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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15. 2024

독일의 눈 내린 날 출근길

 


삼주나 되었던 아이들 크리스마스 방학이 끝났다.(독일은 주마다 방학일자가 다릅니다)

그동안 여유 있던 출근길이 한층 더 바빠졌다.

병원 가는 길에 있는 막내 학교에 먼저 들렀다 가야 하기 때문이다.


10학년 우리로 고1인 아들의 수업은 7시 55분에 시작한다.

뭔 놈의 학교들이 그리도 일찍 시작하는지...

이제는 컸다고 덜하지만 수업이 7시 50분에 시작하던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어두컴컴해 밤인지 아침인지 구별도 안 가는 한겨울에

커다란 가방 메고 학교 가는 길이 내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바쁜 아침..

크리스마스 때는 기다려도 오지 않던 눈이 하필 학교 개학 하는 날 인심 쓰듯 턱허니 집집마다 문 앞에

쌀자루 놓이듯 쌓였다.

출근 전에 집 앞에 눈도 치워 놔야 하고 자동차 창문앞쪽은 최소한 뚫어 놔야 한다.

그리고 병원 앞쪽도 눈을 치우던 눈녹이는 소금을 뿌리던 해야  테다.


독일 주택에서 눈 오는날 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눈 오는 날 아침 독일 주택 에서는..


눈 쓸어 내는 빗자루와 소금을 들고 나오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로 아이처럼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긴다.

치우기 귀찮기는 하지만 하얗고 몽글몽글한 눈이 아직 좋다.


새해 들어 첫눈은 아니다 지난주 금요일 에도 배추에 소금 뿌리듯 칼국수 반죽 밀 때 밀가루 뿌리듯 오기는 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렇게 눈이 소록소록 쌓여 있을 때 와는 그 느낌이 다르다.

차갑지만 보드라운 눈을 손으로 만져 보며 힘차게 눈을 쓸어 낸다.

빗자루가 지난 간 길은 이미 길이 났지만 온도 떨어지면 그 길이 그대로 빙판길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 사이사이를 소금 솔솔 뿌려 놓는다. 하얀 소금 얹어진 자리는 소금인지 눈인지 모를 하얀 것으로 다시 한번 길이 생긴다.

지난가을 세일 하던 제설용 소금 미리 사다 두기를 얼마나 다행이던가.


독일 겨울은 어제 영상이다 오늘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져서 언제 눈 올지 모르니

미리 길에 뿌리는 소금과 눈 치우는 빗자루를 집안 구석에 준비해 두어야 한다.

길에 뿌리는 미끄럼 방지용 소금은 커다란 통에 5kg 담긴 것도 있고 10kg, 25kg 포대에 담긴 것들도 있다.

보통 10kg가 한화로 약 만원, 25kg가 만팔천 원 정도 한다.

세일할 때 미리 사두면 25kg짜리를 만 오천에 모셔다 놓을 수도 있다.


25kg짜리 한 포대는 보기에는 어마어마해 보여도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헐어 쓰기 시작하면 금방이다.

앞이 넓적하게 생겨 쓰레바퀴를 붙여 놓은 듯 생긴 눈 치우는 빗자루도 스키장이 아닌 집집마다 집 앞 눈을 치워야 하는 일반 가정집 에도 겨울에 꼭 필요하다


요 빗자루는 눈을 밀어내고 퍼다 버리는 제설 용이라 하겠다.

얘네도 삼사만원 짜리부터 팔구만원 까지크기별 다양한 가격이고 작고 귀여운 아이들 용도 있다.



막내 학교 앞에 다다른 골목길은 아직 눈을 치우지 못한 집 앞에 솜이불처럼 깔린 눈들과

이제 동이 트려는지 꾸물거리는 짙푸른 하늘을 이고 있다.

오가는 차량들도 밤새 그 눈을 고스란히 맞은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차 앞 창문만 빼꼼히 열려 있고

지붕 위에도 차문 옆에도 하얗게 눈이 뭉쳐져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하얀 귀마개를 하고 있는 듯 보여 저절로 웃음이 난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중에 아들에게 받은 하얀색 귀마개가 떠올랐다.

어찌나 튼실하고 포근포근 한지 바람 한 톨 허락지 않겠다는 듯 쓰고 나가면 따습다.

눈 내린 날 오늘이야 말로 귀마개 하고 나가기 딱이다.

멀쩡한? 날은 쓰고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영하의 한파보다 영상의 날들이 더 많은 독일 겨울에 아주 추운 날 아니면 모자 쓰고 다니는 어른도 많지 않은데 귀마개 한 어른은 더더군다나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호빵 같은 얼굴에 커다랗고 동그란 귀마개까지 하고 있노라면 고속도로 표지판처럼

멀리서도 눈에 딱딱 띄기 십상이다.

뭐 내멋에 사는 건데.. 남들이 뭔 상관인가 싶어 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식구들과 걷다 보면 어느새 다들 앞서거나 뒤서거나 한다 되에엔쟝...


사실, 어른이 하얗고 동그란 귀마개도 웃기는데..

길이가 너무 길다. 얼굴만 클 뿐 머리통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인지라

귀마개가 자꾸 뒤로 꺾기 웨이브를 춘다

그래서 보통은 머리띠 처럼 하는 것을 뒤통수에 걸고 다닌다.

분명 제대로 귀마개를 썼는데도 몇 분 되지 않아 자꾸 뒤로 자빠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눈 내린 덕분에 출근길에 하얀색 폭신한 귀마개를 썼다.

비주얼도 중요 하지만 엄마 춥지 말라고 지 용돈 쪼개 선물한 아들의 맘이 내겐 더 소중 하다.

학교 앞에 내려 주니 얼른 가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사춘기의 아들일지언정 말이다.

바쁘긴 했지만 어쨌든

눈이 와서 여러모로 설레는 출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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