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차는 수도꼭지에서 나오지 않아
별점 5점 만점에 3.5점 정도로 차를 좋아한다. 있으면 맛있게 잘 마시지만 굳이 자주 타마시진 않는다는 말이다. 차를 깊이 애정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너따위는 어디 가서 차 좋아한다는 말 하지 마라’라고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에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차를 끓여 마시기가 너무 귀찮다! 써놓고 보니 한층 더 게을러빠진 인간말종같군. 하지만 집에 온수가 나오는 정수기도 없거니와 그런 설비가 있는 직장에 다니지도 않으니, 차를 마시려면 주전자에 적정량의 물을 채우고 가스레인지에 올려 직접 끓이는 수밖에 없다. 가스를 연료로 쓴다는 점만 빼면 인류가 불을 발명한 이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행위다. 물을 올린 뒤에는 찻잔과 찻잎을 꺼내고, 찻잎을 인퓨저에 적절히 담은 뒤, 주변에 떨어진 가루를 치우고 방에 돌아간다. 잠시 후 주전자 주둥이에 설치된 증기기관이 수증기에 의해 소리를 내면 허겁지겁 방에서 나서서 불을 끄고 찻잔에 끓는물을 붓는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방에 돌아와 차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탕비실에서 티백을 꺼내 컵에 넣고 정수기에서 온수를 따르는 것으로 마치는 사무실 차 생활에 비하면 상당히 번거롭다. 나로서는 이 과정을 모두 감수할 정도로 간절히 차를 마시고 싶어지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귀찮게 뭘 먹기’와 ‘편안하게 안 먹기’ 중 후자를 아무 망설임 없이 택하는 나의 식성은 여기서도 가감없이 드러나는 셈이다.
차를 타는 과정도 싫지만 부지런히 마시지 않으면 차가 금방 식어버리는 것도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찻잎을 계속 담가놓으면 떫은 맛이 우러나기에 어느 시점에는 꺼내어 따로 놓아야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찻잎을 빼놓을 시점을 잘 가늠해야 하고, 인퓨저를 놓을 곳도 마련해야 한다. 차를 다 마신 뒤에 인퓨저를 탈탈 털고 찻잎을 긁어내는 뒷처리도 귀찮다. 써놓고 보니 정말 너무 욕먹을 각오를 하고 쓴 것 같군.
그럼에도 삶의 방향은 차를 더 마시려는 방향으로 설정해두고 있긴 하다. 그게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치 ‘탄수화물을 줄이자’ ‘더 많이 걷자’ 같은 방향 설정을 해놓고 또렷한 노력은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건강을 위한 노력이 다 그런 법이지만.
물론 체감하기 힘든 건강 효과 하나만으로 차를 마시려고 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맛이 있으니까 마신다. 나는 차 중에서는 자스민차를 가장 좋아해서 소비 속도가 아무리 느리더라도 떨어지지 않게 사놓고 이따금 마시는데, 상큼한 자스민 꽃향기의 청량함과 적절히 구수한 차맛을 같이 즐길 수 있어 직관적으로 즐겁다. 가격도 저렴한 만큼 정성스럽게 우려내어 깊이있게 즐겨야만 한다는 부담도 없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얼그레이나 페퍼민트도 좋아한다. 일상의 정경을 장식하는 차로는 이렇게 난이도 낮은차가 제격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향기롭고 맛있는 차는 틀면 나오는 게 아니다-image by pexel)
그런데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자스민차를 좋아하게 되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순전히 대학 시절에 학교 근처에 있던 탄탄면 집 덕분이다. 얼큰하면서 쏘는 듯한 매운 맛이 일품이던 그 탄탄면 가게의 사장님은 본토식 접객 매너에 대단히 충실한 분이라, 손님 잔이 빌 때마다 투명한 주전자로 끓인 차를 가득 따라주었다. 그렇게 따른 차는 고혹적인 빛이 감돌면서 향기는 상큼하고 맛은 구수했다. 해외 음식에 대한 상식이 전무한 백지상태나 마찬가지였던 나는 중국 음식점에서 물 대신 자스민차를 마시는 것도 몰라서 무슨 차인지를 물어본 뒤에야 자스민 차라는 걸 알고 오래지 않아 자스민차 한 통을 집에 사놓았다. 맛도 모르고 상식도 없는 내게 차라는 게 참 맛있고 계속 마실 만하다는 인식을 새겨준 것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탄탄면 가게의 사장님이었던 셈이다. 과연 멋진 경험이 바로 취향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사장님, 지켜보고 계신가요?
다만 자스민차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차를 마시는 방법이 간단해지는 것은 아니라, 나는 이를 조금이라도 쉽게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써봤다. 거름망이 달린 스테인리스 텀블러나 차를 넣는 작은 칸이 달린 유리 텀블러도 써보고, 실리콘으로 된 티백모양 인퓨저, 거름망이 달린 티포트도 써봤다. 그러나 물을 끓여서 붓고 차를 우린다는 근본 과정은 고스란히 남는 터라 씻기 귀찮은 물건이 늘어나는 결과가 되었을 따름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그냥 진공단열이 된 스테인리스 통짜 머그컵과 걸칠 수 있는 바구니형 인퓨저, 그리고 실리콘 뚜껑을 쓰고 있다. 역시 단순하고 튼튼하고 크고 관리 편한 것이 제일이다. 이건 다기가 아니라 캠핑용품, 군용품을 고르는 기준이지만 나로서는 이게 한계까지 타협한 결과다. 차를 마시고 싶은 것이지 다도를 하려는 게 아니니까 아름다움은 사치다.
그런데 이런 나조차 다도의 깊은 멋을 살짝 맛본 일이 있으니, 아버지의 취미가 다도인 친구의 집에 놀러갔을 때였다. 그날 친구는 어깨너머로 배운대로 차를 끓여줬는데, 이게 여간 훌륭하지 않았다. 구부러진 나무 모양을 그대로 살린 다도 전용 테이블 위에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미를 간직한 다기로 우려낸 철관음은 물리적으로 따뜻할뿐만 아니라 영혼을 따스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잔까지 데우고 차를 적정 온도까지 식혀서 아주 느리게 마시는 과정 자체에 의식으로서의 정서적 온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전 같으면 사치스러운 도구로 괜히 번잡한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했겠으나, 그만한 형식에는 형식이 갖는 고유의 가치가 있었다. 역시 뭐든 경험하고 볼 일이다.
그리하여 요즘은 차 끓이기가 너무 귀찮을 때면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곤 하는데, 아무래도 잘 되지는 않는다. 추억은 멀고 귀찮음은 가깝다. 결국 향기와 온기를 즐기는 한편으로 차를 마셔서 생기는 부수적 이득을 곱씹으며 나를 달랜다. 따뜻한 차를 마시는 밤에는 신기할 정도로 커피 생각도 술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그 부수적 이득인데, 특별히 눈이 번쩍 뜨이거나 쓸모없는 정력이 용솟음치지 않아도 그만한 이득이면 건강상의 이점은 차고 넘칠 듯하다. 그러니 차를 끓이며 과정을 경건히 즐길만한 성숙한 자아만 마련하면 될 텐데……도파민의 홍수를 피해 차를 마시다 보면 찻잔 바닥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