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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부인 Nov 28. 2023

몸 쓰는 일을 한 적이 있나요?

엄마는 마트에서 일한다 (2) 

- 이력서를 보니 사무직을 오래 하셨는데, 몸 쓰는 일을 한 적이 있나요? 

- 그럼요, 1200명의 구성원의 선물을 포장한 적도 있습니다. 


아이고, 저는 쌍둥이를 키우는 아줌마인데요. 컴퓨터 앞에서 펜대만 굴리지 않았다고요. 직원들 선물을 포장하는 일도 했고, 전 직원 워크숍 준비를 하며 의자와 책상을 옮기는 일 그런 일도 척척 했었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면접에 응했다. 그리고 매장 근무 첫날, 내가 몸 쓰는 일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처절히 깨달았다. 


오전 근무자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우유, 두부 등의 물류를 정리해서 넣어야 한다. 고객이 계산대에 오는지 확인하고 틈틈이 뛰어가서 계산을 한다. 과일의 상태가 괜찮은지 포장된 상자를 뒤집어서 하나하나 확인하고, 상한 과일을 골라낸다. 유통기간이 지난 제품은 진열대에서 바로 빼내고, 유통기간을 앞둔 제품은 미리 할인을 쳐서 판매를 촉진한다. 물건을 담았던 상자는 분류하여 따로 상자를 펼쳐서(밟아서) 내놓고, 플라스틱 물류용 상자들도 바깥에 내놓는다. 폐기 상품은 등록 후에 포장을 열어서 내용물은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 중간중간 바닥의 먼지를 쓸고, 물걸레로 바닥을 청소한다. 비가 오면 우산 받침대를 가져다 놓고, 바깥에 진열된 제품들을 비닐로 씌워 두고, 눈이 오면 염화칼슘도 입구에 뿌려 둔다. 점심 물류로 제품이 들어오면 냉장과 냉동 제품인지 파악하여 빠르게 물건을 정리하고 넣어야 한다. 이 일들을 하면서도 고객의 문의에는 친절히 답하고 문제를 해결해 드려야 한다. 


내가 근무를 시작하던 겨울, 매장 온도는 바깥과 비슷했다. 매장의 물건들은 따뜻하면 쉽게 상하기 때문에 매장에서는 히터를 틀 수 없었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핫팩을 발과 등에 붙이고 동동 뛰어다녔다. 가만히 있으면 더 추웠다. 


처음에는 근무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나면 허리가 뻐근해져서 집에 겨우 와서는 바로 누웠다. 몸이 슬라임이 되어 이불과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겨우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반신욕을 하고 나면 몸에 온기가 좀 생겼다. 주변 선배들은 안 쓰던 근육을 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 쓰던 근육? 그렇다, 나는 그동안 머리와 손가락 이외의 몸뚱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쉽게 일을 보고, 내 몸을 과대평가했나 후회가 되었다. 허리가 아파서 침을 맞으러 다니기도 했다. 


처음 매장 일을 시작한 분들은 하루 이틀 근무 후 몸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매장에서 뛰어다니며 일하다 보면 만보가 쉽게 넘었다. 일을 하며 정말 나의 몸을 움직인다는 것을 기계가 알려주었다. 그래도 한 달쯤 지나니 신기하게도 몸이 적응을 했는지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반신욕과 핫팩 등으로 피곤을 푸는 요령도 터득하게 되었다. 


얼마 전 아이들 견학 모임에 학부모 지원을 갔는데, 달리는 아이들을 잡을 정도로 내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심심할 때마다 주어 먹던 군것질을 안 해서 그런지 몸무게도 (아주) 조금 줄었다. 퇴근할 때는 머릿속에 기획서, 전략 등의 고민이 없어서 좋았다. 몸 쓰는 일의 유익한 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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