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2018년 대입 수능이 이제 한 달여 남았다.
시간 참 빠르다.
오다가다 고등학생 아이들을 보면 해 주는 말이 있다.
"서울로 가라."
아들, 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와 비 수도권 대학의 비슷한 과에 둘 다 합격했다면 어디에 보내겠는가? 선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입학 성적은 같다고 가정하자.
나는 무조건 서울로 보낼 것이다. 취업률, 교수진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고? 옛말에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하지 않던가. 이유가 다 있다. 서울에는 홍대 클럽도 있고, 이태원도 있으며, 맛집도 죄다 서울에 있다. 또, 다국적 기업들 지사도 있고, 대기업 본사도 있고, 민주주의의 상징인 광화문광장도 있다. 이 정도면 서울로 가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나? 농담이 아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을 통해서 배우는데, 이렇게 보고 듣고 해 볼 것들이 죄다 서울에 있는데 아이를 보내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이렇게 보니 비수도권에는 참 없는 게 많다.
학교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대학 속으로 들어가도 내 결론은 마찬가지다. 교수님들은 기분이 언짢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부생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수도권 소재 대학의 교수님들이 비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의 교수님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 우수한 학업 능력과 훌륭한 연구실적에 근거하여 교수로 임용된 분들이므로, 아무것도 모르는 학부생들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어느 한쪽도 부족함은 없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수학을 가르치는데, 엄마가 문과였냐 이과였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대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누굴까? 교수님들인가? 아니다. 친구들, 선후배들이다. 그러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듣는다면 그 대상은 바로 친구와 선후배이다. 이런 친구와 선후배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서울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졸업 후에도 이어지는 선후배의 끈끈한 그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림 1>은 서울대 입학생들의 출신지역 자료이다. 다른 학교에 대한 자료도 찾아봤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미국의 유수의 대학들이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자료에 비해 국내 대학의 통계자료는 너무 빈약하다.) 여러 가지 인구통계학적 자료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 자료는 사실 필요하지 않다. 지역별 수능 응시자 수 현황 <그림 2>도 찾아보았다. 위 <그림 1>과 비교해 볼 때 서울, 경기지역 응시자의 비율에 비해 합격자 비율이 상당히 높아진 것은 주목할 만 하지만 이 글에서 논하려는 사항은 아니다. 이 두 그래프를 통해서 수도권으로 유학을 보낼 만한 주요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출신지역별 비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비수도권 대학교는 대부분 인근 지역의 학생들로 대부분 채워진다. 특정 고등학교에서 100명 이상의 학생이 같은 대학교에 입학하기도 한다. 인근 몇몇 학교에서 입학하는 학생들만으로도 수백 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매년 반복된다. 결국, 친구도, 선후배도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서울은 어떤가. 강남 3구 학생들의 진학률이 높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간 학생들은 여전히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학생들과 교류를 할 수 있다.
<그림 3>은 지방 소재 한 대학교에 대한 가상의 자료이다. 자료를 구할 수 없어 특정 지역의 인구통계 자료로 가상적으로 구성해 본 것이다. 구단위로 표시해서 색깔이 다양하지만 <그림 1>, <그림 2>과 동일한 기준(시,도)이라면 그냥 서 너 가지 색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대학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지역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는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특목고, 자사고의 입시 실적이 일반고에 비해 좋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공부 잘하는 아이를 데려간 "선발효과"다. 명문대가 명문대로 남아있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이 "선발효과"라 했을 때, 아니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놓고는 정작 수업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적어야 A+를 준다하니, 대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친구, 선후배가 확실하다. 또, 톰 피터스(Tom Peters)가 평점 4.0이 넘으면 채용하지 말라고 한 강연에서 목터져라 외치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가 간다. < 톰 피터스 영상 바로가기 >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왜 명문대가 좋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가장 많은 대답은 "취업이 잘 되니까."였다. 그러면, "왜 취업이 잘 될까?" 하고 물으면 "명문대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건 뭐 '뫼비우스의 띠'도 아니고. 여기까지가 학생들의 수준이다. 물론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답을 기대하는 것이 과욕이겠지만, 난 취업에 대한 질문에도 학생들의 다양함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서로 공유하면서 4년을 보냈다면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해서 더 창의적이고 더 비판적이면서 더 포용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지 않겠는가? 학점, 자격증이 능력이 아니라 이런 것이 능력이다.
취업률은 그저 따라오는 것일 뿐.
서울로 가라.
*후속으로 쓰려는 글 : 서울로 가지 못했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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