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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이 아빠 Mar 04. 2016

아이가 태어난 뒤 꼭 해야 할 생각.

남자 그리고 육아의 시작 #6

응애~!응애~! 


아버님, 손가락 하고 발가락 개수 확인해 주세요. 


 하고 애가 튀어나왔다. 탯줄을 자르면서 와이프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고 싶었건만 오히려 내가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기를 보자마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핏덩이' 정말 말 그대로 핏덩이였다. 예쁜 것도 몰랐다. 솔직히 징그러웠다. 내 와이프의 배가 들어갔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와이프는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평화롭게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셨던 우리의 연애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어차피 도우미 아주머니도 1달가량 오시고 조리원에서 10일 정도 있으니 뭐 어려운 건 다 지나가겠거니 했다. 그런데 뭐 아시겠지만 모든 것은 나의 엄청나고도 훌륭한 착각이었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마라톤을 왜 하냐고 물으니까, 단지 끝내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물론 세상이 대견스러워하는 스포츠는 마라톤 뿐이라서, 라는 대답이 있다. 마라토너의 몸은 스프린터의 몸만큼 섹시하지 않다. 스프린터의 아름다운 근육도 마라토너에게는 없다. 스프린트만큼 보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도 않는다. 아니, 마라톤 완주하는 걸 다 보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지 않을까? 스프린트는 섹시하고 마라톤은 밋밋하다. 육아는 마라톤과 같다. 일처럼 강한 성취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강렬한 자극도 없다. 재미없고 힘들다. 


돈, 체력, 시간


육아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스프린터였다. 곧 끝나겠거니 하는 생각에 정말 많은 것을 몰빵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제 100미터 골에 다 근접한 것 같은데 근접하지 않은 느낌이 들 때에서야 육아라는 것이 길고 긴 마라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번아웃 할 뻔했다. 


최고의 육아는 없다. 최선의 육아가 있을 뿐


삶을 스프린트로 보는 사람과 마라톤으로 보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물론 스프린트로 보고 대성공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스프린트는 끝마쳤다고 해서 대견히 여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따라서 스프린트 인생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고개 빳빳이 들고 사는 사람은 몇 안 되게 마련이다. 반면, 삶을 마라톤으로 보는 사람은 삶을 쟁취해야 할 대상의 집합으로 보지 않는다. 경험으로 본다. 죽을 때를 늘 명상한다.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이라고 답한다. 이런 사람들은 밋밋하다. 그래서 대성공을 거두는 예가 드물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으로 족하다. 애초 대성공을 거두려는 사람은 마라토너 자격이 없는 셈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스프린트로 보는 사람은 당장의 최고를 원한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해야 하는 것들, 얻는 것들을 쟁취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걷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빨대를 사용하게 강요하고 하지 못하면 초조해한다. 그리고 아이의 상태나 모든 것이 자랑의 요소로 여긴다. 하지만 마라톤으로 보는 사람은 나와 아이의 경험으로 여긴다. 그냥 아이가 커가는 것을 함께하는 경험이라 생각하고 아이가 커감에 따라 나도 함께 성장해나가기를 희망한다. 


물론 스프린터와 마라토너의 차이. 극단적 예만 보고 세상과 삶을 이해하는 사람과 평균과 확률을 보며 삶을 이해하는 사람의 차이. 생긴 대로 사는 것을 진정한 삶으로 여기는 사람과, 이러한 본능과 무의식의 지배에 저항하는 것을 진정한 삶으로 여기는 사람. 물질적 가치로 볼 때 누가 더 ‘성공적’ 삶을 산다는 것을 헤아리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각자의 선택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육아는 없다. 나 나름의 최선의 육아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아기에 대한 욕심이 컸다. 잘생기고 똑똑하길 바랬기에 모유 수유도 최대한 길게 하고 싶었고 다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건 모두 가지고 있길 바랬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둘 다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리셋하고 육아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둘이서 육아에 대한 방향을 잡고 방침을 정해야 했다. 아빠나 엄마가 잠깐 악역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약을 먹일 때 싫어할 것 같아서 주저한다던가 씻는 것을 거부하는 아기를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아이와의 삶은 길다. 아이가 이번 일로 날 싫어하진 않을까? 부모를 싫어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당장은 안 해도 되는 고민이다. 


모유 수유가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다면 당장 끊길 바란다. 그것을 통해 얻어진 체력으로 차라리 아이에게 1시간을 더 웃어주고 최선을 다해 놀아주자. 모유 수유로 피곤해진 엄마의 찡그린 모습, 짜증 난 기분으로 아빠와 틱틱거리는 대화가 차라리 아이에게 안 좋다고 생각한다. 장난감이 없다면 당장 사기보단 아빠의 손 발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아이와 놀아주자. 


너무 힘들 때도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시간을 울때 나도 처음엔 많이 화를 냈다. 짜증도 났고 출근까지 시간도 애매해서 다시 자기도 애매한 시간이 가장 짜증이 났다. 하지만 기억해라. 반드시 울음은 멈출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이 시간은 끝날 것이고 (물론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면 바로 병원으로 가야 되는 것은 잊지 말자) 아이는 무럭무럭 커서 50일 사진도 100일 사진도 그리고 돌까지도 어느새 코 앞에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순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때 돼서야 아쉬운 마음이 든다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기억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리워진다.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같이 카페에 가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것도 집에서 혼자 게임을 하던 것도 일요일 오후 늦게 어머니가 날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던 것도. 하지만 지금 당장 못할 뿐 언젠가 올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아이와 내가 겪는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출산 전에 대한 큰 이야기는 대부분 했다. 아마 앞으로 출산 전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냥 어느 이슈나 짤막한 사건만을 말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본격적인 육아에 대한, 도윤이와 나의 이야기를 할 텐데 육아에 대한 말을 하기 전에 이 부분을 다시 명확하게 해보고 싶었다. 


졸지에 졸업생이 된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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