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것들
"이 상품을 구매한 고객이 함께 구매한 상품"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언가를 사려다 보면 이 문장을 피할 수 없다. 그 아래로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물건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신기한 것은, 꽤 자주 그것들이 실제로 필요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충전 케이블을 사려던 참에 케이블 정리함이 눈에 들어오고, 러닝화를 고르다 보면 기능성 양말이 따라 나온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하지만 이것은 마음을 읽은 게 아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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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알고리즘의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나와 비슷한 행동 패턴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그들이 선택한 것을 내게 보여준다. 내가 A를 샀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A를 사면서 B도 샀다면, 나에게도 B를 권한다. 여기서 '비슷하다'는 것은 취향이 비슷하다거나 성격이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다. 클릭하고, 머무르고, 구매하는 행동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이 방식은 정말 잘 작동한다. 넷플릭스는 내가 좋아할 영화를 알고, 유튜브는 내 기분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주고(난 유튜브로 대부분 음악을 듣는다.), 인스타그램은 내가 관심 가질 만한 계정을 끊임없이 띄워준
다. 덕분에 우리는 검색하고 헤매는 시간을 아끼고, 원하는 것을 더 빨리 찾는다.
편리하다.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 편리함 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
이 표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사람들과 묶일 수 있다는 것.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이상하다. 그들은 누구지? 나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그들도 나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이야기도 모른다. 다만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것을 클릭했을 뿐이다.
그런데 알고리즘의 눈에는 우리가 같은 부류다. 같은 유형, 같은 세그먼트, 같은 클러스터.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몇 개의 범주로 나뉘고, 나는 그중 하나에 속한다. '50대 남성, 테크 관심, 자기 계발서 구매 이력, 이른 아침 활동' 같은 조합이 나를 정의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일부를 맞힌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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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나는 분류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혈액형 성격론이 유행했을 때 "넌 A형이라서 그래"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어떤 틀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나를 설명하는 수고를 덜어주었고, 남들이 나를 이해하는 데 지름길을 제공했다.
몇 년 전부터는 MBTI가 그 역할을 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MBTI를 교환하면 대화가 쉬워진다. "아, INTJ시구나, 그럼 이런 거 좋아하시겠네요." 효율적인 연결이다. 서로를 탐색하는 긴 시간을 건너뛸 수 있다.
하지만 건너뛴 시간 속에 무엇이 있었을까. 그 사람이 INFP, ISTP, INFJ..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가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겪었을 일들, 혹은 그 분류가 담지 못하는 수많은 순간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안다고 느낀다.
유형은 이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유형이 이해 자체가 될 때,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진다.
추천 알고리즘은 이 유형화를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사람이 의식적으로 분류하는 것과 달리, 알고리즘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나를 분류한다. 내가 스크롤을 멈춘 시간, 클릭 후 이탈까지 걸린 초,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삭제한 기록. 이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되고, 그 데이터가 나를 어떤 유형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문에 응하지도, 자기소개를 하지도 않는다. 그냥 살아가는 것만으로 데이터가 쌓이고, 패턴이 추출되고, 유형이 결정된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이미 분류되어 있다.
그 분류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덕분에 좋은 영화를 발견하고, 괜찮은 식당을 찾고, 관심 가는 책을 추천받는다. 문제는 이 편리함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우리가 어떤 전제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전제란… 비슷한 사람들은 비슷한 것을 원한다.
정말 그럴까?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한 사람은 그 영화에서 위로를 받았다. 힘든 시기에 우연히 보게 되어, 주인공의 대사 하나가 마음에 박혔다. 다른 사람은 그 영화가 단지 시간 때우기에 좋았다. 비 오는 일요일, 딱히 볼 게 없어서 틀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알고리즘의 눈에 이 두 사람은 같다. 같은 영화에 높은 평점을 줬으므로, 비슷한 취향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두 사람이 같을까? 그 영화가 그들 삶에서 갖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한 사람에게는 인생 영화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괜찮은 영화다.
데이터는 '무엇을 선택했는가'를 본다. 하지만 '왜 선택했는가'는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왜'가 사람과 사람을 다르게 만든다.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점점 자주 들린다. 추천 시스템뿐 아니라, 마케팅에서, 채용에서, 심지어 의료에서도 우리는 유형으로 묶인다. '이 연령대의 이 직업군은 이런 성향이 있다', '이 증상을 가진 환자군은 이런 치료에 잘 반응한다'. 통계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통계 안에 있는 개인은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유형은 지도와 같다. 지도는 유용하다. 낯선 곳을 헤매지 않게 해 준다. 하지만 지도가 영토는 아니다. 지도에는 골목의 냄새가 없고, 거리의 소음이 없고,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없다.
유형으로 사람을 보는 것은 지도로 영토를 대신하는 것이다. 빠르고 편리하지만, 그 속에서 개인은 점점 흐려진다.
내가 누군가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비슷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같은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다르다. 상대가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알게 될 때, 그 선택 뒤에 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의 맥락 안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 비슷하네"라는 말이 나온다.
알고리즘은 그 '왜'를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다. 알고리즘의 목적은 이해가 아니라 예측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음에 무엇을 클릭할지 맞히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는 상관없다.
효율의 관점에서 이것은 완벽하다.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이 효율은 무언가를 비용으로 치른다.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
이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이 말은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 행동 패턴에서 나는 분명 누군가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 행동이 만들어진 맥락, 그 선택을 하게 된 이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전혀 비슷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점점 더 정교하게 분류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 분류 덕분에 편리해진 것도 많다. 하지만 그 분류 안에서 우리가 잃어가는 것도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것이 중요한지.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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