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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09. 2024

수영장 캐비닛 사건


코끝이 싸하게 춥던 어느 주말의 일이다.

남편과 동네 온천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나마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이 주말에 한번 수영을 가는 것이니 웬만하면 거르지 않는 편이다.

물론 수영하는 시간보다 따뜻한 월풀 안에 앉아 버티다 나오는 날이 많아서 목욕을 간 건지 운동을 한 건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독일도 요즘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고 춥다. 햇빛도 적은 동네에서 온도마저 내려가 으슬으슬 하니 주말에 사우나와 온천수영장이 겸비되어 있는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른 아침 시간 에는 수영장 주차장에도 자리가 있고 캐비닛도 여유가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 사람들로 넘쳐 나면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탈의실 문을 열고 바로 마주 보이는 캐비닛은 언제나 경쟁이 치열? 하다.

조금이라도 편하고자 하는 마음은 남녀노소 같기 때문일 것이다.

수영이 끝나고 가방 들고 옷가지와 신발까지 들고 머리에서 물 뚝뚝 떨어 뜨리며 돌아다니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러 탈의실에 들어가기 전 나름 잔머리를 굴렸다.

이따가는 어느쪽 탈의실이 비어 있을지

모르니 양방향 에서 사용이 가능한 캐비닛을 골라 그안에 우선 잠바를 걸어 두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수영장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받은 노란 동전을 팔찌 같이 생긴 캐비닛 열쇠에 넣고 돌려서 뺐다.

비어 있는 캐비닛을 잠가 둔 것이다.


요 캐비닛 에서는 양쪽의 탈의실 자리 어디가 나던 사용 하기 딱 좋은 자리다.

한마디로 명당자리를 미리 찜해 둔 것이라고나 할까?.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탈의실문을 열고 들어 갔다.

잔뜩 껴입은 옷을 훌훌 벗어 옷걸이에 걸면서 왠지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느낌 이들었다.

문 열면 바로 직통으로 보이는 캐비닛을 미리 확보해 둔 상태이기 때문이리라.


요 노란색의 동전은 팔찌 같이 생긴 캐비닛 열쇠에 꽂아서 캐비닛을 열고 닫는 용도로 사용한다

그리고 수영장 안의 임비스에서 (매점 같은곳)사 먹는 음식 또는 음료수 등도 이 노란색 동전에 입력이 된다.

말하자면 우리의 찜질방 열쇠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옷을 수영복으로 다 갈아입고 캐비닛 열쇠를 들고 옷을 벗어 걸어둔 옷걸이와 신발을 캐비닛 안에 넣으려고 할 때였다.

문이... 문이 열리지 않았다.

뭐지? 왜지?

분명 캐비닛에 열쇠를 꽂았고  안에 노란 동전이 들어 있건만 문은  닫힌  열리지 않았다.



캐비닛 문이 요렇게 열려야 그 안에 옷도 걸고 신발도 넣고 다시 잠궈 둘 것인데..

도통 문이 열리지 않으니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노란색 동전의 센서가 워낙 예민해서 터프하게 했더니 작동이 잘 안 됐나? 싶어 다시 한번 뺐다가

팔찌 같이 생긴 캐비닛 열쇠에 살짝 꼽았다. 부드럽게..

그런데도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열쇠를 들고도 문이 안 열리니 어쩌나..


그렇다고 미췬 척하고 비키니 입고 케비넷 앞에 서서 열려라 참깨~! 를 외칠 수도 없고 말이다.

먼저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 있을 남편을 옷가지와 신발까지 들고 부르러 갈 수도 없고..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수영복만 입은 체 골똘히 고민하다 생각난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 당당하게 헐벗은 모습으로 남들 옷 다 입고 서서 입장료를 내고 있는 수영장 입구로 나가서 전후사정을 이야기하고 직원의 도움을 받는다.

둘 다시 탈의실로 들어가 비키니 수영복을 벗고 탈의한 옷들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수영 가방 들고 입구로

나가서 직원의 도움을 받는다.


고장 난 캐비닛 이라면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사용할 수 없을 테니 그냥 놔두고 다른 캐비닛을 사용한 후에

집에 갈 때 수영장 직원에게 귀띔을 해도 늦지는 않을 터다

그러나 내게는 꼭 이 문을 열어야 할 이유가 있다



어찌 되었던 나는 잠긴 문을 열어야 했다. 왜냐하면...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책으로 도서관 자리 미리 맡아 놓는 학생처럼 텅텅 빈 캐비닛을 잠궈 두기 위해서 그 안에 잠바를 벗어 두고 캐비닛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몇 시간 같은 몇 분이 흘렀다.

갑자기 앞쪽 탈의실 문이 열리며 갈색의 짧은 머리 그리고 안경을 쓴 독일 아주머니 한분이 나왔다.

넉넉하고 튼실해 보이는 풍채에 동네 오다가다 한 번쯤 만났을 수 있게 생긴 푸근한 인상 이였다

그덕분인지 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지만 익히 알고 있던 이웃집 사람 대하듯 그녀를 붙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는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말과 함께 내가 미리 잠가 둔 캐비닛에 열쇠를 꽂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머나 세상에나 진짜로  열리네~!"라고 하던 아주머니는 무언가 생각이   물개박수를 치며 

팔찌 같이 생긴 열쇠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나는 그녀가 무얼 알아낸 걸까?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가 문제인 걸까요?"

그랬더니 그녀가 생긴 것만큼 화통한 목소리로 "요게 문제네요 요게! 라며 빨간 팔찌 같은 열쇠 끝에

걸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숫자 세 개를 가리켰다.

"이게 왜요?"라며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한 내게 그녀는 친절하게도

캐비닛 문짝을 가리키며 말했다.


목소리에 웃음끼가 가득한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기 숫자를 보세요. 이 열쇠와 캐비닛 숫자랑 다르죠!"

그제야 나는 "오 마이 갓뜨 그러네요!" 했다.


아직도 뭔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으신 울 독자님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내가 들고 있던 캐비닛 열쇠는 224번이었다 그런데 내가 문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던 캐비닛에는 223번이라고 쓰여 있었다.


고로 나는 탈의실 들어가기 전에 224번 캐비닛에 나의 잠바를 고이 집어넣고 잠가 두고는 편한 자리를 확보해 두었다는 안도감에 도취된 체 캐비닛 번호를 223번으로 착각하고는 그걸 열려고 애썼던 거다

한마디로 엉뚱한 곳에서 삽질을 했던 거다.


224번 열쇠로 223번 캐비닛을 열려고 하니 열리겠는가 말이다.

이거이 왠 쪽 인가.. 상황을 충분히 알겠다는 표정으로 아주머니가 날리신

한마디에 나는 벽을 잡고 말았다.

"이해해요 나도 가끔 그래요. 렌테 (독일의정년퇴직자 최소한 60세 이상) 하고 나니 깜박깜박하는 게 많아져서요!"

아주머니 아니 할매! 나는 아직 50 대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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