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 제 안에 부모성(父母性) 이 있는 것 같긴해요. 분명 그런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닌 순간들도 많아요. 폭주하는 기차처럼 화를 쏟아낸 적도 있고요. 차라리 아이를 낳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아요.
언론에서는 아이만 두고 부모들이 외출해서 사고가 난 경우도 있고, 아이들을 앞세워 범죄를 저지르는 부모들도 있잖아요. 아동 학대는 어떻고요. 아이 몸 곳곳에 상처가 증거로 남아 있는데도 그런 적 없다며 발뺌하는 부모들을 보면 할 수만 있다면 부모 자격을 박탈해버리고 싶은 걸요. 그런데도 모든 부모에게 부모성이 있다는 걸 사실 믿기 어려워요.
그래: 그런 뉴스들을 들을 때면 너무 기가막히고 화가 나지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저는 그런 분들에게도 ‘부모성’은 존재한다고 믿어요. 걸작을 품고 있어도 불필요한 부분이 덜어내지지 않으면 돌덩이일 뿐이니까요. 돌덩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야 걸작이 되는 것처럼 부모성도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기 전에는 돌덩이에 불과해요.
우리사회는 ‘문제가 있는 부모니까,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라고 하며 양육지식과 부모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가르쳐요. 그러다보니 부모들도 더 많이 배우면 좋은 부모가 될 거라고 생각하기 쉽죠. 저는 부모를 이해하고 대하는 기본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부모에게는 ‘부모성’이 있거든요. 다만 우리가 삶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그리고 지금도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가지 것들이 부모성을 두껍게 덮고 있을 수 있지요. 겹겹이 덮여 있으면 드러나기 어렵지 않겠어요? 그걸 벗겨내면 부모성은 분명히 발현돼요.
나의 부모성을 덮고 있는 것
아연: 가령 어떤 것들이 부모성을 덮고 있는데요?
그래: 대표적인 건 극도의 물리적 피로감이에요. 몸이 너무 힘들고 피곤하면 마음과 다르게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 쉽죠. 어린시절의 경험이 나의 부모성이 발휘 되는 걸 덮고 있을 때도 있어요. 어느날 남편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당신, 유난히 첫째에게만 예민하고 더 엄격한 것 같아. 왜 그러는 지 모르겠어’ 그 순간엔 ‘내가 언제? 첫째가 그렇게 행동하니까 그렇지!’ 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는데요. 남편이 그런 이야길 쉽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저도 뭔가 찜찜한 마음이 있어서 며칠간 제 행동과 마음을 잘 들여다 봤어요. 가만히 보니 저는 첫째를 (당연히) 무척 사랑하고 친밀한 사이가 되고 싶으면서도 못마땅하게 보는 순간이 많더라고요. ‘나는 충분히 좋은 엄마인데 무엇이 이런 내 마음을 덮고 있을까’를 나에게 물어봤어요. 글쎄 20살의 제가 20살의 첫째를 샘내고 있더라고요.
저는 오남매의 장녀예요. 어렸을 때부터 ‘네가 잘 해야 동생들이 잘한다’ ‘동생에게 양보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대학 3학년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론 첫째딸로서의 부담이 항상 더 크게 저를 따라다녔고요. 그런 20살의 제가 건우에게 눈을 흘기며 말하고 있더라고요. ‘난 그렇게 못했는데 넌 왜 그렇게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냐고, 너무 한 거 아니냐’고요. 그 날 처음으로 20살의 내가 억누르고 살았던 것들을 마주하면서 눈물이 났어요. 첫째의 엄마인 저는 첫째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만큼 맘껏 하며 살기를 바라거든요. 그 마음이 제 어린날의 아쉬움과 질투에 덮여서 제대로 나타나지 못했던 거지요.
아연: 아… 조금은 알겠어요. 사람마다 부모성을 덮고 있는 게 다르겠네요?
그래: 그렇죠. 무엇이 나의 부모성을 덮고 있는지를 찾고 걷어내는 게 부모인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핵심 작업입니다. 또 사회적인 기준이나 분위기가 부모성을 덮을 수도 있어요.
우리 모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요. 때문에 사회적 환경이나 가치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부분은 경계를 나눠서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 해요. 우리 삶의 기준이 되는 ‘신념’도 부모성을 덮을 수 있습니다.
아연: 신념이요? 신념이 없는 사람은 없을텐데요.
그래: 맞아요. 사람은 누구나 신념이 있어요. 신념에 따라 상황을 해석하고, 신념에 따라 행동 하죠. 건강하고 합리적인 신념은 우리 삶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준이 되어주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 중에는 비현실적이고 경직되어 융통성이 없는 것들도 있어요. 임상심리학자이자 합리정서행동치료를 고안한 알버트 엘리스는 이를 ‘비합리적 신념(Irrational beliefs)’이라고 하며 대표적인 11가지를 정리했어요. 비합리적 신념은 부모성을 두껍게 덮고 있는 대표요인이기도 해요.
관점을 바꾸면 달라지는 것들
아연: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비합리적일 수 있다니 갑자기 긴장되고 좀 혼란스러워요.
그래: 합리적 신념과 비합리적 신념의 구별 기준은 의외로 단순해요. 방금 ‘꼭 지켜야 한다’ 라고 표현하셨잖아요. 이렇게 ‘꼭' ‘항상' ‘절대'가 조건처럼 붙는 것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비합리적 신념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한번 찾아보세요.
아연: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부모는 절대 화를 내면 안되고,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는 참으려고 하고,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예상해서 불편할 일 없이 미리 준비해두려고 하죠.
그래: 맞아요. 우린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어해요. 완벽하지 못하면 부족한 부모라고 생각하죠. 완벽주의는 대표적인 비합리적 신념 중 하나에요. 인지심리학자인 워터스가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비합리적 신념을 밝힌 적이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나는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하고, 늘 옳은 행동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아연: 맞아요. 완벽하고 싶어서 늘 긴장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무리 애써도 완벽한 건 불가능했어요. 내가 아무리 잘 보살펴도 아이는 넘어져 다쳤고, 내가 아무리 애써도 아이는 떼를 쓰며 울 때도 있었어요.
그래: 넘어져 다쳤을 때 큰 일 났어요? 달래주지 않으면 아이가 끝까지 떼를 썼나요?
아연: 아뇨. (웃음) 속상하고 화도 나고 난감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큰 일이 나진 않더라고요. 부족한대로 괜찮을 때도 있고, 그냥 없었던 일처럼 흘러갈 때고요.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그래도 괜찮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 내가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했고, 그 바람이 비현실적이고 건강하지도 않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부모로 사는 게 살짝 편안해지고 유연성을 갖기 시작하지요. 내 신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게 되면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너그러워지고 아이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완벽주의’에 덮여있는 나의 부모성이 드러나면 이렇게 나도 아이도 편안해 질 수 있어요.
아연: 그러네요. 부모로서만 편해진 걸 넘어 아이의 삶도 내 삶도 같이 편해졌어요. 또 무엇이 저의 부모성을 덮고 있는지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는데요?
그래: 육아를 하며 문제에 부딪힐 때 ‘이번엔 또 뭐가 문제일까? 뭐가 부족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 쉬워요. 그럴 때 ‘나는 충분히 좋은 부모이고 잘 할 수 있는데, 무엇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왜 이 상황이 어려운 걸까?’라고 관점을 바꿔 질문을 해보세요.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문제와 나를 구분해서 보면 ‘문제 해결력’이 높아져요.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자책에 빠지면 힘도 빠지고 조급해지죠. 불안도가 올라가면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요. 우리는 부족하지 않아요. 내 안의 부모성을 믿고 관점을 바꿔보세요.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요즘부모 다시보기] 다음화에서는 부모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살펴봅니다.
*자람패밀리는 부모의 삶을 연구하며 부모의 성장과 연결을 돕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자람캠퍼스에서는 온라인 부모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람패밀리의 다양한 이야기와 소식은 채널톡을 추가하시면 빠르게 만날 수 있습니다.
http://pf.kakao.com/_vfUxj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