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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19. 2021

모두를 미친 듯이 웃게 한 목요일의 환자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개인병원들 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 병원의 경우 주말 지나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에 비해 급한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인 요일은 여유롭게 시작할 때가 많다.

그러나 가끔 예외스럽게 달력을 보면 분명 요일인데 마치 월요일처럼 정신없는 날이 있다. 지난 요일이 딱 그랬다.


안 그래도 요일 치고 예약 환자가 많다 했는데.. 아침부터 종합병원에서 퇴원하고 새로 받은 약들의 처방전과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 거기에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 손등이 부었다, 숨쉬기가 힘들다 등의 응급 환자들...

그 가운데 분명 심전도 상태가 큰 병원으로 당장 가셔야 하는데 안 가겠다고 버티는 환자 설득 까지...

시간 많이 들고 힘들게 하는 환자들 동창회 라도 하려는지 오전 내내 그런 환자들 진료를 하느라 우리 병원 의사 도 직원들도 모두 진이 빠져 있었다.


거기에다 전화는 어찌 그리 많이 와 쌌는지...

쉴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병원 초인종 소리까지 합쳐져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 문의 전화 대부분은 코로나에 관련된 것이었다.


얼마 전 독일 정부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사용을 잠정 중단했다.

그전까지 독일 정부는 AZ 백신이 안전하다고 백신 접종을 장려했었고 의료진들도 대부분 AZ로 1차 접종을 했다. 우리 병원 직원들도 모두 AZ로 1차 접종을 맞췄다.

그런데 갑자기 좀 더 알아볼 것이 있다고 접종하다 말고 스톱시켜 버리다니... 그전에 진작 좀 제대로 알아보던가...

그 덕분에? 애초에 코로나 백신 접종에 반대하던 사람들 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고 사람들에게는 더 큰 불안감을 심어 주었으며 이미 접종을 한 사람들에게도 불필요한 걱정거리를 안겨 주었고 낼모레 AZ 접종 이 계획되어 있던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질문을 남겼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독일 정부 특히나 보건부에서 매뉴얼 없이 우왕좌왕하던 것은 한두 번이 아녀서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 일은 갈팡질팡의 끝판왕이었다.

거기다가 그전에 코로나 백신 접종 만이 살길이라며 앞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백신 접종 본부에서뿐만이 아니라 가정의 병원에서 원하는 일반인 모두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발표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은 전면 검토하겠다며 스톱해 버리고 가정의 병원들에게는 그 어떤 코로나 백신도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하는 사람들 모두 가정의 병원에서 백신 접종을 하게 한다는 발표가 이미 앞서 나와 버렸으니 가정의 병원들로 문의 전화가 빗발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기다가 정부는 지금 까지 가정의 병원과 종합병원에서만 가능했던 코로나 신속 진단 테스트를 독일의 약국 그리고 마트인 ALDI 등에서도 시약을 판매해서 원하는 사람들 누구나 직접 셀프로 코로나 신속 테스트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놈의 진단시약 세트를 누구나 구할 수가 없다는 거다.


코로나에 대한 독일 정부의 기막힌 정책들 이야

말하자면 이 밤이 새도록 해도 부족하다. 

어찌 되었든 그로 인해 가장 피해를 많이 받는 곳은 매번 가정의 병원이다.

안 그래도 일손 부족하고 할 일 많은데.. 주치의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독일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질문할 수 있고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가정의 병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도 없이 전화벨이 울려댄다.

"정부에서 코로나 백신 AZ 사용을 중단했는데.. 이미 백신 접종을 했어요 어쩌죠?"

"내일모레 접종 예약되어 있는데 AZ 접종이 중단됐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내일 콘퍼런스에 가야 하는데 코로나 테스트가 필요해요. 시중에서 신속 진단시약 세트를 사다가 샐프로 해도 된다 해서 다 다녀 봤는데.. 구할 수가 없어요. 어쩌죠?"

우리도 진짜 정부에 묻고 싶다 대체 어쩌라는 거죠?


가정의 병원이 보건부 민원실도 아니고 상담실도 아니건만 하루에도 수도 없이 걸려 는 전화는 주로 코로나에 관련된 위에 질문들과 흡사한 내용 들이다.

정부의 코로나 대책이 이렇게, 저렇게 바뀔 때마다 대신 대답해 느라 땀 빼는 건 언제나 애꿎은 가정의 병원이다.

(보건부 코로나 직통 전화 들은 통화음 울리자마자 해당되는 번호 몇 번을 눌러라

지금은 직원 모두가 통화 중이니 기다려라 등의 기계음만 무한반복 흘러나온다.

아마도 전화통 들고 기다리다 지쳐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지난 수요일도 이런저런 전화들 받아가며 일 하느라 직원들이 몸살 날 지경이었다.

만약 우리 같은 가정의 병원이 보건부처럼 전화해야 기계음만 냅다 나온다면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님들이 이병원 전화 안된다고 뛰어와서 난리가 날것이다.


어떤 날...

한 명은 진료실에서 혈압 재고 다른 한 명은 채혈하느라 울리는 전화 몇 번 패스했더니 하루 종일 병원에 전화했는데 통화 안되더라는 말을 며칠을 들어야 했다.

그러니...

이렇게 미친 듯이 전화벨이 울려 댈 때면... 전화 수화기 한쪽 어깨와 귀 사이에 끼여 놓고 손으로는 컴퓨터 자판 두들기고 으로는 통화 해 가며 오는 환자 받고 가는 환자 보내느라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 한 자세로 열라리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로 인해 누구는 목에 담 결리고 또 누구는 무릎에 통증이 생긴다 해도 말이다.



그렇게...

오전 11시가 다 되어갈 무렵..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퀭한 눈으로 오늘 진짜 피곤하다 를 랩처럼 되뇌며 좀비 같이 병원 안을 어슬렁 거리고 있을 때였다.

방금 진료 끝나고 나간 환자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50대의 중년 여성 환자 인 그녀는 오랜 세월 운동도 챙겨했을 것 같아 보이는 단단한 체격에 똑 부러지는 말투를 가졌다. 또, 그 풍기는 분위기처럼 평소 진료 후에 본인이 받은 처방전과 소견서, 혈액검사서 등을 일일이 챙기고 확인하고 나서야 병원 문을 나서는 야무진 스타일이다.

나는 평소의 그녀 답지 않게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을 잊어버렸나? 또는 진료실에 무언가를 두고 나왔나? 하는 물음표를 담아 "방금 진료 끝나셨잖아요?"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평소의 그 똑소리 나는 말투와는 조금 다르게 다소 어눌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네 그런데 제가 안경을 진료실에 두고 나왔나 봐요 혹시 제 안경 못 보셨어요?"

나는 웃지 않으려 애를 쓰며 몇 번 입을 씰룩거리고는..

"찾고 계시는 안경 환자분이 쓰고 계신데요!" 했다.

그 소리에 그녀는 "어머 어떻게.. 미쳤나 봐 하하하하" 하며 박장대소했다.


우리는 그녀의 그 맑고 시원한 웃음소리에 혹시 라도 그녀가 무안할까 봐 참았던 웃음을 푸우푸풉 해가며 동시 다발로 터트려 버렸다.

다른 환자 처방전을 쓰고 있던 직원도 환자를 대기실에서 진료실로 안내하기 위해 환자 대기실 문을 열던 직원도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환자들도 그 재미난 상황에 미친 듯이 함께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난 우리는 언제 좀비 같았나 싶게 모두 눈이 초롱초롱 해 져서는 누구는 남편이 하도 티브이 리모컨이 없다며 찾아다니길래 자기는 모른다고 했다가 방금 자기가 정리하던 숟가락 통 안에서 찾았다는 둥 또 누구는 핸디 들고 한참 통화하다가 어? 내 핸디 어딨지?라고 찾았다는 둥... 다양한 건망증 실화 들이 쏟아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질세라 튀어나오는 건망증 간증에 안경 쓰고 안경을 찾으러 온 환자도 그 모습에 함께 웃던 사람들도 모두 웃고 또 웃었다.


웃음은 그렇게 전염성이 강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힘든 상황과 버거운 일과에 지쳐 있었도...

마치 어느 봄날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하얀 들꽃처럼 그렇게 퍼져 나간다.

그런 하얀 웃음들이 여러분의 일상에도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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