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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읽는sona Oct 06. 2020

투명한 세계

자크 루이 다비드,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 1812



  다른 사람과 대화에 있어 흔히 명확한 단어, 표현, 문장을 구사할 것을 주문받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나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애매하거나 논리가 맞지 않는 말들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다시금 물어보지 않도록 문장은 최대한 투명해져야 하지요. 그래야만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특히나 사회생활에 있어 투명한 언어사용은 필수입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누군가 회의 시간에 중언부언하고 있다면 짜증을 넘어 화가 나기도 하지요.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문장의 요지와 주장을 파악하고,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사회생활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네요.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1812)은 명확한 언어가 그림으로 그려졌을 때를 보여줍니다. 그림 속 모든 사물은 명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모호한 구석이라곤 없으며, 모든 것이 투명하며, 있어야 할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관람자는 아무런 혼란 없이 그림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림 또한 관람자를 혼란스럽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작품은 마치 회의시간에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발표자를 보는듯합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 1812,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세로로 긴 화면 가운데에 나폴레옹이 의기양양하게 서 있습니다. 그의 하얀색 제복은 빛을 받아 주변 사물보다 밝게 빛나고 있으며, 붉은빛이 도는 볼은 나폴레옹이라는 철인적 영웅에게 인간적 면모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한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황제가 관람자를 쳐다보고 있지요.



 


 작품의 배경을 보니 집무실인가 봅니다. 나폴레옹은 일하는 중이었는지 책상 위아래로 책과 서류 더미들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화면 오른편으로는 기다란 벽시계가 걸려있습니다. 시간을 보니 네 시 십오 분이 다 되어 가네요. 오후 네 시일까요? 아니면 새벽일까요? 낮에 일하니까 오후겠거니 단정 지으려다가 나폴레옹 바로 뒤편으로 촛불이 타오르는 게 보입니다. 촛불 하나는 밤새도록 켜져 있다가 이제 자신의 생명을 다했는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네요. 아무래도 새벽 네 시 십삼 분인가 봅니다.



 



 그림은 나폴레옹의 단정한 모습과 주변 사물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작품에서 보여주는 논리적 근거로 굉장히 명확해집니다. 새벽 네 시 십오 분을 가리키는 시곗바늘, 업무 중임을 보여주는 서류 더미, 거의 다 타들어 가는 촛불, 이와 반대로 반짝이는 인물의 눈빛과 꼿꼿한 자세. 이러한 근거를 종합하여 관람자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잠도 잊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위대한 지도자 나폴레옹!”



  작품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목적을 이루어야 하기에 한없이 투명해집니다. 그림 속 인물과 사물은 관람자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자신을 확실하게 드러내야 하며, 사물과 사물 사이의 논리적 관계는 정확해야 합니다.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화가는 자기 뜻을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며 감상자 또한 이를 명쾌하게 받아냅니다. 작품 감상은 깔끔한 미팅 같습니다.





  명쾌한 기분을 가지고 회의와 감상을 마쳤습니다. 발표자와 화가가 하는 말을 나는 너무나도 명쾌하게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의 전후, 그림 감상 전후 무엇이라도 바뀐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내가 주도적으로 해석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군더더기 없이 자신의 할 말을 끝마쳤고, 나는 그들의 말을 오해 없이 이해했습니다. 즉 그들은 나를 설득했고, 나는 그들의 목적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 과정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지요.



  고전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는 회화 작품들을 대할 때면 투명한 언어를 시각화한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림 속 사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보여줍니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감상자는 새로운 또는 전혀 다른 의미를 생산할 기회를 차단당하지요. 그래서 고전주의의 영향 아래 있는 작품들은 철저하게 생산자 중심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고전주의가 그랬고,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그랬지요.




고전주의(classicism, 古典主義)

고전주의 미술은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에 나타난 조화, 균형, 비례, 도덕성 등을 모범으로 삼는 미술을 말합니다.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는 모두 그리스 고전주의를 원형으로 삼고 있으며, 그 배경 위에 성립합니다. 


고전주의 미술은 그리스의 철학과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스 철학은 ①세상은 감각적 현실과 변하지 않는 진리의 세계(이데아)로 양분되어 있으며 ②인간은 지성을 활용해 변하지 않는 진리(실재, 이데아)를 포착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출발합니다. 즉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인간 지성의 자신감이 그리스 철학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 미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은 늘씬한 팔등신, 균형잡힌 근육 등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신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이상적 신체란 수학적 근거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이 말은 아름다움이 인간 지성에 근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고대 철학과 미술에서는 아름다움이라는 감각마저도 머리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파올로 우첼로, <산 로마노 전투(니콜로 다 톨렌티노)>, 1438~1440, 런던 네셔널 갤러리

파올로 우첼로, <산 로마노 전투>,

 파올로 우첼로, <산 로마노 전투> 관련 글 보기 : https://brunch.co.kr/@pshjuly13/89



 고전주의가 생산자 중심의 미술이라고 해서 작가 개인의 특수한 느낌과 생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 그림들이 보여주는 것은 다분히 상식에 기반한 것들입니다. 즉 지성에 근거하여,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따라서 그림은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반적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면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상자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기분이 들면서 감상의 만족감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투명한 언어와 그 언어 위에 성립되는 그림은 우리에게 상식에 기댄 만족감을 줄지언정,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생성하지 못합니다. 복잡한 사회에 사는 우리는 무엇이든 명확한 것을 좋아합니다. 애매모호한 것은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뜻하지요. 모호하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의미가 생성될 틈이 있다는 것이고, 다양한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곧 비용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명확한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명확한 것은 우리의 상식의 수준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이 상식 수준이란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일지도 모릅니다.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은 사물을 상식 수준에서 움직여 의미를 도출합니다. 그림이 생성하는 의미는 결국,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체제 유지입니다. 그 외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게 만들지요.



  투명한 언어와 투명한 그림은 굉장히 효율적입니다. 투명함은 사회생활에 있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언어를 통해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세계가 늘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투명하기만 하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나는 세계가 보여주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이니까요. 지성과 논리에 바탕을 둔 그림들은 언제나 경탄을 자아내지만, 거기까지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박송화/그림읽는sona

그림 보기를 넘어 다양한 각도로 읽어봅니다. 미학과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림 읽는 즐거움을 공유하고, 예술을 통해 우리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s://blog.naver.com/pshjuly13

인스타그램 : @sona_p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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