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소
나의 할아버지 1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산포에서 살다가 다시 면소재지로 이사를 왔다. 이때부터 어렴풋한 유년의 기억이 시작되는 것 같다. 다른 이들은 다섯 살 때 일이나 세 살 때의 일까지 기억난다고 하지만 나의 기억은 크게 거슬러 가지는 않는다. 시골이긴 하지만 면 소재지였고 마을의 규모가 제법 컸었다. 가구 수가 200여 호 남짓 되는 시골스럽지 않은 곳이었다. 농협과 면사무소, 기차역, 초등학교가 우리 마을에 있었다.
마을길도 미로처럼 이리저리 뻗어져 있었고 한번 잘못 들어가거나 하면 잘 찾기 힘들 정도로 길이 이리저리 나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은 마을 한 중앙에 있었다. 처음에는 공들여 지은 집인 흔적이 있는 허름한 초가집이 두 채, 안채와 건너 채가 있었다.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 기억하는 첫 번째 영상은 좀 놀라운 것이었다. 안방 아랫목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고 윗목에는 낯선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할아버지 머리위로 시렁이 있었고 그 시렁위에는 고리궤짝이 얹어있었다. 할아버지 등 뒤로는 예쁘게 수가 놓아진 하얀 옷 덮개가 걸려 있었다. 기억나는 영상은 할아버지께서 후취로 맞이할 할머니를 선보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후일 언니들에게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맞이한 5번째 후처 중에 마지막 후처였던 것으로 기억을 해 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내가 시골로 이사 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얼굴은 동글동글 하고 눈은 크고 항상 웃는 모습이었다. 이 기억도 고모와 언니들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영상이다. 고모와 언니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항상 술을 드시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도무지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셨으리라 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5일장에 데리고 다니셨고 거기에서 군것질 거리를 많이 사 주셨다. 번데기, 고동, 소 족편, 우무...등등 할아버지를 따라간 5일 장에는 정말 볼 것이 많았고 규모가 꽤나 컸다.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의 샛골 장이었던 것을 그저 멋모르고 크다는 생각을 했었나보다.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데 엄마께서 말씀해 주시길 할아버지가 너를 너무 예뻐하셔서 장에를 잘 데리고 다녔는데 어느 날 내가 장에서 혼자 씩씩대면서 오더란다. 왜냐고 물으니 ‘할아버지가 나를 팔려고 다른 사람하고 흥정하고 계셔서 도망쳐 왔다’ 며 엄마한테 이르더란다.
한참 후에 오신 할아버지께 엄마가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할아버지께서 소장수하고 소 매매에 대해서 이야기 중이었는데 내가 없어져서 한참을 찾다가 집에 와보는 중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계속 웃으시더란다.
엄마 기억으로는 여섯 명의 아이들 중 그중 딸이 다섯 명이고 그 딸 중에서 네 번째로 태어난 아이를 왜 그리 예뻐 하셨는지 이해를 하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엄마 기억으로는 할아버지가 어떤 아이에게 돈을 주는 장면을 보고 왜 그 아이에게 돈을 주냐고 했더니 ‘우리 명은이’가 아니냐고 하시더란다. 내 기억에도 할아버지께서 항상 용돈을 주셔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내 호주머니에 제법 풍요로웠던 기억이 난다.
비오는 날 시골에서는 돼지비계를 기름 삼아 호박 썰어 넣고 밀가루로 부침을 만드는 것을 즐겨했다. 매번 비가 오는 날이면 비계기름 냄새가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툇마루에 앉아 계시기에 ‘할아버지 부침개 좀 드실래요?’ 하고 물었더니 예뻐서 죽겠다는 얼굴로 그래 우리 손녀가 해주는 부침 좀 먹어보자고 하셔서 가져다 드렸더니 맛있게 드시면서 방귀를 뀌시는데 너무 너무 웃겨서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대목이다. 오토바이가 시동걸때 나는 소리처럼 ‘부릉부릉 ’하시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긴지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 가셨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가 집을 나가신 후 시름시름 앓으셨는데 건넌방에서 누워계셨다. 간경화였는데 연세가 많으셔서 수술은 어렵고 잘 모시다가 편안히 가시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엄마가 모셨다. 할아버지께서도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셨는데 엄마는 사과를 수저로 긁어서 드리다가 나중에는 그 당시에는 귀한 믹서를 구입하셔서 사과를 갈아드리셨다.
할아버지의 뒷심부름은 내 담당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할아버지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질겁하였고 할아버지 방에는 아예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상하게 냄새가 나지 않았다.
때때로 할아버지 방에서 같이 잠을 자기도 했고 할아버지께서 눈이 침침하셔서 날마다 눈에 하얀 가루약을 넣어 드려야 했는데 그 가루약을 넣어 드린 것도 우리식구 중에 나밖에 없었다.
. 또 할아버지가 딸꾹질을 계속하셔서 생강이 좋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혼자 장에 가서 생강을 사다가 절구에 빻아서 할아버지께 드린 것도 기억이 난다. 몇 달 동안 계속되던 병수발도 끝이 났다. 어느 추운 겨울 내 생일 날 새벽에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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