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별미에서 다양성을 배우다
쓴맛이 강하거나 물컹하거나 가시를 바르기가 번거로운 음식, 가령 나물이나 가지, 생선따위를 꺼리는 사람을 편식가로 몰고 ‘애기입맛’ ‘초딩입맛’으로 비난하는 게 대단히 일반적인 문화인데, 나는 이것을 파시즘으로 규정한다. 과장이 아니다. 어른이 주면 먹어야 한다, 한국인이면 먹어야 한다, 등등의 이유로 취향의 획일화를 당연시하는 건 어엿한 파시즘이다. ‘생선을 왜 안 먹어?’와 ‘그 나이에 왜 결혼을 안 해?’ ‘남자끼리 여자끼리 사랑하는 게 말이 돼?’가 딱히 다른 층위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주장을 해도 ‘이렇게 맛있는데 왜 싫다는 거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게 사람이다. 타인의 논리는 이해해도 감각은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일종의 반격용으로 품고 있는 음식이 바로 삭힌 홍어다. 절대 다수가 도저히 먹지 못하는 이 신비의 음식을 나는 즐겨 먹기 때문이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못 먹지?’ 라면서.
냄새나는 음식 순위에서 수르스트뢰밍 다음으로 당당히 2위를 차지한 이 음식을 내가 먹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출신 때문이다. 고향이 전주라 홍어가 제삿상에 올라갔고, 그걸 일부 받아오는 게 거의 매년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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