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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커피 Oct 09. 2021

다시 창업.

남구로 이미커피로스터스

이미커피로스터스는 이미의 네 번째 매장입니다.

로스팅을 하고 커피를 파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여느 카페와 다른 점이 별로 없지만 ,

기존의 카페와는 여러모로 다른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일주일에 영업은 4일만 하고 12시에 열어서 7시에 닫습니다.

공간 안쪽에서는 로스팅을 하고, 공간의 바깥쪽에서는 커피를 팝니다.


2. 테이블은 없으며 바에 네 명만 앉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쓸 당시 2021년 현재는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인해서 3석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글이 읽힐 때는 4석 모두 앉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메뉴는 커피와 디저트 세트 이렇게 두 가지만 있고, 커피 외에 다른 음료는 없습니다.

 

4. 테이크아웃은  되고, 이용시간제한이 있습니다.

아무튼 뭔가 안 되는 것이 많은 곳인데 일주일 단위로 진행하는 예약은 거의 채워집니다.


5. 또 한 가지 특징은 남구로에 있다는 점입니다.

굉장히 독특하죠?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는 새로운 콘셉트의 특이한 카페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정말 많은 고민과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 창업.


세 개의 매장을 운영해 보니, 카페 사업에 대해서 많은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더라고요.

좋은 커피와 음료. 디저트를 만드는 방법부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

효율적인 매장 운영  카페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업에 대해서 아주 명확한 답 하나를 찾았습니다.  


‘카페로는 답이 없다는 답’


카페는 점점 더 많아질 테고 경쟁은 더 심해질 겁니다.

아무리 작은 카페라도 새로 생기면 매출에 영향을 줍니다

매출은 아주 적은 폭으로 올랐다 내렸다 하는데  인건비, 임대료, 재료비는 꾸준히 오르지요.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야 하고,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해결하다 보면 에너지는 쉽게 고갈됩니다.

항구에 도착하지 못하는 항해는 그저 표류하는 것에 불구한 것일 텐데, 마치 자영업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직원들 월급 주고, 월세 내려고 알바 뛰어서 매출을 메운다는 사장님들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나 일 시키지 마라'

‘나 일 시키려면 돈 줘라'.

‘나 대신 일하라고 월급 준 거다'

‘돈 벌 궁리를 해야 한다'


이런 선언을 하고서 저는 매장 한켠에서 열심히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에도 안 들어가고 일도 도와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끔 바빠지면 도와주기도 하고, 직원들도 이런저런 일로 저를 찾다 보니 생각을 이어가기 힘들었습니다.


‘나 찾지 마라. 돈 벌러 간다'


아예 매장을 벗어났습니다.

오픈 때 한번, 마감 때 한 번 가다가 나중에는 한번 가거나 아예 안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후로 내 카페 아닌 다른 카페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묻고, 배우고,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또 고민을 하고 이렇게 수개월을 보내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때때로 이게 뭐하는 짓인가.

당장에 한 푼이 급한데, 차라리 직원 한 명 내보내고 내가 일해서  인건비라도 아끼는 게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면 해 오던 대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꾸준히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직원들과 꽤 강도 높은 회의도 했습니다.

매장 현안은 다루지 않고, 변화와 성장을 위한 회의와 토론만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구상을 해 내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갈 거야. 따라와' 한다고 해서는 일이 잘 되지 않습니다.

목적과 목표, 의도와 이유를 온전히 이해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잡고 방향을 설정하는 단계에서부터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직원이 참여할 수는 없었고 이런 논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의지가 있는 직원 두 명이 함께 했습니다.

저희는 매주 한차례 정기적인 회의를 했는데, 명절 하루와 다른 일로 하루를 제외하고 50주를 만났습니다.

중간중간 이슈가 있을 때도 만났습니다.



치열한 고민과 연구의 결과로 저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커피회사 로서의 정체성과 장점을 보여줄 수 있도록 로스팅을 강화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카페의 지향을 보여주는 새로운 카페를 한다.


8년간 카페를 운영하면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콘텐츠로 만든다.


현재의 매장에서는 이것을 실현할 수가 없기에 새로운 공간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상을 했을 때, 사정이 그렇게 좋을 때가 아니었어요.

사실 자영업자로 살면서 사정이 좋은 시기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아무튼 새것을 하려면, 아무리 아껴도 비용이 들기 마련이라서 큰 부담이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이 선 이상 추진을 했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저와 가게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황된 꿈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에 비해서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구로에서 꿈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미가 네 번째 매장을 남구로에 낸다고? ?’  


남구로에서 네 번째 매장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단골손님들과 이미를 알고 있던 업계 관계자들이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홍대 아니고? 망원동이나 연남동도 아니고?


저희 입장에서는 마포구 홍대권에 있으면 좋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저는 통상 임대료의 10배를 목표 매출로 잡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월세 150만 원짜리 매장이면 한 달에 1500만 원 벌어야 합니다.

카페 매장이라면 첫 달부터 목표 매출에 도달할 수도 있지만, 아직 납품처가 확보되지 않은 로스팅 시설로는 언제 목표 매출에 도달할  있을지  수가 없습니다.

콘텐츠를 만들어서 수익을 발생시키려는 구상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준비에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작은 규모의 커피회사들이 로스팅 시설을 확장할 때 도심 외곽으로 빠지잖아요.  

도시에서 치러야  높은 임대료 대신 창고를 매입하거나, 임대를 하더라도 같은 금액으로 훨씬 넣은 공간을 사용할  있죠.

목표하는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 버틸  있으려면 임대료의 규모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저희가 네 번째 매장을 통해서 만들어   있는 수익을 예상하고, 그에 맞는 임대조건을 찾았고, 남구로에서 적정한 공간을 찾게 되었습니다.

남구로를 모르는 분들이라면 ‘남구로가 어디길래?’ ‘땅끝 어디쯤이야?’ 하실 수도 있는데 남구로는 서울입니다. 교통 편리하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걱정하는 이유는 위치나 거리의 문제가 아닌 지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남구로, 대림, 가리봉  일대는 오래전부터 중국 사람들이 이주하여 정착한 곳입니다.

타 지역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중국이들이 많이 삽니다. 중국음식점, 중국 생활용품점도 많고 한자 간판을  상점들이 많습니다.

대중들에게는  영화 ‘범죄도시'의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인데, 이런저런 배경과 뉴스를 통해서 알고 있는 분들에겐 위험한 , 무서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죠.

치안에 대한 불안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좋은 데가 얼마나 많은데) 누가 남구로에 커피를 마시러 오겠냐고'

‘거기서 과연 장사가 되겠냐고'

 원망 섞인 우려와 염려, 응원, 문의를 제법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위치나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콘텐츠가 좋으면 사람들은 어디든지 간다.’

‘그리고 우리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나중에 듣기로는 ‘너무너무 와보고 싶었는데 솔직히 남구로라서 많이 망설였다'는 손님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동네 분들도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뭔가  동네 분위기랑은 너무 다르고, 간판도 없고, 안에도   보여서 이게 카페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을 겁니다.

가끔 문을 열고 들어와서 뭐하는 곳이에요?라고 물으시는 분들도 계셨죠.

오픈하고 얼마  있어서 뭐가 뭔지 모르는 문 앞에 줄 서서 30, 1시간 사람들이 기다리는  보면서 의아했을 거예요.

 동네에 정말  어울리는 그림이었어요. 


 재밌는  제가 오픈 전에 화분에 물을 주거나 매장 앞을 정리하러 나오면

 남구로역 쪽에서 화사하고 샤랄라한 혹은 아주 멋스러운 옷차림의 청년들이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이거든요.

100% 저희 가게 손님이라는 것을   있었습니다.

 동네에는 평일 낮시간에 멋 부리고  곳이 없거든요.

그렇게 오셨던 분들  특히 여성분들이 ‘남구로' 망설였다고 하시더군요.

한편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남구로에 있는 이미' 아니라 ‘이미가 있는 남구로' 되도록 지역발전과 이미지 개선에 일조하겠다는 생각으로 일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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