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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읽는sona Aug 03. 2020

관심과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37~1446



  상대방에게서 듣는 말 중에 특히나 싫어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너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지요. 마치 ‘나는 머리 아픈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라는 뜻으로 비쳤거든요. 물론 내 의사를 존중해주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상대방도 그랬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약간 서운하기도 합니다. 조금은 진지한 관심이 필요했던 것인데.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라는 말을 들어와서인지, 실패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진지한 위로를 듣기 힘들었습니다. 알아서, 마음대로 한 사람에게 누가 진지하게 위로를 해주겠습니끼? 다 제 하고 싶은 대로 했다가 망한 것을. 핑계이겠지만, 어쩌면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점점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상처받을 일도 없고, 위로도 필요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압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후회하지 않으려면 도전해야 하고, 이미 일어난 일은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걸. 모두가 선택과 책임 앞에서 두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연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보듬어줄 순 없을까요?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조금은 진지한 관심과 위로를 줄 수는 없는 것인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가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 그린 그림 한 점을 보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림의 내용은 <수태고지>(1437~1446)였습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 앞에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여인에게 처녀의 몸으로 임신할 것임을 알려줍니다. 마리아에게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입니다.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37~1446,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마리아는 황당한 얼굴로 천사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표정이 압권입니다. 그림을 보고 눈물이 났던 것도 바로 천사의 표정 때문이었지요. 천사가 상대방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을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여인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고, 황당한지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당사자를 대신해 마치 자기 일 마냥, 관심을 보이며 동시에 상대방을 배려해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수많은 화가들이 수태고지를 그렸지만 마리아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천사의 표정과 행동은 처음이었습니다. 특히나 중세 미술에서 가브리엘은 엄격하거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기계적으로 명령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당사자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일이 그렇게 되었으니, 그리 알라.”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러한 무뚝뚝한 천사를 안젤리코는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좌) <스바비아 필사본 복음서> 의 한 페이지,  1150년경  (우) <수태고지>, 성 카타리나 수도원, 12세기 말



  마리아를 향한 천사의 눈빛에서 나는 무한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예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위로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 천사의 표정입니다.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관대한 표정으로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대신, 진지하게 상대의 상태와 심리를 배여하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안젤리코가 그린 천사가 아닐까 합니다. 현실에서는 결코 받을 수 없었던 관심과 위로를 저 멀리 피렌체의 한 수도원 벽화에서 받게 되었지요.





  프라 안젤리코. 이 이름은 사실 화가의 본명이 아닙니다. 원래 이름은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입니다. 프라(fra)는 이탈리아어로 ‘수도사’를, 안젤리코(Angelico)는 ‘천사, 천사의’를 뜻합니다. 둘을 합치면 ‘천사 같은 수도사’라는 말이 되겠지요. 사람이 얼마나 좋았으면 모두가 이름 대신 ‘천사같은 수도사님’이라고 불렀을까요.



  그의 그림을 본다면 이 별명에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천사가 인간으로 지상에 내려와 그림을 그린 것처럼, 그림은 한없이 부드럽고 밝은 색채를 지녔습니다. 안젤리코의 천사들은 고운 무지갯빛의 날개를 지녔습니다. 무지개가 하늘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것처럼, 천사도 천상과 지상의 이어주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수도원 곳곳에 아름다운 그림을 남겼습니다.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를 따스한 색깔로 표현해 지상과 천상, 물질과 정신의 세계에 다리를 놓아주고 있습니다. 수도사들이 고된 하루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벽에 있는 천사와 성모님을 마주칠 때면 얼마나  위로를 받았을까요? 천사같은 수도사님의 그림이 수행의 고됨과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고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37~1446,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프라 안젤리코는 르네상스 시절에 활동한 종교화가입니다. 한평생 종교화를 그렸지만,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배적이었던 르네상스의 영향은 수도원 벽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벽화는 신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림에서 인간을 보듬어주는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백 년 전, 나보다 먼저 고민과 두려움을 안고 살았던 수도사가 나를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벽화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에게 다가와 살며시 눈물을 닦아 줍니다. 예술의 위대한 힘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무관심한 눈으로 "너 알아서 해."라고 말하는 대신, 저 천사처럼 다른 사람에게 진지한 관심과 위로의 눈빛을 건네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따스한 사람이 되라고 천사는 조심스레 말을 걸어옵니다.






박송화/그림읽는sona

그림 보기를 넘어 다양한 각도로 읽어봅니다. 미학과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림 읽는 즐거움을 공유하고, 예술을 통해 우리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s://blog.naver.com/pshjuly13

인스타그램 : @sona_p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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