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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동 Oct 22. 2024

예쁜 우리 딸 인보야, 늘 안전하렴

퀴어 부모의 마음과 이태원 참사 

지난 칼럼에서 아이와 함께 즐기는 소풍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집 근처에서 뛰어노는 아이의 마실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태원 참사로 인해 돌아가신 영령들에게 애도와 추모의 인사를 올립니다. 


*날벼락같은 이태원 참사 속보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아기가 잠들면 ‘오늘 하루도 큰 사고 없이 잘 지냈네’라고 중얼거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는 ‘하느님, 우리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역경은 피하게 하시고, 늘 안전하게 지켜주소서’라고 기도를 올립니다. 남편이 운전하는 따릉이(세발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에 나갈 때면, 아이와 함께 성호경을 긋고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곤 하지요.


며칠 전 저녁 잠자리 들기 전, 뉴스 속보를 보았습니다. 다름 아닌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인파 가운데 150여 명이 압사사고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는 긴급 뉴스를 보고 너무도 놀랬습니다. 순간 ‘자연 재난도 아닌데 도심 한가운데서 어떻게 압사가 일어날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망자는 초기 보다 더 많이 늘어 19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나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이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나는 만약 금쪽같은 내 새끼를 이런 참사로 하루아침에 잃어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면 하늘이 무너질 일입니다. 정말 너무도 끔찍하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는 지금은 품 안에서 지내는 아기이지만, 이다음에 커서는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친구들/애인과 함께 즐거운 축제에 놀러 다닐 것이기 때문이죠.


[謹弔]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부모와 가족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쓰려 옵니다. 그들에겐 고인들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던’ ‘돈을 벌어 형과 누나들에게 선물을 했던’ 자식이요 형제자매였던 것입니다. 


참사 후 이태원역에 시민들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구조에 참여했던 구조자들은 ‘더 많이 살리지 못해 죄송하다’라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은 조화를 헌화하면서 고개를 숙여 애도를 표현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편지와 메모를 남겼고 과자를 가져다 놓았다. 어떤 시민은 아이들 밥 한 끼라도 먹고 하늘나라로 가라며 상을 차려 놓았습니다. 마음 따듯한 이웃들의 모습입니다.


*파렴치한 정권과 행정 관료들 


이와 같은 추모의 이면에, 이번 참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정부와 고위급 인사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실망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아직 사과 한마디 없는 대통령, 안전의 책임을 내팽개친 행정안전부 장관, 외신 기자회견장에서 농담을 던지며 희희 낙낙한 모습을 보여준 총리, 이태원을 관할하는 용산구청장과 경찰의 수뇌부 경찰청장. 당신들은 이렇게 무고한 꽃다운 10대, 20대 아이들이 하늘나라로 떠나야 했던 참사에 정말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합니까? 나는 이들이 언론에서 ‘유감’ '심심한 사과’라고 내뱉는 말이 역겹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죄송하고 사죄드린다 '라고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지요.


더 경악스러운 행위는, 경찰이 작성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보도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참사의 수습과 향후 대책에 기반한 내용이 아니라 이번 참사가 정권을 위협받을 수 있는 안위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있었던 과거 경찰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인가요? 오늘날에도 경찰 조직은 민중의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조직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성소수자에게 국가란?


나는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지만, 나의 남편은 남편이 아닙니다.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어 있지 않아 법적으로 남남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포함하여 내가 1963년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59년간, 국가는 나의 ‘자유로울 권리’,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 그리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모조리 앗아간 나쁜 국가체입니다. 내가 빼앗긴 권리들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지만, 성소수자는 제외입니다. 


이런 차별과 배제를 경험할 때마다, 나는 동성애자인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결론은 내렸지요. 동성애자인 나에게 국가는 더 이상 없다. 이런 이유로 국민(나라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싫어졌습니다. 대신에 나는 시민이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또한 국민의례에서 행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내가 충성해야 할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한국 사회(커뮤니티) 이기 때문입니다. 작고하신 리영희 선생님께 말씀하신 ‘소위 말해서 애국’이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말입니다, 이태원 참사 후, 저와 똑같은 외침을 보았습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 저항하는 시위대는 이런 피켓을 들고 있었습니다. ‘6.34 우리에게 국가는 없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재산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해악을 서슴지 않고 저질러왔습니다. 모국에서 공부하던 재일 유학생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무고한 섬의 어부를 간첩으로 조작했습니다. 


이런 사악함도 모자라,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유가족과 살아남은 단원고 친구들은 고통에 빠뜨렸습니다. 아이들은 ‘기다려라’라는 말을 너무 잘 들어 하늘나라로 떠나야 했지요. 유가족들은 진상을 규명하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지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부모님들은 전국을 돌며 증언하였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부모들에게 우파들은 세월호 단식 텐트 앞에서 피자를 먹으며 조롱했습니다. 


최근 국민 청원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게 장례비를 지급하는데 세금 타령을 하며 지급하지 말자는 글이 올라와서 5만 명이 이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인정머리 란 눈곱만치도 없는 무리들의 만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디 이뿐이던 가요? 성소수자들에게 가한 국가의 만행은 어떠했습니까? 

故 변희수 하사는 군인으로 복무하는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갖고 복무하던 최고로 멋진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그런 변희수 하사에게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생명과 같은 군복을 벗겼습니다. 이런 악랄한 행위는 결국 그녀의 생명을 앗아간 사회적 타살입니다. 그녀의 사망에도 국가는 ‘미안하다, 죄송하다’라는 사과 한마디 없었지요. 


또 하나의 만행이 있었지요. 그 일은 다름 아닌  국방부가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서 처벌하는 사찰입니다. 


국방부가 무엇이길래 성소수자 군인 개인의 침실을 들여다보는 것입니까? 오, 놀라워라! 국방부는 성소수자 군인 커플의 성관계를 악랄한 군형법으로 처벌했습니다. 제발 정신 차리세요, 국가는 성소수자들의 군복무를 환영하고 감사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동성애혐오세력들은 동성애가 군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광신도 집단입니다.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하는 군형법에 관한 헌법소원 소송이 있었지만 합헌으로 판결되어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폐지될 것입니다. 정의의 날개를 달고 군형법의 독소조항이 폐지될 그날은 꼭 올 것입니다. 


이토록 국가는 왜 이리 잔인 무도한 것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나는 이런 악마의 모습을 수도 없이 보면서 분노를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국가에 대한 개념을 나의 정체성에 기반하여 새롭게 재정의 했습니다. 

“나에게 국가란 없다. 나에겐 오직 어머니의 나라‘모국(=한국 사회)’만 있을 뿐이다.” 



분노와 저항을 마음에 새기며 민중가요를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당한 영령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주시옵소서. 

자식과 가족을 잃고 슬픔과 고통에 빠진 부모님들과 가족들을 위로하시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치유하소서. 

우리 딸내미를 늘 안전하게 보호해 주소서. 아멘”




*본 글은 필자가 소속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의 웹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게재일:2022년 11 월 18일).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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