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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부인 Dec 06. 2023

K아줌마는 자발적이며 유능하다

엄마는 마트에서 일한다 (5)

마트 근무 시작 2주 차, 유래 없는 폭설이 내렸다. 나이가 많은 고객들이 많이 찾는 마트에 눈이 와서 입구가 미끄러우면 안 될 것 같아 뭐래도 해야겠다 싶었다. 자꾸 쓸어도 계속 눈이 쌓이는데 박스를 놓아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염화칼슘을 얻을 곳이 없을까? 혹시 몰라 근처 주민센터를 찾아 연락하니, 염화칼슘을 조금 나눠 줄 수 있다고 하셨다.  


모자를 뒤집어 쓰고 폭설을 헤치며 염화칼슘을 비닐봉지에 얻어 오는데 주변 대학가 학생들은 신이 나서 약속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눈에 설레는 대학생에서 생활력 강한 아줌마로 변신한 느낌도 뭐, 나쁘지 않았다. 매장 앞에 염화칼슘을 뿌려 놓으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 누구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지만 매장의 문제를 해결한 것 같아 뿌듯했다.


예전 회사의 인사 관련 업무를 할 때 자발적 의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직원을 양성하고자 노력했었다. 기업의 철학을 함께 할 직원들을 뽑았고, 업무에서도 우수 사례를 뽑아 공유했다. 업계나 세상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매뉴얼에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직원 스스로의 문제 해결력이 매우 중요했다. 


마트에서 일하며 근무자들의 우수 사례가 눈에 띄었다. 신제품이 나왔을 때 새로운 자리를 만들고 배치하는 일, 요리를 할 때 함께 필요한 제품을 찾아와 놓는 것, 실온 보관 제품이어도 시원하게 해서 판매를 유도하는 것 등 자발적인 판촉활동뿐만 아니라 냉장고에 성에가 끼여서 물건이 안 들어갈 때 전날 냉동고 전원을 내리고 성애를 녹이고 청소하는 협업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까지. 마트 동료들의 자발적인 두뇌 활동과 실천사례가 놀라웠다. 


유통기간이 짧고 재고가 많은 죽을 1+1 판매로 홍보하여 빨리 소진하는 방법, 마트 구성원 간에 공유해야 하는 내용을 고객클레임, 제품 관련 뉴스 등으로 나누어 분류해서 붙이거나, 일요일 행사 제품 가격 위에 포스트잇을 이용한다거나 빈 박스 등을 활용해서 물건의 위치를 높이거나 착착 분류하는 것도 신기했다. 빵이 좀 더 잘 보이게 집에서 만든 손뜨개 용품을 가져다 놓는 직원도 있었고, 예쁜 인형을 가져와서 함께 전시해서 제품이 눈에 띄도록 안내를 하기도 했다. 


마트 근무자로 별도의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우수 사례로 칭찬을 받은 것도 아닐 텐데. 막말로 이렇게 하지 않아도 월급은 같을 텐데, 이런 '자발적 의욕적' 활동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해졌다. (외국 마트에서 마트 근무자가 마트를 뛰어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이것은 혹시 한국 아줌마라서 가능한 게 아닐까. 내 살림을 하면서도 시댁 행사들도 챙겨야 하고, 청소하고 밥을 하면서도 아이들 숙제를 봐주어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커피를 마시며 옷을 개면서도 친구와 전화를 하는 멀티 활동 능력자. 늘 바쁘고, 신경을 많은 곳에 쓰면서도 해야 하는 일들을 스스로 본능적으로 해 내는 능력. 오랜 기간 회사를 다니지 않았어도 이런 기본적인 부지런함과 빠른 손놀림은 계속 숙련된 게 아닐까. 


마트에서 일하면서 내가 경력단절 아줌마라고 부끄럽지 않았다. 이렇게 훌륭한 능력자인 아줌마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게 뿌듯했다. 뭐, 내가 아줌마라서 오바 육바 자뻑이라고 해도 말이다.  


홍보를 위해 그림까지 그려 붙인 아줌마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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