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차분하고 성실하며 일도 눈치껏 하는 인턴이 들어왔다. 말이 그렇지 현장에서 앞의 세 가지를 두루 갖춘 직원을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차분하지만 게으르다던가 일은 잘하지만 성실하지 않던가 눈치가 너무 빤하다 못해 약아서 자기 일도 다른 직원에게 요령껏 떠넘기고 월급 루팡을 한다던가, 성격은 좋은데 눈치가 너무 없어 속터지던가 일은 빨리 하는데 차분하지가 않아서 실수가 잦던가...
지금껏 새로운 직원을 뽑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맞는 사람 찾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다 싶다.
특히나 우리처럼 작은 개인병원은 정해진 인원으로 다양한 일을 진료 시간 내에 소화해 내야 해서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차분하지 못하면 응급 터질 때 실수가 많아지고 다른 직원들까지 불안하게 만들며 성실하지 못하면 시도 때도 없이 온갖 핑계를 대고 병가를 내서 다른 직원들이 그 직원의 일까지 떠맡게 된다. 그리고 눈치가 너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지 못해 한번에 끝낼 일을 몇 번씩 하게 만든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독일 직장에는 Probetag 프로베탁과 Probezeit 프로베짜이트라는 것이 있다. 프로베탁은 서로 간에 그 직장을 그 직원을 선택할지 말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맞뵈기로 또는 테스트로 하루 이틀 일해 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프로베짜이트는 서로가 그 직장을 그 직원을 선택해서 계약서를 쓰고 일 시작과 동시에 약 3개월 에서 6개월 사이에(직장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일해 보고 맞지 않는 다면 바로 그만두거나 자를 수 있는 것이 법적으로 용인되는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처음 직장 또는 새로운 곳으로 이직했을 때 프로베짜이트 동안은 수시로 병가 잘 내고 휴가 잘 내던 독일 사람들도 몸 사리느라 조심한다.
병원을 개원할 당시 이력서 보낸 온 사람들 중에서 면접을 보고 프로베탁 만 수십 명을 해 보았다. 당연히 일한 시간만큼의 비용은 지불되었다. 그리고 그중 몇 명은 프로베탁 만 삼사일 이상 해 보고도 서로 맞지 않아 뽑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프로베짜이트 에서 한두 달 일하다 그만둔 사람들도 있다.
지금 우리 병원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다섯 명의 직원들도 따지고 보면 그 세 가지를 두루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그중 한 가지라도 있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병원 개원부터 함께해온 사람들이라 마치 전우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기도 하고 때로 잘못된 점들을 허심탄 외 하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그럼 에도 서로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대로 라면 함께 가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 뽑을 한두 명이 기존의 팀과 잘 맞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런데 이번에 온 인턴 은 요대로만 잘 커준다면 일 년 뒤에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 그녀도 같은 생각이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녀의 이름은 꼬치. 별의별 별난 이름이 다 있고 우리가 독일식 발음이 정확할 수 없어 더 웃기게 발음되는 독일 이름들도 더러 있겠지만 그중 꼬치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꼬치를 부르다 보니 자연스레 떠올라 버린 이름이 하나 있다.
우리 병원이 개원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직원 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우리 때문에 은퇴를 삼 개월 미뤄준 고마운 유타 밖에 없던 때였다.
그 당시 직원 C는 다리 수술 후에 긴 병가를 내고 있었고
어찌어찌해서 월요일 금요일 오전 근무를 해줄 직원 B와 화요일을 전담해줄 직원 G를 구했다.
(지금 유타 빼고 그들 모두와 함께 일하고 있다.)
병원 일을 놓고 볼 때는 경력자로 일주일 내내 풀로 일할 사람이 당장 필요했지만 최소한 수요일 목요일 근무라도 해줄 그야말로 때워줄 직원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때마침 다른 병원 동료의 소개로 수요일과 목요일을 맡아줄 직원이 오게 되었다.
호탕한 성격의 그녀는 크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병원이 떠나가라 자기소개를 했다."안녕하세요 미스 부랄이에요"
그렇다 방금 당신이 떠올렸던 것이 떠올라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푸악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반가운 미소로 변장하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키도 크고 눈코 입도 시원시원한 그녀는 성격도 정말 쿨하고 좋았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기가 너무 거시기해서 마치 불어처럼 약간 굴려서 브라르라고 부르면 "아니 부랄 한번 해봐 부. 랄!" 이라며 친절하게 발음을 교정해 주기까지 했다.
안다 그녀는 죄가 없다. 그녀의 이름 부랄 도 무죄다 단지 그 이름을 듣고 발칙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는 내 탓이다.
이렇게 글로 쓰는 것도 멈칫 한데 "미스 부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명랑하게 부르자니 죽겠는 거다. 수요일 아침이면 늘 다짐했었다.
그 이름에 무너 지지 않으리! 그런데 부랄이라는 이름은 만만치 않았다.
환자들 이름 중에도 쉬발 등 뛰어난 이름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이름은 댈 것도 아니었다. 미스터 쉬발은 내 기꺼이 쉬발 쉬발 불러 드린다
그런데 미스 부랄은 진정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였다.
부랄은 성격 좋고 성실한 직원이었지만 병원 일이 조금 서툴렀다. 전에 일하던 병원에서 주로 혈액채혈을 도맡아 했다고 했다. 바꿔 말해 서류 일은 전무한 상태였다.
그때는 나도 아는 게 없던 때라서 새로운 서류가 하나 들어오면 나도 몰라 너도 몰라 그럼 우리 어떡하지 하고 머리를 맞대고는 했었다.
꼭 어려운 수학 문제를 앞에 둔 고등학생들 처럼 말이다.
나는 그렇게 라도 누군가 함께 고민할 직원이 있다는 것이 든든했고 그녀가 꼭 친구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 내야 하는 직원의 입장은 그게 아녔던가 보다.
우리의 부랄은 그 후 두 달을 채우고 일을 그만두었다.
그녀가 그만두고 나가는 날 그녀는 예의 그 시원한 제스처로 인사를 나누다가 끝내는 눈물을 터뜨렸다. 일이 어렵지만 않았어도 정말 같이 일하고 싶었는데...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지금도 그녀의 걸걸한 목소리와 큼직 큼직 시원 스런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녀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사람 좋음으로도 이름으로도 역대급이었다.
나는 그녀가 생각나 혼잣말로 "부랄 잘 지내고 있는 거지?"라고 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남편이 "어?" 하며 꿈틀 하더니 괜스레 으흠 으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갱년기의 남편은 작은 일에도 자주 놀란다.
나는 "전에 우리 병원에서 잠깐 있었던 그 부랄 말이야!" 라며 개구진 웃음을 씩 하고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