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배워야 할 언어인가?
"앞으로는 누구나 코딩을 배워야 한다." 이 말은 이제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초등학생부터 은퇴자까지, 구직자부터 기업 임원까지 모든 연령과 직종을 아우르며 코딩 학습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학원 간판과 온라인 광고, 자기계발서 코너에는 빠짐없이 "코딩은 미래의 언어"라는 뉘앙스가 등장한다. 마치 20세기의 영어나 문해력처럼, 코딩은 '모두가 알아야 할 필수 소양'으로 격상되었다. 더 이상 프로그래머만의 전유물이 아닌,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본 도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광풍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코딩은 모두에게 필요한 언어일까?
이 현상의 배경을 살펴보면, 디지털 기술이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아침에 스마트폰 알람으로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우리는 코드로 작동하는 무수한 시스템들과 상호작용한다.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부르고, AI가 추천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인터넷 뱅킹으로 금융업무를 처리하는 일상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가전제품은 IoT로 연결되고, 자율주행 기술이 교통수단을 변화시키며, 웨어러블 기기가 건강을 모니터링한다.
이처럼 코드 위에서 작동하는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두려움이 있다.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구를 통제할 수 없고, 도구를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 속에서 소외된다는 위기감이다. 과거 문맹이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했던 것처럼, 디지털 문맹이 새로운 형태의 계층 분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의 편향성, 플랫폼 독점 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기술에 대한 이해가 단순한 사용법을 넘어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 다른 동력이 더해졌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기존 직업 구조를 변화시키면서 등장한 '개발자 유토피아' 신화다. 높은 연봉, 유연한 근무 환경, 글로벌 기업으로의 이직 가능성 등이 부각되며, 개발자는 마치 21세기의 금융인처럼 이상화되었다. "AI에게 대체되지 않는 직업", "자동화 시대의 생존 전략"이라는 수사가 코딩 교육 마케팅의 핵심이 되면서, 코딩은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보험이자 사회적 지위 상승의 확실한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2025년 5월 26일자 헤럴드경제 기사에 보면 “IT업계 관계자는 ‘AI의 일자리 대체 영향의 직격탄을 맞은 인력이 개발자’라고 말했다.”라는 기사와 같이 개발자도 더 이상 “AI에게 대체되지 않는 직업”은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교육계를 급속히 변화시켰다. 2015년부터 초등학교 실과에 소프트웨어 교육이 도입되고, 2025년 의무화가 되었다. 또한 중고등학교에서는 정보 과목의 중요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며, 의무화가 확대되고 있다. 대학에서는 비전공자를 위한 SW 기초 교양과목이 졸업 필수 요건이 되었고, 사회 교육 영역에서는 국비 지원 교육부터 기업 부트캠프까지 다양한 형태의 코딩 교육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마치 모든 교육이 코딩이라는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가 과연 바람직한 방향일까? 많은 교육과정이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단순히 시대적 요구나 취업 경쟁력 향상이라는 외재적 동기에 의존한 채, 학습자 개인의 관심사나 적성과의 연관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코딩의 기본 문법은 익히지만,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해결하고자 하는지,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문해력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자. 전통적으로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기능적 능력을 의미했지만, 현대적 정의에서는 텍스트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미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사고의 틀을 포괄한다. 진정한 문해력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능력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코딩 문해력이란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을 암기하는 것을 넘어서, 기술의 원리와 사회적 영향, 윤리적 함의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기술적 구현 능력뿐만 아니라,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평가할 수 있는 통찰력, 그리고 기술을 인간적 가치와 조화롭게 활용할 수 있는 윤리적 판단력이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많은 코딩 교육은 이러한 포괄적 문해력보다는 도구적 숙련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알고리즘 문제 해결, 웹사이트 제작 등 가시적인 결과물 생산에 치중하면서, 코딩이라는 행위가 갖는 더 넓은 의미와 책임에 대한 성찰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이는 마치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맞춤법과 문법만 강조하고,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에 대한 고민은 빠뜨리는 것과 같다.
더 심각한 문제는 '코딩은 누구나 배워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이 강제성과 결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 영어 교육 열풍과 놀랍도록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유아용 코딩 교구부터 청소년 개발자 캠프까지, 아이들은 코딩을 자연스럽게 탐구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성인 교육에서도 '늦깎이 개발자' 성공담이 확산되면서, 단기간의 강도 높은 교육으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는 부트캠프식 접근법이 깊이 있는 학습보다는 빠른 성과에 집중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코딩적 사고'가 마치 유일하고 최선의 사고방식인 것처럼 여겨지는 현상이다. 복잡한 문제를 논리적으로 분해하고, 구조화하며,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코딩적 사고는 확실히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문제가 논리로만 풀리지는 않는다. 인간은 감정, 직관, 맥락이라는 불확실한 요소를 가진 존재이며, 기술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영역은 여전히 광대하다.
예술 창작, 인간관계, 윤리적 판단, 감정적 치유 등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모순을 포용하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며, 직관적 통찰을 활용하는 비코딩적 사고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창의성, 상상력, 공감 능력은 체계적 분석보다는 열린 마음과 자유로운 연상, 감성적 몰입에서 더 잘 발현된다. 코딩적 사고만이 정답이라는 인식은 오히려 이런 다른 사고방식들을 억압하고 평가절하할 위험이 있다.
이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 '코딩은 모두가 배워야 한다'는 명제가 사회적 합의로 굳어지면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표준화와 배제의 논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코딩 능력이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하면서, 코딩을 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디지털 격차가 단순한 기술적 차이를 넘어 사회적 지위의 차이로 고착화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특히 한국 사회의 교육열과 경쟁 문화가 결합되면서, 코딩 교육도 빠르게 입시 도구화되고 있다. 정보올림피아드, 각종 코딩 대회 등이 스펙 쌓기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이는 다시 사교육 시장의 확대로 이어진다. 결국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의 자녀들이 더 나은 코딩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게 되어,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어야 할 코딩이 오히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술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지, 인간을 평가하거나 분류하기 위한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코딩이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모든 사람이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필수 기능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기여는 단일한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으며,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사회의 조건이다.
코딩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모든 사람을 프로그래머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기술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디지털 환경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데 있다. 이는 반드시 직접 코딩을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마치 좋은 문학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소설가가 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코딩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관심사, 적성, 인생 목표에 따라 코딩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이 사회적 압박이나 두려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와 성찰을 바탕으로 한 자율적 결정이어야 한다.
미래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은 계속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기술과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은 직접 코딩을 통해 기술을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또 어떤 사람은 기술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돕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 모든 역할이 각각 소중하고 필요하다.
진정한 디지털 문해력은 코딩 기술의 습득보다는 기술과 사회,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기술 발전의 방향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사회적 대화와 민주적 참여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만 기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진정한 도구로서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