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Feb 13. 2024

문이 열리네요

이걸로 충분해요


드디어 현관문이 스르륵 하고 열렸다.

이거이 얼마만 이던가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예전에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멋지게 부르던 노래

문이 열리네요 가 콧노래가 되어 흘러나왔다.


이거이 어찌 된 일인고 하면..

그것은 몇 주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멀쩡히 열리고 닫히던 현관문이 더 이상 열리지가 않았다 열쇠를 넣고 아무리 애를 써도 꽉 잠긴

문은 도무지 움직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힘으로 밀어붙였다가는 자물쇠 통 안에서 열쇠가 부러지게 생겼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꼼짝없이 잠긴 문을 그대로 둔 채…

우선은 다른 문을 통해 일상생활을 하기로 했다.

기술자 아저씨를 모셔 오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이아이 인공 지능.. 로봇 청소기.. 로봇이 서빙해 주는 분식집.. 등이

낯설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70대의 친정 엄니가 “짱구야 티브이 좀 켜 줘!” 하면 티브이가 켜지고 팔순 시엄니도 키패드에 비밀번호 누르고 문을 여신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웬 열쇠 타령 인가 하면..

여기는 독일이다. 그렇다 아직 대부분의 주택, 아파트, 빌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열쇠를 들고 다닌다

여전히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아날로그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부분이 많은 곳이다.

그것은 때에 따라 단점이 되기도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 독일에서 우리는 100년 된 주택에 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옛날 주택이다 보니 여기저기 들락 거릴 문들이 많다는 거다.

덕분에 몇 주간 정원 문을 통해서 다녀야 했다.

처음엔 문만 열면 밖으로 나가는 현관문을 두고 정원을 가로질러 빙 돌아 나가려니

성질 급한 사람 환장 하겠는 거다.


특히나 번거로웠던 것이 쓰레기 버리러 다니는 일이었다.

종이 쓰레기 컨테이너도 일반 쓰레기통과 재활용 쓰레기통,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모두 집 밖 울타리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 또는 종이 쓰레기들을 들고 영화제 레드카펫 밟듯 정원을 사뿐사뿐

걸어 나가서 계단 내려가고 나무로 되어 있는 울타리를 들어 올리고

철제로 되어 삐이익 하는 소리도 정겨운?

덧문을 열어야 비로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평소 보다 두 배의 시간을 요했다.

게다가 배에 힘 딱주고 사뿐히 걸어야 가는 걸음마다 쓰레기 뿌리고 다니는 걸 면한다


정원문으로 다니기 힘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면 식구들이 어디를 나갔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 집 멍뭉이 나리는 알고 있다. 현관문 앞은 나리에게 세상을 연결해 주는 통로 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므로 현관문으로 다닐 때는 갔다 올게 한마디면 되었다


그런데 정원문으로 다니려니 나리가 먼저 일어나 허리를 쭉쭉 펴고 준비 운동을 한다.

정원에서 벽난로용 나무를 가지러 가던 꽃을 심던 정원 문이 열리면 나리는 언제나 함께 나가 놀았기 때문에 정원문에 열쇠 꽂는 소리만 나도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것이다.

저도 같이 나가는 줄 알고 말이다.

그런 아이를 두고 출근할 때는 현관문으로 나갈 때 보다 몇 배는 마음이

힘들었다.


우리는 올해로 이곳으로 이사 들어온 지 10년이 된다

현관문을 비롯해서 정원문 그리고 정원에서 지하실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모두 바꾼 것도 10년 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원래도 연식이 있는 집이니 그 세월 동안 하나 둘 고칠 것이 나오고 손보아야 할 것들이 줄을 서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게 중에는 당장 시급한 것은 아니나 그냥 두고 살기에는 답답하고 불편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현관문의 고장도 지붕이나 창문에 비해 큰 것은 아니나 불편했다.

우리의 친구 이자 기술자 아재인 천의손 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가 독일 레스토랑이던 이 집을 고치며 이사 들어오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기술자 아저씨 들인데.. 수도와 난방을 담당하는 헬빙 아저씨와 집에 관련되어 지붕과

울타리 빼고 웬만한 것은 모두 해 볼 수 있는 천의 손을 가진 제케 아저씨다.

집안과밖 곳곳에 그분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으니

우리 집 하면 이 두 분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다.


기술하면 떠오르는 독일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기술자들을 만나는

것은 하늘에  따기다.


남편은 제케 아저씨와 통화를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저씨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있어서 당장은 와줄 수 없지만 열쇠통을 사다 놓고

연락을 주면 시간 맞춰 보겠다고 했다.

어쨌거나 조만간 고칠 수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워낙 일 잘하 기로 소문이 난 분이라 다른 도시로 출장도 다니고 해서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우리는 건축자재 상가에서 크기 다른 열쇠통 4개와 열쇠 다섯 개가 들어 있는 열쇠통 세트를 60유로 한화로 약 8만 6천 원가량을 지불하고 마련했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아저씨는 그 주 금요일 저녁에 일 끝내고 우리 집을 들려주기로 했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에 다른 사람 같으면 따따불을 준다 해도 노땡큐 할 시간에 기꺼이 와 주겠다는 아저씨가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건축자재 상가 근처에 미니 와이너리가 들어가 있는 마트로 갔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달달한 주말을 보내 시라고 과일향 이 입에 감도는

달콤한 와인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와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마시던 것 우리 입맛에 맞다 싶은 것 몇 가지와 남들이 추천해 주었던

것들 몇 가지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연말에 선물 받았던 와인이 내 입맛에는 기가막히더라는 거다.

아마도 제케 아저씨보다는 아주머니가 더 좋아하실지 모른다.

와인 맛이 아주 달달 하기 때문이다.


릴레 블랑이라는 프랑스 화이트 와인인데 어찌나 달콤하고 입에 맞는지 

한동안? 저녁에 한잔씩 홀짝 거리고는 했다.

15유로 99 한화로 약 2만 3천 원 정도 한다. 독일에서 이 정도 가격이면 아주 비싼 것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와인에 들어간다. 



그렇게 선물도 준비해 두고 우리는 금요일 저녁 아저씨를 기다렸다. 

이 동네 사람치고 보통키에 많이 마른 편에 속하는 제케 아저씨는 날렵한 외모만큼이나

걸음걸이와 동작이 빠르다. 

반가운 인사를 하며 열쇠통을 받아 든 아저씨는 어느새 현관문에서 예전 열쇠통을 꺼내고

새로운 열쇠통으로 갈아 넣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두 개의 문이 새로운 열쇠로 바뀌었다. 

마치 예전에 우리 동네 시장에서 번데기와 같이 삶아서 팔던 소라 고동이 생각났다.

종이로 만든 작은 고깔에 소복이 담아 주던 소라를 이쑤시개로 쏙 쏙 파서 먹듯

아저씨는 날랜 솜씨로 드라이버 하나 들고 열쇠통을 문에서 꺼내고 새로운 열쇠통으로 바꿔 넣었다. 


저녁이라 깜깜해서 어두운데 핸드폰 세 개의 빛으로 지하실 문까지 바꾸는데 약 40분가량이 소요되었다.

사실 아저씨 실력으로는 30분도 안 걸릴 일이기는 한데...

마지막에 지하실 문 열쇠통에 어떤 이유 에서인지 작은 나사 하나가 막고 있어서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아저씨의 도구 박스에서 꺼낸 다른 것으로 (이름을 모름) 해결을 했다

그 신출귀몰한 모습에 마술사의 마술을 본 아이처럼 박수가 절로 나왔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아저씨를 기다리고 계실 아주머니를 생각해서

우리는 더 이상 아저씨의 시간을 뺏지 않기로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시간에 따라 함께 차 한잔 마시거나 식사를 하거나 했었다. 

그러나 금요일 저녁이 아니던가..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집으로 빨리 보내 드려야지..

해서 미리 준비해 둔 사례비와 선물을 드렸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싱글벙글 와인을 받아 들고 집에 있는 아주머니가 아주 좋아하겠다며

기쁘게 받아 들었다

그런데 사례비로 고이 담아둔 돈 봉투는 극구 사양 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미리 열쇠통 사다 두어서 재료비 들어갈 일 없었고 잠깐 손운동 한 거 가지고

무슨 사례비 에요 이걸로 충분해요"라며

받아 든 와인을 가리켰다.


그래도 주말 저녁에 따로 와서 일해 준 건데 어떻게 사례비를 안드리냐고

내가 몇 번 더 간곡히 내밀었건만 아저씨는 끝내 돈을 받지 않았다.

"이 정도 일은 내게 아주 간단한 거예요. 닥터김이 우리에게 의료 상담해 준 것만 해도 

어딘데 각자 가지고 있는 탤런트가 다르니 우리 나누며 살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하며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었다.


부모 형제도 친척도 없이 독일에서 우리 가족끼리만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친구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해타산 따지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람과의 좋은 만남이 늘 고프다.

안 그래도 설 명절인데 한국에 계신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뒤숭숭했던 마음에 아저씨의 따뜻한 정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우리에게 독일 친척이 생긴 느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의 눈 내린 날 출근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