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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04. 2021

마치 지금 병원에 처음 온것 처럼...

다람쥐 같던 그녀는 알츠하이머


아이들이 이제 크다 보니 한국 드라마 추천을 애들이 해줄 때가 있다.

때로 별그램이나 틱톡 같은 데서 떠다니는 짧은 리뷰들을 보고 시작했다가 정말 재밌는 경우 드라마 덕후인 엄마에게 톡을 보낸다 엄마 이 드라마 알아? 하고

언젠가 큰아들이 나빌레라라는 드라마를 아느냐 물었다 여자 친구와 너무 재밌게 보고 있노라며 말이다

그런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략 할아버지의 발레 도전 이야기 라 해서 패스했었다 좀 더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은 평소 춤 발레 이런 것에 그리 큰 관심이 있지 않았던 데다가 남자 주인공이 할아버지? 왠지 그 발레복이 좀 민망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어서 이기도 했다

그런데 젊은애들이 봐도 재밌다니 왠지 한번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보기 시작한 드라마 나빌레라는 발레를 배워서 날아오르고 싶은 할아버지 덕출의 손동작 하나 발동작 하나에 묻어 나는 열정과 그 꿈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는 장면들에서 손뼉 치며 응원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틱틱거리면서도 누구보다 할아버지를 아끼고 그 꿈을 지지해 주었던 채록이 와 손주에게 무한 사랑을 퍼부어 주듯 알뜰살뜰 챙기는 할아버지의 케미도 보는 내내 마음이 말랑해지게 했다 그런데 중간부터 나오는 박인환 배우님의 너무나 실감 나는 알츠하이머 연기가 나를 힘들게 했다

왜냐하면

우리 병원에도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시는 환자들이 많이 계신다 그분들이 겪고 있을 심적인 방황과 갈등 등의 모든 것을 박인환 배우님은 그대로 그린 듯이 연기하고 있었다

그 장면 들을 볼 때마다 우리 환자들이 오버랩되어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드라마 나빌레라를 보며 수시로 떠올랐던 환자가 한 명 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우리 병원을 개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니 한 3년쯤 된 일인가?

그때는 병원일에 적응하느라 매일이 새롭던 그런 때였다. 워낙 모르던 것이 많아 저녁 9시 10시까지 야근은 기본이었고 가뜩이나 많고 많은 서류들 사이에서 숨바꼭질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은 환자가 무슨 서류를 해 달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헤매기도 했다


그날은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우리 환자의 의료기록들 중에 필요한 것을 팩스 해 달라고 병동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놈의 기록이 컴퓨터 안에서도 나오지 않고 몇십 년 전 우리 결혼사진 앨범만큼 두꺼운 환자 진료 기록카드를 뒤져도 나오지 않아 정신없이 찾고 있을 때였다.

그때 병원문을 열고 들어온 자그마한 키에 통통하고 동그란 얼굴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급한 말투의 아주머니는 그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는 분이었다 핑크색 또는 오렌지 색종이에 자잘한 글씨로 주로 남편분의 처방전과 소견서 등을 부탁하고는 했는데 그날도 오렌지빛 종이에 남편이 평소 복용하는 약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것을 주고는 처방전을 부탁한다며 내일 아침에 찾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부리나케 나갔다.


그 작은 체구에 빠리빠리 한 모습이 마치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으러 다니는 다람쥐를 연상케 했다.

저분도 우리만큼 바쁜가 보네 하고 웃고 지나갔다.

그런데 서류를 겨우 찾아 팩스 하고 수술 스케줄 잡힌 환자 심전도실에서 검사하고는 막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을 때였다(그때는 사실 그 간단한 심전도 검사 하나 하고도 우와 내가 해냈어라는 생각에 샐프 감동에 젖어들던 때였다)


내일 처방전 찾으러 오겠다며 분명 아까도 다녀 가셨던 그 아주머니가 이번엔 핑크 색종이를 내게 들이밀며 소견서와 처방전을 부탁했다

나는 그 아주머니가 바쁘게 다니다가 병원에 왔다 갔던 것을 깜빡 했다보다 싶어 아까 내게 주고 갔던 오렌지빛 종이를 보여 주며 "아까 이거 주셨잖아요 똑같은 건데.. 아직 못 끝냈어요 내일 찾으신다고 해서.."


그런데 아주머니가 그 오렌지빛 종이와 핑크 색종이를 번갈아 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다황 했다 아니 처방전 아직 안 나온 게 울 일이야? 아니면 깜빡한 게 창피해 서였나?

일상 속에서 수시로 깜빡해서 하던 음식 태우고 솥 태우고 알던 이름 잊어버려 한참을 더듬어야 기억하고 등등 깜빡이라면 나도 만만치 않은데.... 내 상식으로는 그게 그리 울 일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금이라면 대략 짐작을 하고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을 일인데..

그때는 너무 경험 이 없던 때라 순발력이 딸릴 때였다.

평소 그녀는 주로 남편의 처방전 소견서 또는 남편의 진료 예약 등을 맡아서 해 왔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분이 조금 지병이 있나 보다 했지 그녀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당시 우린 병원에서는.. 자신의 정년퇴직도 미루고 3개월 동안 우리를 돕기 위해 남아주었던 구원투수 같던 직원 유타가 있었다.

유타는 내게 살짝 귓속말로 잠깐 보자고 해서 혈액 검사실에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알고 보니...

다람쥐 같이 날래 보이던 그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

모든 병들이 그러하듯 이병도 단계가 여럿인데 이제 시작하는 단계였다.

그래서 본인이 병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맘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거다.

혹시 라도 잊을까 싶어 눈에 띄는 색색의 종이들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 순간들...

그럴 때마다 느끼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그녀를 종종 작은 일에도 무너지게 했던 것 같다.


우리가 왕진을 다니는 환자들 중에는 아예 의사소통이 불가능 한 다른 세계에 사시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분들은 환자 자신보다 보호자들이 더 힘이 든 단계일지 모른다.


그런데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순간순간 알 수 있을 만큼 의 단계에 있는 분들은 그 맘적 고통이 짐작 조차 어려운 그런 상황인 거다.

환자들은 처음에는 말도 안 돼? 왜? 내게?로 시작해서 때때로 찾아오는 망각의 늪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 이러다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과 서러움이 한 번에 몰려오는 것 같다.

그날 그녀는 병원에서 한참을 울다 갔다 그러다 탈진하겠다 싶어 물 한잔을 내어 드리고 직원 휴게실에 잠시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 밖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녀가 병원을 찾아오는 날이면 두 번을 오던 세 번을 오던 색색의 종이를 차례로 건넬 지라도 그 누구도 아까 주고 가셨는데요 하지 않는다.

그저 웃으며 마치 지금 처음 병원에 온 것처럼 그렇게 받아서 한쪽에 놓아둔다.

오늘도 병원 사무실 한 귀퉁이에는 색색의 종이들이 떨어진 꽃잎 쌓이듯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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