얼룩무늬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나온 모습을 발견했는데, 고양이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아마 사람에 익숙한 탓이리라. 나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일몰 전에 내려가고 싶었다.
(산중턱에서 새끼를 키우는 비결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순조롭게 내려가다 문득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이상한 점은 두 가지나 있었다. 하나는 전에 왔을 때 원통사 방면으로 내려갔다가 길이 너무 험해서 몹시 충격 받은 터라 이번에는 온건한 길을 발견해주겠다고 갈림길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그런 갈림길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갈림길을 발견하지 못해 그대로 걸어야 했던 지난번의 길이 별 생각 없이 걸을 만한 곳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단차가 너무 심해서 엉덩이를 깔고 미끄러져 내려가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짓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와 달리 등산스틱을 들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있던 단차가 사라질리는 없다. 나는 고민 끝에 전보다 길을 잘 읽게 된 덕이라 결론을 내렸다. 산길이라는 게 다 그냥 가면 되는 게 아니라 디딜 곳을 잘 파악하고 걸어야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제 그런 걸 알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때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보문 능선을 내려가야만 했다는 후회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발전을 체감하니 좋았다.
갈림길은 원통사로 내려온 뒤에야 나타났다. 무수골로 가느냐 우이천 방면 능선으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이었다. 예전에는 등산 고수가 가르쳐준대로 ‘처음이면 우이천 쪽’을 택했고, 상당히 지겨워하며 하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식 지도에 실리지도 않은 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수골을 택했다. 그 고수 아저씨가 왜 그런 판단을 했나 궁금했다.
그리하여 해가 기울기 시작한 무수골 계곡길을 걸어보니, 분명 이해가 되는 구석은 있었다. 계곡길이라는 게 대체로 그렇듯이 길이 좀 더러웠던 것이다. 바위와 자갈이 뒤섞인 곳이 많아 걷기가 만만치 않았다. 경등산화나 운동화로는 고통을 느낄 만한 길이었다. 그러나 숲 말고 아무 볼 게 없는 완만한 능선을 걷는 것보다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지형을 감상하고 나무 다리를 건너 다니는 편이 즐거웠다. 등산의 즐거움을 맛보려는 사람에게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맨밥같은 길보다 좀 매워도 다양한 재료가 섞인 마라탕 같은 길이 좋았던 게 아닐까.
(은근히 거칠고 피곤한 너덜길)
1시간 반 걸려 7시에 달빛 가득한 산을 빠져나왔다. 이제 긴장하며 걸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길이 거기서 끝난 것도 아니었다. 시가지가 멀어 또다시 무수천을 따라 도로를 하염없이 걸어야 했던 것이다. 날머리 앞에서 희끄무레한 허수아비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있는 밭을 지나고, 반쯤 말라서 개울처럼 가는 물줄기만 흐르는 무수천을 따라가니, 7시 20분쯤에는 캠핑장이 나왔다.
(안온한 모습의 캠핑장이 다소 초현실적이다)
크고 말끔한 천막들이 늘어선 모습을 보아하니 글램핑장 같았다. 영화나 광고에나 나올법하게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천막들을 은근하고 아름다운 조명들이 비추고 있었다. 비현실적이었다. 아마 달빛만 가득한 산에서 방금 막 기어나온 야만인 같은 상태라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나는 문명에 대해 새삼 생경함을 느꼈다. 이곳 사람들이 아름답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야외의 기분을 만끽하는 동안 나는 산 하나를 가로질러 나왔는데, 이게 합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은 걸까? 어쩌면 차를 타고 와서 ‘장비’ 같은 것은 일절 없이 야생의 멋을 간편히 즐기는 게 효율면에서 나을지도 모른다. 즐거움이란 경험마다 다르니 공정하게 비교할 수 없을 테지만, 등산 직후에 보는 글램핑장의 모습은 별안간 문화충격을 줄만한 것이었다.
캠핑장을 지난 뒤로도 퍽이나 길게 걸어야 했다. 주택가가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산 뒤에 빠르게 쉴 수 있는가 아닌가까지 따지면, 확실히 전에 택했던 서쪽의 우이천 방면이 나은 선택이긴 했다. 하산 후에도 질리도록 걷는 처지를 몇 번이나 겪어보지 못했다면 끝나지 않는 강행군 때문에 등산 자체에 학을 뗄 수도 있는 일이다. 전에 만난 고수의 추천이 크게 보면 옳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해가 진 뒤의 무수천은 힘을 들여서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수량은 적었지만 산에서 이어진 바위지대의 줄기 위로 물이 흐르는 광경은 시가지 근처인데도 산속의 계곡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그러면서 바로 옆으로는 정비된 길이 깔려 점점이 푸른 조명을 비추고 있었다. 주민 몇 명이 무수천 옆을 조용히 산책하는 모습은 자연의 가치를 잊지 않은 미래도시의 상상도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매일 저녁을 먹고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잠시나마 부러울 게 없을 듯했다. 결국 우이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어느쪽도 정답이었던 셈이다.
(근미래 자연 환경 같은 무수천의 모습)
그리하여 8시에는 순대국밥집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산한 뒤에도 한 시간이나 걸어야 했던 셈이다. 명백히 과잉 보행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는 오봉에 올랐고, 도봉산을 가로질러 우이봉을 다시 봤으며, 어떤 길로 하산하는 게 옳았는가 다시 점검한 끝에 모든 길에 일장일단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과하다 싶었던 전문가급 등산화조차 오랜 보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결국 100퍼센트 확실하고 절대 후회 없이 만족할 수 있는 정답 같은 건 없다는 뻔한 진리를, 올랐던 산에 또 오르며 배우고 귀가했다.
(내키는 대로 걸었더니 나로서는 대장정이 되고 말았다)
교훈
119공식 앱을 설치해두고 호루라기도 꼭 챙겨 다니자. 스마트워치도 훌륭한 안전장비다.
기동성보다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고통의 경감을 중시한다면 등산화는 전문등산화가 더 알맞다.
아무데나 감을 수 있는 손목 보호대는 있으면 종종 유용하다.
디딜 곳을 잘 읽는 게 장비보다 중요하다.
하산 후에 갈 음식점과 귀갓길도 미리 살펴보고 하산로를 정하는 게 체력 안배에 이롭다.
*추신
코오롱 2744 등산화에 대하여
탱크같다는 칭송이 정말 과장이 아니라, 경량형 등산화였다면 걸음걸음 조심하면서도 발에 불편을 느껴야 했을 길을 무심하게 걸을 수 있었다. 밑창도 육중하고 접지력도 좋고 가죽도 두껍고 테두리의 고무 랜더도 튼튼하니 척척 걸으면 그게 길이었다. 이 좋은 등산화를 두고 여러 등산화를 사고 판 세월이 약간 후회될 지경이었다.
물론, 첨언하자면 2744같은 중등산화에 장점만 있을리는 없다. 무엇보다 무겁다. 한쪽에 265사이즈 기준으로 760g이니 등산화를 자주 신던 사람에게도 약간 묵직한 편이다. 그러니 일상화만 신던 사람에겐 무게추처럼 느껴질 것이다. 가벼우면서 방어력이 높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밑창이 두껍고 튼튼해서 충격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장점도 불리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 암릉으로 유명한 코스라면 클라이밍처럼 바위를 잡고 발로 더듬어 디딜 곳을 찾아야 하는 구간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그런 곳에서 발이 잘 구부러지지도 않고 발끝이 어떤 모양을 밟았나 느끼기도 어려우면 두꺼운 장갑을 끼고 글자를 쓰는 듯한 꼴이 된다. 가능하긴 하지만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상태란 말이다.
요컨대 코오롱의 2744는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탱크 같은 등산화였던 것이다. 무거운 신발에 익숙하고 ‘이게 길이야?’싶은 암벽을 기어다니는 일이 별로 없을 경우에만 결전병기로 추천할 만했다. 일단 나는 발바닥과 무릎이 정상이 아닌 터라 너덜길을 편하게 다닐 수 있다는 점 하나로 사랑스러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