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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14. 2024

오지라퍼의 독일 마트 장보기

참을 수 없는 주뎅이의 가벼움


오랜만에 우리 동네의 대형 마트 중 한 곳으로 장을 보러 갔다.

한국으로 하면 아마 홈xxx 정도의 크기가 아닐까 한다.


마트는 집에서 그리 먼 곳에 있지는 않지만 대로변 왼쪽에 바로 위치해서 주차하기가 때때로 쉽지가 않다

주차장은 넓은데 4차선 대로변과 너무 인접해 있어서 차량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복잡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가끔 들리는 이유는 다양한 식자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 앞 마트에서는 만날 수 없는 메추리알 이라던가 느타리버섯 등의 채소,

또는 망고등의 열대 과일류…뿐만 아니라 땅콩잼이나 쨈 류도 소시지와 육포 종류도 작은 마트에서는 보기 어려운 수많은 종류들로 긴 벽 한 면씩을 채운다


그중에 내 눈을 가장 반짝이게 하는 곳은 바로바로 향신료와 양념 코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유럽 제품들 뿐만 아니라 대륙을 바꿔 아시아, 미국 등등의 양념들이 인터내셔널 하게 다채롭다.


이번 주말엔 이탈리아산 카넬로니 라고 불리는 긴원통 모양의 파스타를 오븐에 굽는 요리를 할 예정이고….

삼각김밥과 월남쌈을 해 먹을 계획이다.

우리는 다양한 채소도 사고 쌀국수와 유기농 땅콩 갈아 놓은 땅콩무스도 살 겸 요 마트로 오기로 한 것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향신료와 양념을 보면 상상 만으로도 흐뭇한 이런저런 요리 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진짜 세상은 넓고 맛난 것은 무궁무진하다


두 눈을 반짝이며 여기 번쩍 저기 번쩍 하는 마눌을 쫓아다니느라 두리번거리기 바쁜 남편에게 미션을 선사했다

“사과는 빨갛고 달아 보이는 것 으로 담고 감자는 알 굵은 걸로 부탁해”


카트를 남편에게 건네주고 나는 그사이..

도서관이나 대형서점에서 책을 고르듯 향신료 양념코너에서 요것조것 골라 들었다


마트 안이 넓다 보니 우리는 각자 맡은 것을 수행 하기 위해 다니다 소시지 있는 곳에서

다시 만났다.

바게트 샌드위치 안에 넣어 먹을 햄과 베이컨을 고르고 우리는 유제품 코너로 갔다.


유제품 코너에서 남편에게는 빵에 발라 먹을 버터와 크림을 골라 오라 부탁하고

나는 우유와 모자렐라 치즈를 고르고 있을 때였다.


습관처럼 모자렐라 치즈를 들고 유효 기간부터 확인하던 나는 그만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유효기간을 확인했다


독일은 날짜를 쓰는 순서가 우리와 다르다

2024년 1월 13일이라고 쓰는 우리와는 거꾸로 13일 1월 2024년이라 쓴다. 

 

치즈 뒤편 아래쪽에 유효기간 03.01.2024까지 라 떡하니 찍혀 있었다.

다시 보아도 2024년 1월 3일까지 인 것이다.

그리고 딴칸에 다른 치즈 에도 09.01.2024 ,2024년 1월 9일까지가 놓여 있었다.


물론 냉장고에서 때로 며칠 지난 유제품을 먹고 탈이 나지 않기도 하고 그중에 치즈 또는

요구르트는 유효기간 날짜가 무색하게도 꽤 오래 먹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요렇게 적힌 게 독일식 날짜 순서 유효기간 2024년 1월 26일

그러나 장바구니에 담을 때부터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을 담을 수는 없지 않은가

1월 9 일자는 그나마 이번주이지만 1월 3일 자는 2주가 다되어 간다

기막힌 표정으로 들고 있던 모자렐라 치즈를 내려놓자 버터를 들고 오던 남편이 옆으로 다가 왔다

"왜 뭔데"?라고 묻는 남편에게 유효기간 이 지난 치즈를 보여 주자

남편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쩐 일로 우리 오지라퍼님이 조용히 입 닫고 있어?"

나는 멋쩍은 듯 웃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올해부터는 나대지 않고 조용히 살려고"


사실이다 한 성질 하는 데다 갱년기까지 합쳐져 참을 수 없는 주뎅이로 살아온 지 어언 몇 년이다.

나는 그동안 마트 나 백화점에서 불합리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마딱뜨렸을때

참지 않고 이것저것 따져 묻는 통에 남편이 곤란해하며 자리를 뜬 적이 종종 있어서

이제부터는 좀 릴렉스! 널널 하게 살아 보자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에이 그냥 하던 대로 해 네가 이런 거 그냥 넘길 사람이 아니잖아"했다.

그 소리가 파이팅이라도 된 듯 입으로는 아니.. 소리가 나왔지만 몸은 이미 마트 직원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젠장 그래 인생 뭐 별거 있어 사람 생긴 대로 살아야지..


요안에 유효기간 지난 치즈 잔뜩 있었다

나는 넉넉하니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 직원에게 "알려 드릴 게 있어요!"로 시작해서

모자렐라 치즈 칸으로 안내해서 친절하게 유효기간 한참 지난 치즈들을 골라 보여 주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당황하던 아저씨가 "아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동료가 확인한다는 게

한두 개 실수로 빼먹었나 봐요"

라는 이야기를 남긴 체 두 손 가득 때 지난 치즈들을 꺼냈다.


뭔 동료가 한두 개 실수로 빼놓은 게 이리도 많은지 아저씨는 그 후로도 몇 번을 왕복하며 유효기간 지난

치즈들을 수거해 가야 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직원 아저씨에게

„괜찮아요 탓하려고 말씀드린 게 아니라 혹시라도 모르고 가져가는 다른 소비자가 있을까 싶어 알려 드리는 거예요"라고 했다.


다른 때였다면 "아이고나 이게 한두 개가 아니구먼요 이렇게 관리하시면 우리 남편처럼 유효기간은 보지도 않고 들고 오는 사람들은 작년 거 먹겠어요"라고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괜찮다 새해부터는 릴랙스 하기로 결심 하지 않았던가


순간 애정해 마지않는 충청도 사투리로 도배된 드라마 소년시대가 떠올라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울 독자님 중에 한 분이 알려 주셔서 요즘 소년시대라는 드라마를 너무나 재밌게 보았다.

안 그래도 사투리 마니아인데 드라마 90프로 이상이 사투리 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게다가 해학과 비유가 넘치는 정스런 충청도 사투리가 아니던가


지금 상황을 드라마 소녀시대의 주인공

우리 븅태나 지영이 톤으로 야그 한다면 아마 요로코롬 혔을지 모르것다.

"괜찮혀유 작년거 먹는다고 뒤지기야 허것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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