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느 순간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땅 또는 급한 상황에 맞닿으면 말이 아닌 손짓 발짓이 먼저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바디랭귀지라 부른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 바디랭귀지를 구사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독일어도 영어도 잘 통하지 않던 이탈리아의 도로를 달리다 기름 채우러 들어갔던 주유소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한참을 몸부림치며 바디랭귀지를 구사했던 추억? 이 있다. 또 스페인의 작은 섬 동네 시장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시골 마을에서 그곳의 사람들과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애썼던 일화들이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 땅에서.. 그것도 병원 근무 중에 흰가운 입고 길바닥에서 바디랭귀지를 열렬히 구사하게 되리라 상상해 본 적은 없다.
그 일의 시작은 이러했다.
월요일 그것도 폭격 맞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독일의 가정의 병원에는 주말 지나 갑자기 아픈 사람들이 진찰을 받으러 또는 병가를 받으러 오는 날이 월요일이다. 그래서 가정의 병원에서 가장 바쁜 날 중에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는 월요일 아침에는 진료 예약을 가급적 최소한만 받아 둔다.
그런데...
요즘 가정의 병원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우리 병원 같은 경우 화요일 오후와 수요일 오전 그리고 금요일 오전이 접종 디데이로 잡혀 있어서 월요일 오전에도 진료예약을 꽉꽉 채워 받을 수 받게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월요일 오전 이면 당뇨, 관절염, 폐질환, 심장질환, 파킨슨, 암 등의 질환을 가진 환자들 정기 검진 진료 예약과 수술 후 종합병원에서 퇴원한 환자들의 통원치료, 진료 예약 들이 15분 간격으로 빼곡히 되어 있다.
거기에 주말 지나 급작스레 허리가 아파서,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아프고 혈압이 올라서, 넘어졌는데 팔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무릎이 아파서,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해서 등등 수많은 이유로 진료가 필요하다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줄을 선다. 거기에 목 아프고 기침에 열나고 등의 감기인지 코로나 인지 알 수 없는 환자들까지.... 어느 때는 종합병원 응급실을 방불케 하기도 한다.
자고 일어 나니 혈압이 180이 넘었다는 환자 혈압 재서 확인하고 1번 진료실에 들여보내고 수술 후 실밥을 풀어야 하는 환자 준비해서 2번 진료실로 들여보내고 길에서 넘어졌는데 팔이 잘 안 움직여진다는 환자 초음파 결과 팔이 부러져서 종합병원으로 이송하고 나니 지난주 코로나 테스트 센터로 보냈던 가족에게 전화가 왔다. 가족 모두 확진이었다. 요즘은 환자를 코로나 테스트 센터에 보내는 경우 80-90프로는 확진이다.
젊은 층 그리고 가족들을 중심으로 변이들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글에 등장했던 우리 직원의 가족도 모두 확진되었다. 다행히? 근무시간과 감염위험기간인 잠복기가 겹치지 않아 다른 직원들과 병원은 무사? 할 수 있었다.
컴퓨터에 그 가족의 코로나 확진 사항과 건강상황 들을 노티 해 놓고 병원 현관문을 여니 또 줄이 한참이다.
이제 적응할 때도 됐는데.. 그때마다 깜짝깜짝한다.
우리 병원은 현관문 열면 바로 밖이다. 계단 세 개를 내려가서 조금 걸어 내려가면 넓은 주차 공간이 나온다.
코로나 이후로는 이 공간이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으로 그리고 야외 진료를 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감기 증상을 가진 환자들은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번 상상을 해 보라.. 문을 열자마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밖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얼굴이 동시에 나를 향한다고 말이다. 웬만한 뻔치가 있어도 부담 백배 다.
긴 줄에 맨 앞에선 우리 큰아들 또래로 보이는 젊은 환자가 내게 본인의 핸디를 들고 긴팔을 뻗어 보이고 있었다.
뭐지? 예전에는 간혹 필요한 복잡한 서류 라던가 받아야 할 처방전 중에 어려운 이름이 적힌 약 이름 등을 핸디에 찍힌 사진으로 들고 보여 주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서로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해서 핸디를 보여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서서 고개만 자라처럼 길게 빼고는 환자의 핸디를 들여다보았다.
메모장으로 보이는 핸디 안에는 급하게 썼는지 짧게 짧게 증상이 쓰여 있었다.
기침, 목 아픔, 허리 통증, 병가 필요함.
나는 혹시나 하고 그 환자를 쳐다보며 "기침 있으세요 ?"라는 말과 동시에 기침하는 시늉을 했다
그랬더니 너무나 환하게 두 눈이 접히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청각장애우...
일회용 장갑 끼고 있던 나는 그 환자의 핸디에 무어라 길게 적어 줄 수도 없고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그 환자가 내 입술의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어쩐다... 잠시 고민스러웠다.
우리 병원의 감기 또는 코로나 일지 모를 환자 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료 매뉴얼대로 밖에서 대기했다가 야외 진료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 설명을 어떻게든 전달해야 했다.
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어쨌거나 빠르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이 바디랭귀지 아니겠는가 보는 눈이 좀 많아 민망하기는 했으나 지금 이면 체면 따질 때가 아니다.
평소 워낙 몸이 리듬감 없는 통나무 스타일이라 뻣뻣 공주라는 별명이 있는 나지만 몸 사리지 않고 움직여 보기로 한다.
나는 기침하는 시늉과 목에 손을 대고는 아픈듯한 포즈를 취하고는 우리 병원 문을 가리키고 두 팔로 크게 엑스를 날렸다. 그 뜻은: '기침 나고 목이 아픈 분들은 병원에 못 들어 가요!'되겠다.
그 환자는 알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번쩍 하고 어릴 때 자주 부르는 동요 꼬부랑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 허리를 굽히고는 꼬부랑 할머니 같이 지팡이 쥐고 움직이는 모습을 연출하며 팔을 둥근 해가 떴습니다 할 때처럼.. 둥그렇게 돌리고는 팔 하나를 들어 크게 보여 주었다. 멀리서 보는 사람은 팔 들어 올리는 것이 빅엿을 날릴 때와 조금 비슷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좌우지 당간 그 뜻은 : '우리 병원에는 나이 드신 환자 분들이 대따 많아요!'되겠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 환자가 기다려야 할 곳을 가리키고는 손가락으로 예전 티브이 광고에 요만큼 하며 손가락 두 개로 세탁비누 그만큼 넣으면 된다는 세탁기 광고가 떠올라 손가락 두 개로 보여 주었다.
그 뜻은: '저기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되겠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없을 나의 마지막 바디랭귀지... 예전에 어디선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춤 중에 두 손을 비비고 날리며 쏘리 쏘리 했던 것이 떠올라 두 손을 비벼대며 날려 주었다 열과 성을 다해...
물론 나도 모르게 다리 도 털어 가며... 그렇다 그 뜻은: '기다리게 해서 쏘리 쏘리!' 되겠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전자동으로 흘러나오던 음성과 동시다발 바디랭귀지를... 한마디로 나의 생쇼를 라이브로 관람했던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과 그 말도 안 되는 버둥거림을 이해해 준 환자... 그리고 얼굴은 벌게 지고 땀은 삐질삐질 멘붕 오기 직전이던 나는 모두 함께 웃었다.
나의 열연? 과 밖의 상황을 전해 들은 남편은 고상? 하게 종이와 팬을 들고나가 그 환자의 야외 진료를 마쳤다.
마치, 영화 러브 엑츄얼리에 나오는 그 유명한 스케이치 북 사랑고백처럼 말이다.
비록 민망의 나래를 펼쳤지만 잊고 있던 아주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일상생활하는 것이 모두에게 답답하고 힘든 상황이지만 이 시간이 더 힘들고 외로운 이들이 있다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