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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해 Jul 27. 2016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합리적 후면주차와 부조리한 비일상성

    사전에서 일상이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말한다. 날, 반복, 생활. 이 세 단어는 모두 믿음을 기초로 한다. 우리는 자고 일어나면 해가 뜨고, 학교/회사 등에서 별 일이 없으며, 그리하여 내 삶을 능히 영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즉, 이 일상이 논리적, 합리적이고, 충분히 예측 및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사실상 그 정도의 믿음도 없다면 말 그대로 ‘일상가능?’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하는 일상적 비일상만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일상은 일상적인가? 우리는 삶 속 부조리를 말끔히 걷어내고 살아갈 수 있나? 그런 부조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걸까?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그의 책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서 막스 베버가 말한 서구 근대 사회의 합리화 과정을 오늘날 사회의 곳곳에 적용하여 분석한다. 통칭 ‘맥도날드화’라 불리는 그의 이론은 사실상 베버가 말하는 합리성의 요건들, 즉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 가능성, 그리고 자동화를 통한 통제를 일상 속에 연장한 것이다. 하필 이름이 맥도날드화인 이유는 대규모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의 운영 방식이 정확히 베버의 합리화 과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면주차 표지판과 후면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전면주차 표지판 앞에 죽 늘어선 후면주차 차량들 역시 이 맥도날드화의 법칙을 꽤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사진을 찍기 직전에 유일하게 전면주차된 차 한 대가 나갔고, 나머지 빈틈은 후면주차 차량만이 가득했다. 절차의 간소화를 중시하는 효율성에 따라 사람들은 출근할 때 차를 빼기 쉽도록 후면주차를 한다. 이는 시야를 확보하여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는 시도와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주차공간과 자신이 모는 자동차, 그리고 이웃들에 대한 통제도 포함한다. 개별 운전자의 입장에서 수량화와 양 자체를 중시하는 계산 가능성을 다룰 수는 없지만, 사진의 차량들이 모두가 각자의 합리성에 기반하여 주차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각각 3~6장을 할애하여 합리성의 네 가지 예시들을 설명한 조지 리처는 그 다음 7장에서 맥도날드화의 다섯 번째 특징인 합리성의 불합리성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불합리성은 그 중에서도 비인간화와 연결되어 있는데, 계산대의 긴 줄, 외식을 함에도 집보다 부실한 식사, 즐거움/현실에 대한 환상, 거짓 친근감, 신비로움의 상실 등을 말한다. 효율성의 논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이루어진 메피아의 노동 환경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노동자의 죽음을 불렀다. 누군가의 합리성은 다른 어느 쪽에서 누군가의 불합리성/비인간화로 이어진다.


맥도날드식 합리성은 역설적으로 불합리성을 향한다.

 

   마찬가지로 효율성을 고려한 각자의 성실하고 착실한 후면주차는 수목, 화단, 그리고 저층 주민들의 매연 흡입을 대가로 이루어진다. 부조리라는 매연은 언제나 일상의 일상성이라는 신화 틈새에서 숨쉬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부조리는, 저렇게 전면주차 팻말을 꽂아봐야 그들이 전면주차를 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인간화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불합리를 감수해 달라는 호소는 당사자가 그 불합리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마주할 수 없다. 합리성으로 포장된 ‘가능일상’과 그 아래 억압된 ‘일상가능?’은 이렇게 끝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오직 나의 ‘가능일상’이 누군가의 ‘일상가능?’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감정적, 윤리적 불합리를 마주할 때에야, 말할 수 없으며, 말을 하더라도 들려지지 않아 끝없이 실패하고 고통받는 일상적 비일상의 부조리한 틈새가 보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도 일상, 합리성이라는 거대한 믿음은 작은 비일상, 부조리를 전제하여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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