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2019년, 중2가 된 아들이 있다.
5학년 초까지만 해도 장래 희망은 배드민턴 국가대표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학교의 배드민턴 대표선수였다. 그것도 진짜 선수라고 할 수도 없는 생활체육 대표선수. 배드민턴을 시작하기 전에는 태권도 국가대표가 꿈이었다. 역시 태권도장을 다니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태권도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속으로 '정말 운동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스쳤다. 난생처음 듣는 아들의 진로 선택에 지금에야 말하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초등학생 아들의 첫 진로 선택 때문에 걱정인 아버지가 있다면 괜한 걱정이라 말씀드리고 싶다.)
태권도장에 보내게 된 결정적 이유는 초등 저학년인 아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태권도장은 태권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필요한 체육활동을 다 하는 곳이다. 어떤 도장은 서비스로 하교도 시켜준다.) 거기서 한동안 참으로 잘 놀았다. 덤으로 형, 누나들과 함께 매일 몇 시간씩 있다 보니 말도 제법 늘어서 왔다. 11월 생이라 동년배보다 말이 어눌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도장을 다니면서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좋은 말만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나쁜 말도 언젠가 알게 될 말 아니던가. 거기에서 놀이도 하고 게임도 하다 보니 사회성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았다.
6학년에 올라가면서 배드민턴부에 있던 친구들이 여럿 탈퇴했다. 대부분 1년 동안은 중학교 입학 준비에 더 매진하려는 것 같았다. 그 덕에 아들은 운명에도 없는 주장이 되었다. 내성적이라 좀 걱정했었는데, 주장을 하면서 좀 나아질 것 같아 배드민턴 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몇 개의 대회를 나가서 처참하게 깨진 후로는 자신 역시 운동으로 성공할 만한 강골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입에서 국가대표 이야기가 쑥 들어갔다. 아이들이 크면 종목도 자연스레 바뀌지 않던가. 지금 농구에 빠져있다. 물론, 국대는 꿈도 꾸지 않는다.
수시전형이 급격하게 확대되던 시기에 진로를 일찍 정해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 1학년 때에는 의대, 2학년 때에는 외과의사, 3학년 때에는 신경외과의사. 뭐 이런 식으로 기재된 생기부가 좋다는 아주 황당한 이야기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잘 먹힐 것 같은 도구가 필요했던 입시컨설팅 업체에서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했었다. 0.1%의 가능성이라도 높이고 싶은 학부모들이 듣기엔 아주 그럴싸했을 것 같다. 또, 다른 결과물이 아주 우수하여 합격한 어느 학생의 희망 진로가 그렇게 기재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저런 비상식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 '희망사항'은 능력이 아니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대학을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데, 어찌 중학생, 고등학생이 그런 진로를 정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은가. 오히려 그렇게 진로를 명확하게 정한 학생이 있다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지 세심하게 확인해 보는 것이 더 순리에 맞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 누구도 그런 진로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고, 희망 진로를 적는 것조차 폐지되는 현실에 와있다.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가진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진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
아들의 다음 진로선택이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