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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질 보다 효과 만빵인 것

by 김중희

직원 Gl 이 고개를 갸웃 거리며 이게 당최 뭔지 모르겠다며 내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자세히 보니 연체비 고지서였다. 의료용품을 우리 병원에 납품하는 회사로부터였다.

그런데 몇 가지가 조금 이상 했다.

우리 병원에서 거래하고 있는 회사는 D인데 S 회사로부터 발급된 고지서였다.

요즘 들어 종종 동료 병원들로부터 가짜 고지서가 섞여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했다.

혹시나 그런 건가? 싶어 서류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물품 리스트에는 분명 지난번에 우리가 받았던 용품들이다.

어쩌면 D회사에 없는 것을 다른 업체를 통해 보내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미 지급된 제품값을 두고 두 회사가 알아서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연체비 라? 그것도 물품 지불 내역서에 추가된 것이 아니라

따로 나와 있다는 것 또한 이상 했다.

연체비라 하면 보통 지불 되어야 할 금액이 제때 들어가지 않아서 받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보통 필요한 의료용품이 있으면 D 회사에 주문서를 넣고

특별한 사항이 아니라면 그 주안에 물품들이 리스트와 함께 병원으로 도착한다.

그리고 받은 것이 확인되고 나면 바로 물품의 수량과 가격이 적혀 있는 명세서가 날아온다.

사실 그 명세서는 우리 병원 세금 정산 등에 필요한 서류 여서 보내오는 것이지

물품 값은 이미 병원 계좌에서 바로 자동 이체 된다.


다시 말해 의료 용품을 받고 나면 비용은 바로 지급된다는 말씀.

그런데 뜬금없이 연체비 라니? 뭐지?

미스터리 한 연체비 고지서를 들고 안경 낀 매의 눈으로 훑다 보니 문제가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하.. 그렇군 그렇게 된 것이군... 헛웃음이 터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정리가 되었다.


생각 보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쪽에서 누군가 실수를 한 것이다.

보내야 할 서류를 제때 보내지 못해서 경고장 같은 연체비

고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누가 실수를 했는지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이미 범인을 알고 있다.

'이야 성질 많이 죽었다 이 언니가 예전 같았으면 너님은 뼈도

못 추렸다!' 속으로 읊조리며

심호흡 한번 하고 짜증을 밀어냈다.


맘이야 당장이라도 떴는지 감았는지 확인되지 않는 흰자가 더 많이 보이는

두 눈을 희번덕 거리며

너지 너님이 이거 빼먹고 안보내서 연체비 고지서 날아왔잖아

일 제대로 안 할래? 진짜?라고 따발총을 쏘아 대고 싶다

그러고도 남을 일이 아니던가


이제는 병원일을 시작 한지도 어언 8년 차다.

그동안 팬데믹이다 뭐다 스펙터클한 세월을 겪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눈하나 깜짝 하지

않는 내공이 생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것이 사람과의 관계지만 말이다.


특히나 병원은 아픈 환자들과 의료진뿐만 아니라 보호자, 요양사, 약국, 의료용품회사,

임상병리 실험실, 보험공단 등등…

다양한 곳의 다채로운 사람들로 촘촘히 연계되어 있는 곳이다.

마치 거미줄처럼 어느 때는 도미노처럼.. 그 관계들 속에서 아주 작은 것들로 인해

킥보드 굴러가듯 원활하게 굴러갈 수도 또는 낡은 자전거처럼 삐걱 댈 수도 있다.


나는 속으로는 참을 인자를 새기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평하게

직원 세명 에게 서류들을 훑어보라고 했다.

실수한 직원이 스스로 찾아내기를 그리고 자수? 해서 광명 찾을 시간을 주자

싶어서였다.


그 일과 관계가 없던 두 명은 금세 모르겠노라 했고 실수를 했던 직원은

그쪽에서 헛갈려서 보냈던 서류를 또 보낸 것 같다고 했다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직원이 이유를 찾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긋 웃으며 그래도 이것을 보낸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라고 했다.

한참 서류를 들여다본 직원은 드디어

"다른 서류가 하나 더 들어갔어야 했는데 아직 안 보내줘서 경고한 것이 아닐까?"

라고 했다

역시나 그 직원은 알고 있었던 거다.

나는 모른 척하고 "그래 그러면 회사에 전화해서 확인해 봐!"라고 했다


조금 지나자 그 직원이 한 손에 서류를 다른 손에 전화 수화기를 든 체 다시 왔다.

그 회사에 확인을 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서류 하나가 빠져서 그 서류를 빨리 보내 주지 않으면

연체비를 내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장 내지는 독촉장을 보낸 것이 맞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직원이 빨개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처방전 서류를 보냈어야 했는데 그걸 깜빡한 것 같아!"

빙고~! 나는 웃으며 "그럴 수 있지!"라고 했다.


내 여유로움에 마음이 놓였던 직원은

"여기 너무 작은 글씨로 쓰여있고 매번 보내던 우편봉투도 없어서 그걸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아!"

변명이 가득했으나 OK 이 정도면 고해성사~!

나는 "그랬어?"라고 추임새를 넣어 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직원이 "다음부터는 절대로 네버 잊지 않고 보낼 거야

그 회사 에다가도 다음에는 꼭 우편봉투도 함께 보내라고 이야기해 둘께!"

이쯤 되면 스스로 이유를 찾아내고 실수를 인정하고 잘하겠노라 다짐도 했다.

내가 도끼눈 뜨고 지적질 을 한 것보다 효과가 만빵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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