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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03. 2024

독일 정원의 동백꽃 필 무렵


3년 전 봄 딱 이맘때였던 것 같다.

날씨가 독일에서는 흔하지 않은 봄스런 주말이었다.

겨우내 버려? 두었던 정원을 남편과 막내 그리고 집에 잠시 다니러 온 딸내미까지 동원해 마음먹고 정리했다.

그리고는 삘 받아서 심을 꽃을 사러 우리가 자주 가던 꽃 상가를 갔었다.


화단에 심을 여러 가지 꽃들과 텃밭에 심을 허브 모종들을 사서 나오다

나는 왠지 자꾸 과일나무 들에 눈이 갔다.

이사 와서 얼마 되지 않아 심어둔 사과나무가 이제는 키도 커지고 매해 알도 굵은 사과를 내어 놓는다

먹어서 맛도 있지만 열매 맺는 것을 보는 일 또한 즐거운 일이다.

과일나무 다른 종류를 심어 볼까? 하는 내게 남편은 "바쉬베어 가 과일을 그렇게 좋아한다더라.."(우리 집에 가끔 출몰해서 지붕을 망쳐 놓는 라쿤) 하며 나를 말렸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른 이웃에 비해 우리 집은 과일나무도 별로 없는데 잊을만하면 라쿤이 찾아와 지붕을 망가뜨려 놓고 가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다

해서 과일나무와는 특별한 연관 관계가 없지 싶었다.

매번 라쿤 이야기를 하면 넘어가던 마누라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번뜩이며 과일나무에 꽂고 있자 남편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느 구석에 서 있던 두 그루의 작은 나무를 들고 와 "이게 어때?"라며 눈앞에 드리 밀었다.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해 보니 그것은 동백이었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트로트 아~모란이 아~~ 아 동백이 할 때의 그 동백꽃!

우리가 너무 재밌게 본 동백이와 필구 그리고 용식이가 나오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그 동백 말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어릴 때라 꽃나무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동백꽃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사실 어떤 꽃을 피우려나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나무 두 그루에 특가 세일이라고 빨간색 딱지와 함께 달려 있던 사진에는 하얀색과 빨간색의 꽃들이 아름다이 피어나 있었다.

그 탐스러운 모습에 홀딱 넘어가 과일나무는 잊어버리고 자그마한 동백나무 두 그루를 들고 왔다.

그렇게 바로 꽃을 피울 것 같아 보이던 동백나무는 일 년이 지나도록 초록의 잎만 뾰족 뾰족 새로 내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울타리 장승처럼 서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아도 동백나무는 꽃을 자주 피우는 과에 속한 다는데…

왜일까? 싶었다.

키는 커지고 싱그러운 잎은 내는데 꽃을 틔울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동백이를 강추했던 남편에게 "저거 혹시 꽃 안 펴서 특가 세일 나온 거 아닐까?"라며 나름 이유 있는 의심을 날렸다.

왜냐하면 원래 한그루에 79유로 99이던 것이 (한화로 약 11만 5천 원) 그때 두 그루에 30유로(한화로 약 4만 3천 원) 파격 세일을 했기 때문이다.

사다 잘 심어 두기는 했는데.. 꽃은 안 피지 생각할수록 수상 하지 않겠는가?


그 후로 꽃상가를 들를 때마다 남편은 "그때 동백이 대신 저 복숭아나무 심었으면 올여름 복숭아 빙수 먹었겄네!"라는 마눌의 타박송을 들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이웃집 슈미트 아저씨네 집 화단에 여태 까지 본 적 없는 화려한 보라색의 꽃이 피어났다.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보라색의 꽃은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숲에 있을 것 같이 생겼었다.

사진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우리는 멍뭉이 나리와 산책을 할 때마다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들여다 보고는 했다.


어느 날 정원에 나와 있던 슈미트 아저씨와 만났다. 우리는 아저씨에게 이 꽃이 도대체 무엇이냐 물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 영롱한 보라색 꽃에 대해 신바람 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름은 클라마티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큰 으아리 꽃이라 불리는 것 같다)

그 이름 아래 다양하게 나뉘는 종 만으로도 수십 가지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열과 성을 다해 알려 주시는 꽃에 대해 듣다가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이 보라색의 꽃을 피울 때까지 10년을 넘게 기다렸다고 했다.

어쩐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더라니.. 했는데..

아니 가만.. 꽃을 10년이나 기다린다고? 세에 상에 나...


원래도 성격이 급해서 뭘 기다리는 걸 잘 못하는 스타일인 나는 당체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꽃 한번 보기 위해 10년을? 승질 급한 사람은 그안에 워쩔겨?

그동안 쓸고 닦고 다듬고 하며 돌봐 왔을 아저씨의 정성에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덩굴 식물이라 우리처럼 울타리 앞에 턱 하니 꽂아 두고 마냥 놔두는 게

아니라 때마다 손질하며 가꾸었을 것이다

크게 바뀌는 것도 없이…

순간 "오매~설마 우리 동백이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 아니겄지?" 싶었다.


그렇게 남의 집 꽃구경 하며 우리 집 울타리에 견고 하게 서서 때 되면 교복 빨아 입듯 똑같이 생긴 새잎만 내놓던 동백이를 타이르듯 오며 가며 "동백아 니는 슈미트 아재네 처럼 오래 걸리면 안 된다" 노래를 하고 다녔다


그러던 작년 가을..

거짓말처럼 짙은 초록의 동백나무에 연둣빛 작은 꽃망울들이 올망졸망 매달리기 시작 했다.

하도 오래? 기다려서 새잎 나는걸 꽃망울로 잘못 봤나 싶어 뒤집어 봐도 분명 꽃망울이었다.

아 드디어 이젠 하얗고 빨간 동백꽃이 피려나 보다 설레기 시작했다.


그런데...

날이 가고 해가 가도 꽃망울이 터지지가 않았다.

아니 이건 뭔 시추에이션? 꽃망울이 달리면 꽃이 피어야 하지 않는가?

여러모로 아리송한 동백이었다.


그렇게 꽃망울을 매단 체 용케 추운 겨울을 버티고 피지 않을 것 같던 동백꽃이 드디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뜸 들였소?" 하는 것처럼 하얂게 빨갛게 피어났다.

너무 예쁜 모습에 친정엄니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더니

"독일에도 동백이 있네? 어디에 겹동백이 이렇게 이쁘게 피었나?"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음하하 어디긴 어딘 어디겠어요 우리  울타리지요 라며 자랑스러워하다..

문득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참을성 없는 마누라가 우리 집 동백이는 언제 피나? 복숭아나무 샀으면..으로 시작

되는 타박송을 아무리 불러 대도 남편은 늘 말했었다 "냅둬~! 때 되면 피겄지~!"


그 말이 맞았다 사람이던 꽃나무던 다 자기의 때가 있는데 우리는 자꾸 조바심을 낸다.

동백나무는 우리  정원의 봄꽃인 노란 수선화와 빨간 튤립이 잎을 내기  꽃을 피워 냈다

마치 기다렸다가 정원이 심심할 틈을 주지 않겠노라는 듯이 시간 맞춰 모습을 드러 낸 거다


나무 한그루도 이렇게 각기 다른 자기의 때를 알고 있는데..

그보다 더 다양한 사람은 얼마나 다른 저마다의 시간을 가졌겠는가 말이다.

새삼 어디선가 남편의 "냅둬~! 때되면 피겄지~!"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포근한 봄바람결에 노래가 개사되듯 우리의 정스런 충청도 사투리로

“냅둬유~~! 때되면 되겄쥬~~! 로 바뀌어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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