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부인 Nov 23. 2023

직업의 귀천은 정해져 있지

엄마는 마트에서 일한다 (1)

1. 애들 하교할 때까지만 일하면 된다.  

2. 나는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3. 4대 보험을 지원해 주고 월급을 준다. 


각종 먹을 것들을 파는 그곳, 내가 즐겨 이용하던 마트에서 일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러나 매일 출근할 때 마다 마음에 큰 걸림이 있었다. 발령이 난 지점은 내가 대학을 나온 곳이었다. 절친의 하숙집 바로 앞. 과외하던 건물주 자녀의 집 건너편. 


- 중학교 때 썸 타던 대학교수 동창을 마주치면 나는 뭐라 이야기할까. 

- 깐깐하던 과외집 사모님은 어떻게 나를 바라볼까. 

-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정신없이 바쁘던 20대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당당한가.  


마음이 와글와글 복잡했다. 책을 즐겨 읽는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던 내가 이렇게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을 가지고 있다니.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사농공상 봉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한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에게 마트직원 커밍아웃을 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의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의식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마트에서 일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나 마트에서 일 시작했어'라고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이야기를 꺼낼 때는 고개를 숙였다가 살짝 들었는데 이게 왠걸, 나를 처량하게 보는 시각이나 염려하는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도 어릴 때 엄마아빠 도와서 이런 일도 해 봤어' '나는 이런 일도 해 봤는 걸' 여기저기서 각종 몸 쓰는 아르바이트 경험담들이 쏟아졌다. 끌탕을 하다 말하니 속이 다 시원했다. 


누군가 '직업의 귀천'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격하게' 공감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직업의 귀천 의식이 내 안에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 어쨌거나 나는 마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일을 하면서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감정들처럼 내 안의 여러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있었다. 나의 좌충우돌 갈팡질팡 생각들에 대해 정리를 하고 싶었다. 마트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어느 아줌마의 변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다.   










 내가 작업하던 홍보물을 살짝 바꿔 보았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