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앞접시 Sep 07. 2022

미용실 블루


요즘엔 머리 문제로 스트레스가 심하다. 며칠 전 미용실에 다녀온 탓이다. 머지않아 머리를 해야 했고, 그러면 한동안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거야 경험상 예견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런 건 역시 미리 안다고 덜해지는 종류의 역경이 아니니까. 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부러운 마음이 든다. 머리야 어찌 되든 말든, 모자를 눌러쓴 채 룰루랄라 현관문을 나서는 사람의 세계란 얼마나 간편할까. 나로서는 영영 모를 일이다.


나는 미용실에 다녀오면 어김없이 상당한 우울감에 시달린다. 말하자면 미용실 블루, 다. 머리를 망쳤다면 뭐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 요구가 충실히 반영된 경우에도 아무튼 간에 머리가 이상하다. 초면이라 어색한 것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머리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평소엔 머리를 이렇게 만지면 이런 느낌이 되어줬다면, 머리를 새로 하고 난 후엔 같은 공정하에서도 영 엉뚱한 모양이 나와버리는 것이다. 이 정도 손길이면 머리가 약간만 떠야 하는데 너무 확 떠버린다거나, 때론 의도와 정반대로 가버리기도 하고.. 이래서야 어색한 부분을 커버할 수가 없다. 거기다 그걸 수습해보겠다고 추가로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뭔가 알 수 없는 나비효과가 일어나 결국 머리 전체가 엉망이 되고 만다. 요컨대 시술 중에 머리카락의 어떤 상수가 바뀌어버리는 건지, 기존의 공략법들이 전혀 먹혀들질 않는 것이다.


뜻대로 되어주지 않는 낯설고 이상한 머리를 지닌 채 거울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가 이따위 머리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자신감이 한껏 하락해 타인의 시선에 들어서기가 두렵고, 모든 것에 평소보다 우물쭈물거리며, 불의를 보고도 대체로 꾹 참는다. 멈춰! 라고 외치며 나쁜 놈들에게 끼어들었다간 뭐야 머리도 이상한 게, 저리 안 꺼져! 라고 호통을 들을 것만 같다. 그래서 이쪽에서도 뭐 멋진 머리를 한 놈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흥, 정도로 중얼대며 못 본 척 가던 길이나 가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미용실 블루 상태에서 속히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랐을 머리카락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보기도 하고, 우리가 뜻을 같이 하게 됐을 때 펼쳐질 청사진을 제시하며 협조를 구해보기도 하는 등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해봤지만, 모두 이렇다 할 효과는 없었다. 하여 그저 하루하루 거울을 보며 한숨이나 푹푹 쉬어대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언젠가 애견용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 길이 자체가 약간 늘어나 좀 나아진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는데 정말일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더 우울해지진 않을지..


그런데 머리라는 것은 요상한 면이 있어서, 그렇게 한 일주일쯤 지나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면, 어제까지만 해도 한숨만 나오던 머리가 돌연 꽤 괜찮게 느껴지곤 한다. 하룻밤 새 머리칼이 훌쩍 자랐을 리도 없는데. 아무튼 이때부턴 비로소 우울감을 벗어나 서서히 어깨를 펴고 다니기 시작한다. 나쁜 놈들에게 끼어드는 것까지는 아직 무리지만. 


그런데 머리라는 것은 역시 또 요상해서, 그렇게 한두 달 만족하며 잘 살고 있다가도 하루아침에 어라 머리가 왜 이따위지? 라는 실감이 찾아온다. 어제까지 마음에 들던 파마머리가 문득 버섯 모양이 되어 있고, 깔끔했던 커트머리도 돌연 못 견디게 덥수룩해져 있다. 그러면 한 일주일 약속이 없는 날을 택해 미용실을 예약하고, 다시 며칠간의 우울을 지나, 괜찮은데? 를 건너, 어라 왜 이따위지? 로 회귀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또 다시.. 뭔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나저나 내 단골 미용사분은 매번 내게 머리 끝나고 어디 가세요? 라고 묻는데, 세상엔 미용실에 들른 뒤 곧바로 다음 일정을 보러 가는 사람이 꽤 많은 모양이다. 다들 머리를 받고 나면 음.. 이전보다 확실히 더 잘생겨졌군. 이제 이 멋짐을 뽐내러 가볼까나, 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미용실을 나옴과 동시에 챙겨 온 모자를 쓰고 호다닥 집으로 향하는 내 인생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역시 얼굴부터려나. 음.. 이거야 블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용식이와 형설지공 대작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