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마트에서 일한다 (4)
- 어머, 오늘 김밥 재료 사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 아이고, 아이들이 방학했잖아요~ 하하
- 저도 강냉이 좋아하는데, 찰강냉이보다 이게 낫나요?
- 응, 나는 이에 끼는 게 싫어서 말이야.
고객들이랑 계산하는데 자꾸 말을 시키는 나를 발견했다. 대부분 웃으면서 응대해 주시고, 좋은 정보를 나눠 주셔서 반갑고 즐거웠다. 그런데 혹시, 나만 좋은가? 고민이 되었다. 고객 입장이면 어떨까, 내가 요즘 너무 외로운가, 심리 문제가 있나 은근히 신경 쓰였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니, 깔깔깔 웃으며 그가 본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속의 마트 종업원 이야기를 해 주었다. 찾아보니 드라마 속의 마트 직원도 고객과 음식 재료 이야기로 시작해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나니, 내가 크게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안도했다.
마트에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의외로 계산대 이외의 곳에서 일어난다. 기본적인 'OO은 어디 있어요?' '이거 맛있나요?' 질문 이외에도 미역은 어느 제품이 좋은지, 국물 맛 잘 내는 제품은 무엇인지 등 음식 재료에 대한 의견을 묻는 분들이 많다. 매장 직원은 그럴 때 어떻게 답을 하면 좋은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모범 답안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니, 직원이 이것도 모르면 어떻게~하고 핀잔을 듣게 된다. (얼마 전, 고춧가루의 맵기에 대한 문의에 '잘 모르겠다'라고 답변했다가 혼났다.)
그런데 오히려 고객들로부터 좋은 정보를 얻을 때도 많다. 하루는 동일한 토마토 수프 15개 전제품을 사시는 고객에게 궁금함을 못 참고는 (나도 모르게) 질문을 했다.
- 앗, 고객님, 이 토마토 수프가 맛있나요?
- 이 식당이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잖아. 역시, 아는구나. 여기서 만든 수프에 계란 스크램블을 해 주면 남편이 좋아해요. 외국 식당에서 이렇게 해 주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지.
대화를 듣던 옆 손님도 '어머, 그래요?' 하시며 그 제품을 가지러 가셨다. 나의 엉뚱한 호기심이 매출에 기여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수프를 사서 요리를 해 보았다. (건강한 맛이었다. ;) 마트에서 일하면서 고객들에게 얻은 음식 지식들이 많았다. 레몬 농축액을 활용하는 방법, 파인애플 즙의 감기 예방 효과 등 고객들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고객의 경험을 배우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셀프 계산대가 늘어나고, 로봇이 나오면 '사람' 캐셔는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오프라인 매장은 쇠하고 온라인 마트는 점점 잘 된다고 한다. 사람이 없는 오프라인 마트를 상상해 본다. '살기' 위해 먹을 것을 사러 꼭 들러야 하는 곳조차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사람과 한마디 대화 없이도 살 수 있겠구나 싶다. 먹거리는 우리 모두가 쉽게 나눌 수 있는 대화 주제인데, 이처럼 쉬운 대화를 할 곳이 없어진다니, 조금 슬퍼진다.
마트가 먹을 것 이야기로 더 시끄러워지면 어떨까. '오늘 이거 세일해요 사세요~'라는 한 방향 홍보 문구 말고, 고객들끼리 오늘의 반찬거리로 수다를 떠는 곳이 될 수는 없을까. 오늘 많이 사가는 아이템이 실시간으로 공유되어, '아 나도 이거 사서 반찬을 해결해야지'하고 아이디어를 얻으면 어떨까. 마트 직원들과 고객들이 서로 음식과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팍팍한 삶을 즐거운 먹거리로 위로할 수는 없을까.
아... 나 너무 먹을 것에 집착하나. 연말에 마음의 허전함을 느끼는 것일까. 아무래도 친구들을 만나 내 상태를 점검하러 같이 '먹을' 약속을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