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커피로스터스는 쇼룸입니다. 처음에는 로스팅과 사무실 기능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납품을 하려면 커피맛을 보여줘야 하니까 머신과 그라인더가 필요했죠. 그리고 상담을 하고, 테이스팅을 하려면 테이블과 의자는 필요하잖아요. 기왕 갖춘다면 매장을 운영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시피도 다 있고, 해 온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카페를 하려면 다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기존의 카페들이 소비자와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너무 빤한 콘셉트와 메뉴와 서비스로 한계에 부딪히는 걸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거든요.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이유 있고 근거 있는 잔소리를 많이 했었거든요. 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남으니까 블로그, 페이스북, 브런치에 글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야 한다던 너는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말한 것이 이거야’라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과시나 자랑, 비난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사례집이나 해설서 같은 카페를 해 보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로스팅한 커피와 직접 만든 디저트를 보여주는 제품 쇼룸이자, 우리가 생각하는 카페와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보여주는 콘텐츠 쇼룸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메뉴는 단 두 가지
이미커피로스터스는 비스포크 커피와 페어링 디저트 세트 단 두 가지입니다.
손님의 취향에 따라서 커피를 만들어주는 것이 비스포크 커피고,
고른 커피에 맞는 디저트를 제공해 주는 것이 페어링 디저트 세트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미커피로스터입니다.
메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준비된 커피는 메뉴판에 나와 있는 세 가지입니다.
설명을 읽어보시고 먼저 원두를 골라주세요.
그리고 평소에 어떻게 드시는지 혹은 오늘 어떻게 드시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시면 손님의 요청에 따라서 준비해 드립니다.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떼, 카푸치노, 플랫화이트 등등 모두 가능하고요, 핸드드립도 가능합니다.
따뜻하게 차갑게 진하게 연하게, 시럽이나 생크림이 들어가는 메뉴도 가능합니다.
원하시면 디저트를 세트로 드실 수도 있는데 다만 저희가 어떤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는지, 미리 알려드리지 않고 또 고르실 수는 없습니다.
각각의 커피에 맞게 어울리도록 만든 디저트가 정해져 있습니다.’
저희 바리스타의 멘트로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대기업에서 제품 브랜드로 ‘비스포크’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저희가 먼저 사용했다는 점을 밝히는 바입니다.
내 맘대로 마실 수 있는 비스포크 커피
비스포크 커피에 대한 반응은 무척 좋았습니다.
고객은 바리스타에게 본인의 취향과 기호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주고 바리스타는 그 요청을 충분히 반영하여 만드니 맛이 있을 수밖에요.
이것은 미각적인 만족만은 아니라 소통의 즐거움이라 생각합니다.
소통의 결과로 만들어진 커피는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죠.
물론 가끔 본인의 선택으로 나온 비스포크 커피에 만족을 못할 수도 있어요.
만족이 안 되는 것은 아쉽지만 본인의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기도 하죠.
이 또한 소통이 잘 되었을 때 얻게 되는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손님들의 비스포크가 진화합니다.
평소의 취향과 다른 산미 있는 커피를 고르기도 하고, 다채로운 조합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고객의 도전이 너무 무모하다 싶을 때가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 전문가의 입장에서 만류하거나 경고(?)를 해 주기도 합니다.
수용하고 안 하고는 본인의 몫이지만요.
저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커피와 디저트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 최고의 맛도 아닐 겁니다. 완전한 새것도 최고의 맛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대신에 저는 늘 먹던 커피와 디저트를 좀 더 즐기는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집밥이 맛있는 것은 조리 실력이 탁월해서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집밥에 얽힌 가족과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맛은 미각을 만족시키지만 경험은 기억을 만족시키게 됩니다.
비스포크 커피는 맛과 경험을 함께 선사하는 커피입니다.
게이샤가 중요한 게 아니고, COE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게이샤는 최고급 커피의 대명사가 된 커피 품종이고, COE는 커피 품질평가 체계 중 가장 공신력이 높은 시스템 중에 하나로 COE에 출품된 커피들은 대부분 품질이 좋고 가격이 높습니다.
내 맘대로 못 먹는 페어링 디저트 세트
‘내 돈 내고 사 먹는데 못 고른다고요?’
‘디저트만 따로 추가할 수 없다고요?’
‘그런 게 어딨어요?’ 죄송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해주시면 안 돼요?’ 죄송합니다. 안됩니다.
다행히 디저트를 알려주지도 않고, ‘먹을래?’ ‘주는 대로 먹어’라고 하는 게 매우 낯설기도 하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
그런데, ‘오마카세’라는 게 있잖아요.
‘오마카세'는 일식 요릿집에서 파생된 용어로 식재료, 조리법, 음식의 양과 종류 등 모든 것을 셰프에게 혹은 주방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전문성과 양심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겠죠.
요즘은 일식 요릿집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식음료에서 사용하고 비단 식음료뿐 아니라, 이사, 여행, 미용 등의 서비스에서도 이런 개념을 차용하기도 합니다.
저희 역시 이 커피에 어울리도록 디저트를 만든 것이니 우리한테 맡겨보시라 는 겁니다.
다년간의 이론과 경험을 통해서 음료와 디저트 간의 어울리는 조합을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런 의도를 담는 법도 알고 있고요.
이건 저희가 정말 잘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커피와 디저트가 각기 맛있어도 안 어울릴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애초에 새로운 커피를 볶은 후 그 맛에 어울릴만한 디저트를 만듭니다.
그래서 같이 먹었을 때 맛의 시너지가 강하게 생겨서 훨씬 다채롭고 재밌는 미식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저희는 디저트를파는게아니라 ‘디저트페어링이라는경험’을파는것이기에 디저트는 고를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