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계의 단풍길은 끝없는 계단길
변함없이 번역에 쫓겼다. 일이 있다는 건 행복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노동 자체가 별안간 즐거운 놀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번역이라는 작업은 중간중간 너무 즐거워서 쭉쭉 내달리는 구간이 있는가 하면 단어 하나 때문에 드러눕는 구간도 있는데, 이번 소설은 개성이 강해서 벅찬 구간이 많았다. 관악산의 가장 험한 길 같은 일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공모전에 다섯 권 분량의 수필을 정리해서 투고했다. 이것도 만만치 않게 가혹한 일이었는데, 전부 불발로 끝났다는 걸 생각하면 한층 암울해진다.
노력하면 보답받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에 불과하다. 그리고 글 쓰는 노력에 대한 보답은 독자가 내 글을 원하게 되는 것인데, 나의 노력으로 타인의 욕망 자체를 움직일 수는 없으므로 나는 수필을 지속적으로 쓰는 일이 일기 이상의 가치도 없고 온당한 노력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번뇌에 시달리는 동안 10월말이 되었고, 산은 붉게 물들었다. 이따금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겨울 장비를 중고 장터에서 뒤적이던 나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그러면서 너무 어렵지 않아 추천할 만도 하다는 도봉산 만월암 코스를 가기로 했다. 이건 유튜브에서 접한 정보였는데, 나는 몇 번이나 속았으면서도 또 속으면 어떠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봉산은 심리적으로만 가깝지 실제 거리는 멀어서, 나름대로 서둘렀지만 12시쯤 되어서야 도봉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들머리로 가는 길은 이미 평소보다 많은 등산객이 오가고 있어서, 최고의 성수기가 맞긴 맞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사이를 걸으며 줄줄이 이어진 매장들 앞의 패딩 조끼들을 구경했다. 비싸서 도저히 못사겠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어쨌거나 아직 쇼핑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익숙한 길을 가다 다락능선으로 이어지는 동쪽도 아니고 마당바위 방면 신선대 코스로 이어지는 서쪽도 아닌 중간의 길을 가게 되었다. 곧장 산으로 치고 오르는 길이 아니라 한참동안 숲이 우거진 공원을 걷는 기분이었다. 등산객이 나오지 않게 사진을 찍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어디든 있었고, 고도가 낮아서 그런지 단풍은 여기저기 붓으로 툭툭 친 것처럼 은근하게 물들어 있었다. 기대보다는 덜했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가을이 어디서 어떻게 스며오는가 실감할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고 도봉서원 자리를 거쳐 개천을 따라 올라가며 숲의 정경을 즐겼다. 걸핏하면 초입부터 바위능선으로 올라가버리는 나로서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완만한 오르막과 청량하게 흐르는 실개천, 그리고 곳곳이 붉게 물든 숲길의 모습은 그야말로 등산의 이데아 같은 풍경이었다. ‘이게 바로 아름다운 사계절을 지닌 한국의 등산입니다‘라고 홍보 영상 촬영지로 써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가을이 스며오는 등산로의 모습)
다만 가을 산이 아름답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인 만큼, 사람이 지독하게 많았다. 선선한 초저녁 뒷산보다 더 사람이 많아서 길이 좀 좁아지면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움직여야 할 정도로 많았다. 그동안 나는 도봉산과 일대의 상권을 ’등산의 테마파크‘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날 이곳은 정말 놀이공원에 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많아지니 당연하게도 시끄러워졌다. 아무렇지 않게 스마트폰으로 트로트를 틀며 무슨 노래를 듣겠냐고 아내에게 묻는 중년 남성을 보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진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사람 많은 산에서 음악 틀기를 당연시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만큼 이런 날 이런 코스에서 고요를 기대하지는 않는 게 나았다. 물론 너그럽게 받아들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심력을 너무 소진하지 말자는 말이다.
걷다 보니 등산로와 실개천이 겹쳐지는 부분에서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정도로 휴식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 수건을 물에 적시기만 했는데, 그러면서 보니 맑은 물 속에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물고기떼가 오가고 있었다. 평소에 보기 힘든 생물이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정경 속에서 살아움직이는 모습을 접하는 건 멋진 일이다. 아마 이런 게 보편적인 하이킹에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일 것이다. 그동안 나는 초보 주제에 너무 암석의 매력만 쫓아다닌 것일지도 모른다.
(개천에서 발을 담그고 쉬는 사람들)
그런데 개천을 건너 숲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한참 걷다 어쩐지 숲이 너무 깊어지고 사람도 안 보인다 싶어서 지도를 보니, 여긴 내가 가려던 길이 아니라 신선대 직행 코스로 합류하는 길이었다. 초보가 코앞의 길만 보느라 길을 잘못 드는 것만 위험한 줄 알았는데, 멋진 풍경 따라 정신 없이 걷는 것도 조심할 일이었다.
온 길을 되짚어 원래 갈 길로 되돌아갔다. 그냥 더 위로 가서 다른 합류 루트를 찾아볼 마음도 있었지만, 단풍 구경을 나와서 모험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보려던 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고 싶기도 했다. 뜻밖의 길에서 예상치 못한 기쁨을 만나는 경우도 많지만 그런 기쁨을 기대하고 길을 일부러 벗어나는 건 과도한 모험일 것이다.
1시쯤 되자 슬슬 오르막다운 오르막도 나오고 흙길과 계단길이 번갈아 이어졌다. 여전히 사람은 많았지만 그게 더 여유롭고 느긋한 숲길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수많은 행락객의 흐름을 따르는 것도 분명 마음이 편한 구석이 있었다.
그렇게 걷다 데크계단이 있는 갈림길에서 도봉산장을 발견했다. 벽돌 대신 적당한 크기의 바위들을 쌓고 굳혀서 만든 건물로, 2.5층 규모 정도는 되어 보였다. 아마 등산학교이자 대피용 건물로 쓰는 듯했는데, 커피, 코코아, 주스를 판다고 크게 적혀 있어 슬쩍 보고 가기로 했다. 영화에서나 본 산장이 실제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사람도 많은 날이니 눈에 띄지 않게 둘러보기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산장에 들어가보니 손님이라곤 나뿐이라 도저히 그냥 구경만 하러 왔다고 둘러대고 나갈 수 없었다. 게다가 바위를 쌓아 만든 벽이며 통나무를 최소한만 깎아서 만든 의자와 테이블, 벽난로까지 신기한 게 많아서 나는 냅다 자리에 앉아 냉커피를 시키고 말았다. 시키고 나서 생각해보니 등산하는 사람이 이뇨작용이 있는 커피를 마시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지만, 가을의 산속에 있는 산장에서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는 정취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산장에서 마시는 냉커피의 맛은 각별했다)
그렇게 나온 냉커피는 예상보다 진하고 쓴 편이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알맞게 변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마치 박물관에 들어온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잡지를 뒤적거리며 아무 목적도 시간 제약도 없는 사람처럼 시간을 보냈다. 마치 뇌를 빼놓은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개운했다. 판타지 세계에 나오는 변방의 인적 없는 산장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기 전, 관록 넘치는 노신사로 보이는 주인장에게 언제 쉬시냐고 괜한 질문을 던져봤더니 그는 쉬는 날이 없다고 했다. 이곳으로 매일 출근한다고 생각해도 엄청난 일이고, 여기서 거주한다고 생각해도 굉장한 일이다. 다른 것보다 택배가 여기까지 와주진 않을 테니 물자를 공급하려면 직접 사든 들머리의 어느 사무실에서 찾아오든 한 시간 넘게 걸어서 운반하는 수밖에 없다. 산악용 바이크나 산양을 타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니까. 산이 좋아도 나라면 못할 것 같다.
산장을 나서서 2시쯤 다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보에 없던 부슬비가 내리는 게 아닌가. 우산이나 비옷을 써야 할 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해도 될 정도도 아니었는데, 나는 고어텍스 재킷들을 집안에 잘 모셔놓고 유니클로의 캐주얼한 방수투습 기술이 채용된 블록테크 재킷을 입고 온 것을 후회했다. 블록테크 재킷은 일상 영역에선 별로 부족할 게 없지만 고어텍스만한 것은 아니다. 비가 더 많이 오면 비옷을 입어야 한다. 게다가 살로몬의 이름 모를 배낭도 아주 가벼운 대신 방수 코팅이 없어 비가 조금 더 심해지면 커버를 씌워야 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물건을 꺼내기가 아주 번거로워진다. 나는 일단 지퍼백에 지갑과 보조배터리를 넣어두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길을 계속 나아가니 슬슬 길이 거칠어지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계단들이 점차 부정형의 돌로 바뀌기 시작해서 숲길을 오르는 느낌이 강해졌다. 이따금 짙은 주황색으로 물든 나무가 나타나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 너머에 선인봉이 이쪽을 굽어보듯 서 있었다. 다른 봉우리보다 유독 날카롭게 치솟은 산이라 현실감이 다소 흐린 광경이었다. 저것보다 더 높은 봉우리에 몇 번이나 올라갔고, 오늘도 갈 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선인봉이 그림처럼 솟아있다)
다행히 비가 그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습기는 그대로여서 구름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날의 최고 기온은 20도로 제법 낮은 편이었는데, 그보다 더웠다면 후텁지근하고 괴로운 산행이 될 뻔했다. 역시 가을만한 등산철이 없다.
그럭저럭 완만하던 길은 점차 계곡 특유의 거친 돌길인 동시에 경사가 만만치 않은 길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곳곳이 불그스름하게 변한 숲 사이로 길게 난 오르막은 천천히 걸으며 감상하는 기쁨이 있었다. 이렇게 멋진 길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와볼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등산로의 돌과 돌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 실핏줄처럼 가는 개천을 만들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살아있는 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근래에 걸은 길도 모두 멋졌지만 온갖 색채와 돌과 물이 다 어우러진 이 길은 그야말로 시원의 숲을 찾아가는 길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항상 기대보다 멋진 보상을 주는 건 역시 산뿐이었다.
2시 반쯤 되자 만월암으로 이어지는 데크 계단길에 접어들었다. 평소 같으면 어지러운 길을 걸은 뒤라 안도해야 할 만한 일이었는데...... 이 계단길, 경사도 길이도 만만치 않았다. 관악산 신공학관 코스도 처음 봤을 때 계단이 하도 길고 가팔라서 충격받았는데 여긴 그보다 심한 듯했다. 게다가 봉우리 옆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저 위에 보이는 암자까지 가는 길이라 무협소설 속을 걷는 기분마저 들었다. 화산파가 이런 식으로 산꼭대기까지 가야 나오지 않았던가......
(무림비급이 숨겨진 암자까지 가는 길 같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빠르게, 2시 41분에는 만월암에 도착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만월암은 집채보다 더 큰 바위 밑에 아담하게 자리했고, 사찰 건물 안에는 석불좌상이 경건히 모셔져 있었다. 마치 더러운 속세를 피해 산 깊이 숨어들어온 사찰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 앞에선 스님 한 분이 앉아 유리 주전자로 차를 끓이며 지나는 등산객들에게 차를 한 잔씩 마시라고 권하고 있었다. 차를 마시며 선문답이라도 나눠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스님, 제가 산을 찾은 것입니까, 산이 저를 부른 것입니까?’하는 식으로.
상당히 지쳐있었던 터라, 나는 배낭을 내리고 앉아서 차를 감사히 받아서 마셨다. 부처가 바라보는 절 아래쪽을 계곡 방향을 보니 계곡부터 산 아래까지 온통 초록과 노랑과 주황이 색을 흩뿌린 듯이 뒤섞여 있었다. 회백색으로 흐릿한 도시 풍경은 잊혀진 속세의 그림자일뿐이고 모든 색채가 축제를 벌이는 이 산만이 진실한 세계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단풍과 낙엽은 나무가 겨울이라는 재난에 대비하여 자신을 반쯤 죽이는 과정인데, 그 모습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건 얼마나 모순적인가. 나는 기묘한 슬픔 속에서 5천 원을 시주하고 번뇌가 사라지길 빈 뒤에 암자 옆의 계단을 통해 바위를 넘었다.
(사찰 옆 바위 밑으로 지나는 비밀스러운 계단)
만월암의 바위 위쪽은 계절의 경계를 확실히 넘어온 것처럼 사방이 한층 더 붉었다. 이제 길은 다락능선 코스와 합류하여 포대정상을 거쳐 자운봉으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능선치고는 비교적 완만하고 심하게 험하지 않은데다 돌아보는 곳 모두가 아름다웠는데,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 일행이 나와 엇비슷하게 걸으며 여기저기 멈춰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단체 사진이 아니라 딱 한 명씩 돌아가며 포토스팟에서 몇 장을 찍는 촬영회었다. 설마 여권 사진이 필요해서 여기서 찍는 건 아닐 테니 필시 SNS에 올릴 사진을 찍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이 사람들, 가만 보니 절벽을 이룬 바위 위 난간 바깥쪽까지 나가서 낙엽들을 모아놓고 포즈를 취하는 게 아닌가. 고수들도 사진 찍다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더니 그 얘기가 실감나는 상황이었다. 샛별같던 루시퍼를 땅에 떨어지게 만든 죄악중의 죄악이 다름아닌 교만이었음을 산에서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나저나 근처에 화장실이 있다는 팻말이 보이기에 화장실을 찾아 아름다운 숲길을 잠시 헤맸다. 커피를 한 잔 마신 게 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대체 화장실이 어디란 거야’ 하고 투덜대며 걷기에는 단풍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멀리 들어가서 창고치고는 심하게 멋진 사찰 건물 근처에서 간이 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랑스럽지 않은 간이화장실이지만 나중에 또 올 일이 있을 듯해서 지도에 위치를 저장했다. 북위 37.700, 동경 127.019, w3w 좌표로 ‘///나누다.효자.수분’ 근처에서 찾을 수 있다(w3w는 카카오맵에서 정확히 ///까지 다 적어 검색).
다시 등산로로 복귀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동안 편하다고도 불편하다고도 할 수 없는 불규칙한 돌계단과 아무렇게나 부서져 쌓인 듯한 바윗길이 이어졌는데, 고도가 높아진 덕인지 단풍이 짙어져 눈에 들어오는 풍경 전체가 갈수록 아름다워졌다. 땅은 온통 어두운 회색인데 단풍만 새빨갛게 채색된 모습이 팝아트처럼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마치 립스틱 광고에서 빨간 입술만 컬러로 남기고 나머지는 흑백으로 처리한 것처럼.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도 낙엽이 다 떨어지고 나면 완전한 무채색으로 변할 것이다. 눈이 내리기 전까지 산의 풍경은 비수기가 되니 지금 열심히 봐두는게 좋으리라.
3시 16분이 되자 포대정상으로 이어지는 데크 계단이 시작되었다. 이제 이곳은 온통 빨간색과 주황색으로 물든 나무로 뒤덮여 색채가 춤추는 만화경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조금 걷다보니 계단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건 물론이고 경사도 심각했다. 만월암 가는 길이 가파르다고 했는데 그건 그냥 몸풀기였고, 여기가 진짜였다. 관악산 신공학관 루트의 계단? 그건 그냥 산책로였다. 점점 가팔라져서 반쯤 사다리처럼 보이는 구간도 있을 지경이었으니, 서울에 이보다 계단이 가파른 산이 또 있을까 싶다.
(단풍 속의 무한계단. 가혹하지만 아름답다)
다만 이가 갈리게 길고 가파른 길을 가면서도 마음이 즐거웠던 것은, 믿을 수 없이 풍경이 아름다웠고, 그래서 자주 멈춰섰기 때문이다. 규모로는 설악산 같은 곳이 더 압도적이겠으나, 지금 눈에 들어오는 풍경만은 세계의 그 어떤 산 못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도가 높아져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눈에 다 들어오게된 선인봉과 그밖의 봉우리들, 그리고 그 봉우리를 이루는 암석 곳곳을 수놓은 구름같은 단풍의 모습은 무협지나 삼국지의 배경으로나 나올만한 천상의 풍경이었다. 산에서 처음 보는 풍경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더 젊고 병이 없을 때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봉산 최고의 비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시야를 가득 채우는 광경에 감동하는 한편으로 슬슬 쉬지 않으면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겠구나 싶어 계단길 중간중간에 있는 벤치에 앉아 미적지근한 닭가슴살을 뜯어먹었다. 세 시 반이 다 되었으니 제대로 된 식사도 없이 꽤 오래 버틴 셈이다. 숨막히는 비경 속에서 그렇게 짐승 살을 뜯어먹고 있자니 무림 비급을 찾아 무작정 산속을 헤매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식사 후 다시 계단을 올랐다. 오래지 않아 계단이 끝나고 포대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에 접어들었다. 암릉길이 잠깐 나오나 싶더니 다시 능선 위로 치솟은 데크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간의 산행에서 다닌 계단 전체를 합친 만큼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라 슬슬 피곤했는데, 이제는 시야가 완전히 트여 주변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듯했다. 절반은 울긋불긋 물든 산이고 나머지는 회백색의 무감동한 도시다. 그렇게 도드라진 색채의 대비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곳에서 느껴지는 순간이란 기막힌 것이었다. 이런 풍경이 시들해질 날이 올수 있을까? 도시에 사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 즈음해서 난간 밖까지 가서 사진을 찍던 젊은 청년 일행 다섯 명쯤과 움직이는 속도가 비슷해지는 통에 영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이 되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그들이 노래를 틀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일상 속에서 결코 접할 수 없을 비경을 일행이 다같이 목도하고 있는 차에 조용히 다닐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산에선 얼마나 조용히 다니는 게 올바른 것일까? 아마 여기에는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담당자들도 명확히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바티칸의 미사 현장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니 누구나 탄성을 흘리고 의견을 나눌 자유가 있다. 이 순간을 조용히 즐기고 싶은 건 나의 욕심에 불과했다. 나는 나의 고요를 찾아 최대한 서둘러 그들과 멀어지려 했지만, 항상 무릎을 신경 쓰고 걷는 사람이 무슨 수로 20대의 청년들을 앞지르겠는가. 결국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거리를 벌려야 했다. 자주 있는 일이라 심각하게 서럽진 않았다.
포대 정상 옆에 도착하니 선인봉을 비롯해서 높이 치솟은 봉우리들이 거의 비슷한 위치에 보였다. 이미 몇 번이나 본 광경인데도 푸른 색과 붉은 색이 주변을 수놓은 상태에서 보니 더욱 더 그림 같았다. 금강전도 같은 그림에 나오는 뾰족한 바위 봉우리의 연속을 이렇게 풍경 속에서 바라보고 심지어 다가갈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축복이다.
포대정상에서 Y계곡까지는 금방이라 3시 50분에는 Y계곡의 지독한 암벽 맛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지쳤지만 우회로를 가는 게 더 피곤하다는 걸 경험해본 탓에 택한 길인데, 울긋불긋한 절벽의 절경 속을 난간에 의지해서 기어오르는 전신 혹사의 맛은 그야말로 이승을 떠나 승천하는 기분이었다. 풍경이 멋있어서 하는 표현이 아니다. 한걸음 한걸음 심혈을 기울여 바위를 딛고 두 팔로 난간을 당기며 생명의 위협이 맹렬히 감지되는 구간을 기어오르는 그 시간은, 오랜 기간에 걸친 도전과 실패도 기대와 좌절도 무의미하고 오로지 내 몸으로 목숨을 지키며 이 비경의 정점으로 올라간다는 최고의 보상만이 존재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계속)
(무섭도록 아름다운 풍경 속 가장 무서운 길)
변함없이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길이라고 취급하지 않을 Y계곡을 지나 신선대 앞 마당바위에 도착하니 4시 11분이었다. 하늘은 모든 면을 칠해놓은 듯 청회색으로 어두워져 빠른 일몰이 예상되었는데, 오늘의 하산로는 가본 적이 없는 ‘거북골’이라 마음이 급했다.
자운봉과 신선대 근처는 침엽수가 많아서 예전에 비해 풍경이 아주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그 익숙한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 거북골 방면으로 빠르게 내려가다가...... 지도를 보고 이게 아니다 싶어 다시 계단을 올라왔다. 하산하는 길은 당연히 이쪽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신선대 앞까지 돌아가보니 옆으로 빠지는 길이 남서쪽으로 하나 더 있었다. 딱히 숨겨놓은 것도 아닌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여지껏 내내 지나쳤다는 게 어이없지만, 관악산에서도 정상 옆의 샛길을 몇 번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알아챘다. 아마 거대한 목표와 장관 앞에선 주변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게 어쩔 수 없는 나의 심리인 모양이다.
(은근히 채색된 신선대와 자운봉)
신선대에서 주봉 방면으로 가는 길은 아주 잘 닦인 내리막으로, 흠잡을 데 없는 데크계단과 돌을 다듬어 만든 길이 연달아 이어졌다. 온갖 색채로 물든 숲 위에 솟아오른 주봉을 바라보며 안정적으로 걸음을 옮기는 기분은 썩 훌륭했다. 이 정도로 안락하면서 경치까지 감탄스러운 길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그동안 보통의 멋진 길을 알아보지도 않고 다락 능선 따위 험악한 돌길만 다닌 게 약간 후회될 지경이었다. 이런 길을 더 자주 다니고 잘 알아뒀다면 친구들을 꼬셔볼 용기나 설득력도 더 확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꿈결처럼 아름다운 길과 주봉)
그나저나 신선대에서 조금 내려오자마자 인적이 완전히 끊겼다. 상식이 있으면 이미 하산했을 시간인데다가 심지어 이쪽은 별로 인기 있는 길도 아닌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토록 갈구했던 고요를 마침내 만끽할 수 있었는데, 서쪽으로 접어들자마자 단풍의 색깔이 훨씬 더 짙어지기까지 해서 좀 스산한 기분마저 느꼈다. 이렇게나 오로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길을 고요 속에서 혼자 걷는다는 사실 자체가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인류가 어떤 사건으로 멸망하고 몇 년 지난 뒤의 세상을 혼자 여행하는 듯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느끼는 슬픔은 익숙했지만 생경함과 두려움까지 맛본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등산을 새로운 풍경 속으로 여행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이렇게 새로운 감정 속으로 여행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아름답고 스산한 길)
내리막과 오르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는 길을 50분쯤 걸어 주봉근처를 지나고, 5시 15분쯤 오봉, 자운봉, 우이암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도봉산의 대표 봉우리 전부로 이어지는 줄기세포 같은 지점이다. 이렇게 거대한 분기점이 있나 싶은데, 의외로 그 장소 자체는 넓지 않고 바윗덩이로 이루어진 봉우리 사이에 살짝 난 실핏줄 같은 길에 가까웠다. 나는 지도를 다시 확인한 다음 거북골을 향해 바위를 딛고 봉우리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봉우리를 건너는 길은 제법 두려운 암릉이었다. 경사가 심했는데바닥을 이루는 바위가 거칠지 않고 매우 큰 덩어리로 되어 있어 발이 걸릴 곳을 잘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그건 도무지 길 같지 않은 경로였다. 나는 이 길이 더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애초에 이게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중의 두려움을 느끼며 봉우리를 끝까지 올랐다. 미친 소리 같지만, 어디로 이어지는지 확신할 수 없는 험악한 길을 기어오르는 이 행위에는 끝을 보기 전에 멈출 수 없는 일종의 마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봉우리 끝에 올라서고 보니 이곳은 정말 산을 이루는 한 부분의 결말부 같은 곳으로, 나무는 바위 틈에 몇 그루만 있고 나머지는 모조리 황량한 회색 바위였다. 그중에서 높이 솟은 바위 하나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있는 이 봉우리만 잿빛이고 사방으로 뻗은 산은 모두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나 혼자만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때마침 청회색으로 어두워진 하늘에서 싸늘하고 습한 바람이 불어 몸이 식기 시작했다.
(한 세계의 끝같은 봉우리의 정상)
그 순간의 격정이란 다른 산의 어떤 봉우리에서도 맛본 적 없는, 거대한 밀물의 흐름 같은 것이었다. 무한하게 느껴질 정도로 광대한 이 세상의 한 첨단부에 나는 지금 완벽히 홀로 서있다. 내가 지닌 것을 제외하면 단 하나의 인공물조차 존재하지 않는 숭고한 땅에 선 기분이란 그야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완전무결한 고독이었다. 나는 생각조차 지워진 채로 그곳의 광경을 둘러보다, 한참 후에 ‘이건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전운이 감도는 세상을 혼자 둘러보는 광경 같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렇게까지 모든 것에 압도되어 내 존재가 창백한 푸른 점 하나가 되는 듯한 기분은 다시 맛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감동은 감동이고, 길을 찾긴 찾아야 했다. 그래서 지도를 보니, 전혀 엉뚱한 곳에 와있는게 아닌가. 이쪽으로 계속 갔다간 오봉을 지나 송추계곡으로 내려갈 판이었다. 어째서 갈림길에서 지도를 확인하고도 이 모양으로 헤맸던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어째서인지 이 부근에 들어서자 GPS의 정확도가 떨어졌고, 나는 자신의 위치를 착각했던 것이다. 하여간 첨단기기라고 무조건 믿을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떤 지점에 있는지는 팻말로 최종확인을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하여 겨우 기어오른 봉우리를 다시 내려가야 했는데, 올라와서 잘 보니 내가 올라온 방향의 반대편에 난간으로 정비된 길이 있었다. 열쇠를 잃어버려 간신히 창문을 통해 집에 들어가서 보니 문이 잠겨있지 않았더라는 식의, 미스터 빈 같은 상황이었다. 나 원 참.
그러나 봉우리에서 내려온 직후에도 나는 길을 잘 보고 다녔어야 했다고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바윗덩이 위에서 느낀, 완벽한 개인이 되어 세상 속에 던져진 기분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을 진귀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은 무엇을 하든 자주 오지 않고, 한 번 오면 영혼 깊이 새겨진다. 아마 인간은 그런 순간을 한 번이라도 더 맛보기 위해 모르던 일을 하고, 모르던 곳으로 떠나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해보면 오래도록 반복된 나의 실패도 미답지에 오르는 정도의 의미는 있을지도 모른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다시 잡고 거북골로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확한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5시 반을 넘긴 뒤라, 하늘도 본격적으로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길이 계곡길답게 너저분한 편이긴 했으나 심한 정도는 아니었고 경사도 나쁘지 않았다. 개천을 지나기도 했고 진하게 물든 나무 아래를 통과하기도 했으며, 폭포 같은 것도 보였다. 제법 아름다운 길이 아닐까 싶었다. 보인다면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식간에 길만 보고 걷기도 벅찰 정도로 어두워져 단풍구경은 완전히 막을 내리고 말았다. 바람도 차서 바람막이를 단단히 여며야 했고, 사진은 찍는 족족 ‘체험 심령 현상’ 같은 방송의 자료 같은 꼴이 되었다. 거의 매번 다른 경로를 택하는 내가 이곳에 단풍구경을 다시 올 수 있을까? 알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다음을 위해 최대한 기록을 남기며 하산했다.
그리하여 8시쯤에는 하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두 번의 트러블을 제외하면 큰 문제 없는 하산이었다. 첫 번째 트러블. 열심히 걷다 바닥에 깔린 자잘한 바위들이 이상할 정도로 뾰족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려 돌아가보니 내가 걷던 건 등산로가 아니라 물이 흐르는 길이었다. 플래시로 아주 좁은 범위만 비추며 걷다가 길보다 더 평탄해 보이는 쪽으로 꺾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하산이 끝나갈 때 구봉사라는 사찰이 보여 화장실이라도 빌릴 수 없나 싶어 들어가자니 마당에서 묶이지도 않은 개가 마구 짖어대는 게 아닌가. 개가 어떤 의도로 짖는지 강형욱 선생처럼 간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조심스럽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래 개를 무서워하는 편이긴 하지만, 어둠으로 뒤덮인 산속에서 안광을 빛내며 짖는 짐승을 보는 기분은 정말이지 생명에 지장이 생기기 몇 초 전이 된 듯하다. 불가의 개답게 자비롭게 보내줘서 천만다행이다.
(아름다운 사찰도 밤에는 그리 편치 않다)
어찌저찌 어둠속에서 하산해서 식당가에 도달하니 8시를 살짝 넘겼다. 더 늦기 일쑤인 내 패턴을 생각하면 그나마 빠른 하산이었으나, 아뿔싸, 이 동네는 8시면 대단히 늦은 시각이다. 큰 순두부 가게가 아직 닫지 않았기에 들어갔다가 사장에게 또 쫓겨났다. 이걸로 이 집에서 거절당한 건 두 번째인데, 사장은 미안했던지 8시면 이 위로는 모두 닫는다고 말해줬다.
과연 그 말이 대체로 사실인 듯, 나는 한참을 여기저기 기웃대고 들어갈 곳을 찾지 못했다. 모든 가게가 닫아버린 건 아니었으나 식사를 하겠다고 선뜻 혼자 들어갈 가게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전박대에 지친 이방인처럼 한참 서성이던 나는 결국 제법 널다란 전기구이 통닭집에 들어가 통닭 한 마리와 막걸리로 배를 채우게 되었다. 산행 뒤에는 순대국밥이나 순두부 찌개를 먹어야 안식을 찾을 수 있었던 나로서는 대단히 과감하고도 어색한 선택이었는데...... 먹어보니 이건 이것대로 또 맛이 좋았다. 의외로 껍질이 씹는 맛도 좋고 제법 매콤하기까지 해서 막걸리로 달래며 먹는 게 즐거웠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제법 뜻밖의 수확이 많은 날이었다. 다른 것보다 손해로 여겨지는 상황이 전화위복이 둘이나 되었다. 길을 잘못 들어 기어오른 봉우리에서 압도적인 감격을 느꼈고, 다른 음식점이 다 문을 닫아 마지못해 먹은 치킨이 대단히 맛이 좋았다. 아마 길을 잘 찾아갔다면 봉우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고, 가던 집이 열려 있었다면 이 치킨집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뜻밖의 행운을 기대하고 살 순 없지만, 그 순간에 충실하면 단순한 우연도 행운으로 변하는 모양이다. 오래도록 이어진 나의 실패도 어떤 의미나 행운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인가...... 막걸리가 선사하는 나른한 취기 속에서 나는 잠시 떠오른 기대를 버리고 새 등산로 탐방의 기쁨과 치킨의 맛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혹한 데크 계단길을 확인할 수 있는 만월암 방면을 거쳐 오봉방면을 통해 거북골로 하산)
교훈
풍경만 보다 길을 잃지 않게 주의하자.
예보만 믿지 말고 강수 대책을 확보하고 움직이자.
GPS만 믿지 말고 팻말을 신뢰하자.
산 근처에서 식당 찾느라 고생하기 싫다면 7시30분 이전에 하산을 마치자. 식당 폐점 기준으로 4시30분이 서울근교 산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다. 일몰을 고려하면 안전한 하산 시작은 3시 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