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마트에서 일한다 (6)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안에 진열된 소시지를 뒤지며 찾는 나를 보고 풋, 웃음이 나왔다. 내가 두더지가 되었구나.
제품 진열을 할 때 선배들은 늘 말했다.
- 선입선출 하세요!
- 아니 선입선출이 이렇게 안되면 어떡해요! (일을 이렇게 못해요?)
선입선출. 깊은 의미의 사자성어 같은 이 글은. First In First Out이라는 재무용어를 한글로 바꾼 게 아닐까 싶다. 결국 유통기간이 짧게 남은 제품을 앞에 진열하고 지금 온 제품은 뒤에 쌓으라는 말. 유통기간이 긴 지금 온 제품은 뒤쪽에 진열해야 마트 입장에서 효율적으로 물건의 빠른 현금화를 할 수 있고, 재고를 잘 관리할 수 있다.
직원들은 매일 유통기간이 지난 제품을 육안으로 확인하여 잔여기간이 짧은 제품은 할인 스티커를 붙여 판매를 촉진한다. 그런데 제품이 섞여 있으면 유통기간이 지난 제품이 뒤늦게 발견되어 직원은 관리를 못 한 죄를 짓게 되고, 회사는 매출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는 기존 제품을 다 꺼내고 속에다 다시 차곡차곡 쌓아야 해서 조금은 귀찮고 힘이 가는 업무이다. 특히나 겨울에 냉동제품 재고를 넣을 때면 장갑이 젖고 손이 시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직원들을 거쳐 간 지점의 제품들은 선입선출의 원칙에 어긋나게 제품이 진열이 되어 있다고 자주 지적된다.
나의 오전 출근 후 첫번째 임무는 우유를 냉장고에 쌓고, 제품의 유통기간을 살피는 일이었다. 매일 그렇게 챙기는데도 유통기간이 지난 제품이 할인스티커 없이 발견되었다. 매니저님이 보시면 불호령이 떨어질 일이었다. 진열도 내가 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지? 갸우뚱갸우뚱 생각해 본다.
- 두더지가 지나간 것 같네.
한 선배가 지나가며 말했다. 고객들은 신선한 제품을 찾기 위해 뒤쪽 제품을 골라 가는데 그러려면 앞쪽 제품 진열을 변경하게 되고 그런 상황을 두더지가 지나간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겉으로 웃으면서도 '찔리는' 건 사실 내가 다른 마트에서 '두더지'라서 그렇다.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하는 주부는 싸고 (오래갈) 신선한 제품을 사는 게 목표다. 그렇다 보니 우유도, 두부도, 계란도 신선한 걸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렇다 보니 진열된 상품을 뒤지게 된다. 그러고 보니, 마트 진열하시는 분께 그동안 내가 민폐를 끼쳤나 반성이 되었다.
아무리 뒤쪽에 놔도 맨 뒤에 진열한 우유를 뽑아가는 것도 나고, 제일 밑에 있는 두부를 꺼내서 두부탑을 무너뜨리는 것도 사실 나다. 그러니 손님들께 뭐라고 할 수 없다. 직원은 손님들이 지나간 자리를 다시 정리하고, 물건을 넣으라고 월급을 받은 것이겠지.
배운 대로 선입선출을 실천하는 직원과 신선한 제품을 어떻게든 찾아내려는 손님과의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고를 아는 자로서 내가 뒤진 제품은 최대한 원상 복구하려는 노력은 해야겠다.
그나저나 편의점 보니까 새로 온 제품은 뒤쪽에서 진열하던데 그럼 제품 다 꺼내고 다시 넣는 거 안 해도 되겠다. 부럽다, 하악하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