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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신문 Aug 17. 2021

이반지하 “인생? 힘들지만 견뎌야지, 뭐 별수 있나”

이반지하. 본명은 김소윤. 누군가에게는 생소하지만, 퀴어 세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반(異般)은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성애자를 뜻하는 일반(一般)에 대한 상대적 명칭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반지하는 주거 형태를 뜻한다. 그러니까 ‘이반지하’란 자신의 성 정체성과 주거 상황을 결합한 이름이다.


그는 200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퀴어 아티스트다. 현대미술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 가수이자 작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예술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예술 작업의 소재로 삼으며 두꺼운 팬층을 확보했다. 지난 3월에는 한국 최초의 퀴어 시트콤 ‘으랏파파’의 각본을 쓰면서 각종 언론에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퀴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의 감정을 누군가가 명징하게 언어화해줄 때 느끼는 모종의 쾌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처한 상황이 서로 비슷해서 익숙하거나 잘 맞는 느낌.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 같은 묘한 친밀감. 그런 것들이 그와 그의 책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에 있다.


물론 이 책이 퀴어의 세계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엔 ‘참’ 재미있다. 나아가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예술가로서 가난을 등에 업고 살아간다는 것의 고단함을 말한다.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정서를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는 『전태일평전』의 ‘21세기 퀴어 버전’이라 할만하다.


그는 기자에게 “나에게도 이반지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반지하 보유국’에 사는 퀴어들이 부럽다는 이유에서다. 짐짓 젠체하는 농담이었지만, 그의 지난했던 시간이 투영된 말이라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고상함과 발칙함을 동시에 발산하는 작가. 개성이 확실한 문장들이 거침없이 뛰노는 책. 지난 10일 서울 합정동에서 이반지하를 직접 만나 책 이야기를 들어봤다.


에세이집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출간한 이반지하가 서울 합정동 카페에서 <독서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사진=최현식 PD]


에세이집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출간한 이반지하가 서울 합정동 카페에서 <독서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사진=최현식 PD]


- 지난 7월 28일 출간했는데, 벌써 3쇄다. 기억에 남는 독자의 반응은 무엇인가.


“‘한 번에 읽혔다’ ‘잠깐 읽다가 자려고 했는데 밤을 샜다’ ‘버릴 챕터가 없다’ 등의 반응을 들었을 때 가장 기뻤다. 앨범으로 치면 전곡이 사랑받은 거니까. 이연실 편집자님의 도움이 컸다. 독자들이 한 호흡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잘 편집해주셨다. 이런 수많은 찬사 속에서 ‘좀 지나친 것 같다’는 혐오친구들의 반응도 기억에 남는다. (웃음)”


- 첫 책이다. 쓰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공연이나 전시는 정해진 날짜가 있다. 열심히 준비를 하고, 그 날짜에 하면 끝이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았다. 원고만 다 쓴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호흡이 길더라. 공연이나 전시를 하는 것과는 다른 호흡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 퀴어 세계에서는 이미 스타다. 책이 인기를 끌면서 이반지하를 대중에게 빼앗겼다는 말도 들린다.


“이젠 대중이 알아야지. (웃음) 근데 아직 안 뺏겼다. 여전히 국가는 세금으로 나의 예술을 지원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라.”


- 제목에 ‘퀴어’를 명시한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퀴어’에 관한 내용이 별로 없다. 오히려 노동자이자 예술가로서의 단상이 많다. 편집 과정에서 분량이 조정된 것인가.


“나의 정체성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보다는 예술가인 나를 독자들에게 직관적으로, 감각적으로 이해시키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정체성을 설명하는 챕터가 필요 없어졌다. 제목에는 퀴어가 직접적으로 들어가지만, 한편으로 이 책은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제목과 내용에서 오는 괴리 혹은 아이러니를 독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 작가가 독자를 위로하는 책이 있고, 반대로 독자가 작가를 위로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다. 굳이 말하자면 후자에 더 가깝다.


“아무래도 생존자의 수기니까 그렇지 않을까. 만약 독자들이 책을 읽고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면, 작가로서 성공했다. 너무 잘난 척을 하거나 앓는 소리를 했다면 ‘쟤 뭐야?’ ‘짜증나’ 이랬을 텐데. 내가 글을 담백하게 잘 써서 그런 거지. (웃음)”


- 글과 말 모두 완급조절이 뛰어나다. 타고난 건가 아니면 치밀한 계산인가.


“오랫동안 눈치보고 살아서 그렇다. 나에게는 ‘이 선을 넘으면 사람들이 발끈하겠지?’에 대한 예민한 감각 같은 게 있다. 연구해서 아는 게 아니라 그걸 터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시니컬한 농담, 재기 발랄한 표현이 많다.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거나 욕설을 섞기도 한다.


“‘어른’과 ‘으른’은 다르다. ‘매우’와 ‘존나’도 다르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단어 선택일 뿐이다. 독특한 글을 쓰기 위해서 혹은 남들과는 다른 글을 쓰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다. ‘어른’보다 ‘으른’을 써야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 있다.”


- 이제 ‘퀴어’하면 이반지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일이 많아지면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내가 기획사에 소속된 아티스트가 아니니까 더 그렇다.


- 유명세를 치르면서 오는 혼란스러움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약간 다른 얘긴데, 사실 이 책이 나온 것도 생각해보면 정말 혁명적인 일이다. 문학동네라는 큰 출판사에서 전면에 내세운 책이니까. 이것만 놓고 보면 세상이 바뀐 것 같다. 성해방이 온 듯하다. 근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기획사가 나를 섭외해서 무슨 기획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책이 잘 팔리니 ‘이반지하의 세상이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멀었다.”


- 그래도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나. 책의 인기가 팬덤을 넘어선 것 같다.


“내 책이 교보문고에 있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퀴어들이 오프라인에서 퀴어라는 단어가 들어간 출간물조차 직접 사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 했다. 자기의 정체성이 드러날 까봐. 온라인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내 책을 자기 집에 주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택배 포장지 겉에 책 이름이 나와서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책이 판매되는 속도나 다양한 독자들의 반응을 접할 때마다 아이러니한 감정이 솟구친다.”


이반지하 에세이집 / 문학동네


- 책의 분위기를 몇 가지 문장으로 말한다면 ‘아님 말고’ ‘어쩌라고’ ‘그럴 수 있다’ 등이다. 이는 곧 작가가 삶을 대하는 태도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았던 건 아니다. 자꾸 안 좋은 일들을 겪다보니까. 거기에 일일이 반응하면서 살기가 너무 힘든 거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그게 나만의 생존법이다. 책에도 썼지만 나는 트라우마 환자이다. 지금도 병원에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감정적 안정을 찾으려면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별 거 아니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등의 말을 되뇌는 거다. 근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연습이 필요하다.”


- 트라우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책에서 가장 관념적인 챕터는 「탄생설화」이다. 작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화된 일기 같은 느낌이라 잘 읽히지 않았다.


“그게 트라우마의 특징이기도 하다. 워낙 충격적인 경험이라 원인과 결과 모두 명료하지 않고, 흐릿하다. 그래서 그 챕터에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의 문장을 많이 썼다. 왜냐하면 트라우마를 설명하는 데 그런 문장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모호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 음악, 미술, 영화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을 한다. 가장 즐거운 작업은 무엇인가.


“각각의 예술이 주는 희열이 다르다. 즐거움에 위계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상황에 따라 다르다. 문학동네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에 책을 썼다. 곡 작업도 그 즈음에 협업 제안이 왔는데, 문학동네에서 받은 계약금을 투자했다. 다 맞물려 있는 거다. 또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이 시너지 효과를 주기도 한다. 방법론을 공유하는 것이다. 가사 쓰거나 그림 그릴 때의 호흡을 책 쓰기에 적용하는데, 그게 도움이 될 때가 많다.”


- 그래서인지 어떤 문장은 노래나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직접 쓰는 입장에서는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글만 쓰는 작가와 달리 이것저것 많이 하니까… (웃음) 작법이 좀 달라서 그렇지 않을까.”


이반지하 [사진=최현식 PD]


- 책에서 “‘나’라는 사람은 이반지하인 동시에 이반지하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나는 특정한 사람으로 굳어지거나 호명되는 게 싫다. 가령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지면서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대단한 학자이거나 정치인, 운동가가 아니다. 퀴어 커뮤니티의 이슈에 매번 유의미한 액션을 취할 수 없다. 물론 열심히 할 때도 있었다. 근데 지금은 그런 에너지가 없다. 어느 순간, 나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노래 한 곡 더 쓰는 게 나와 퀴어 커뮤니티에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이 말은 내가 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면 전체, 총합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예술도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과 의무로만 예술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럼 재미가 없다. 나는 앞으로 더욱 개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 「글쓰기에 관하여」 챕터에서는 에세이 쓰기의 즐거움을 강하게 표현했다.


“즐거운만큼 부담감도 있다. 모든 예술에는 창작자 개인의 특수성이 개입된다. 팬들이 그 특수성을 읽어내기도 한다. 에세이 쓰기는 직접적으로 내 이야기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그림이나 노래를 만드는 일에 비해 조금 부담스러웠다. 책을 쓰면서 너무 나를 사람들에게 노출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아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말을 독자들과 나 자신에게 하고 싶다. (웃음) 자전적 에세이지만 이 역시 가공된 현실이다. 진짜 소중하고 중요한 건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있다.”


- 책 말미에 “나는 나대로 살아가느라 바쁘다. 당신도 바쁠 것 같다. 그러니까 가끔만 만나자”고 적었다.


“나는 느슨한 관계가 좋다. 친구를 매일 만나지 않더라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이상한 안정감 같은 게 있다. 그런 관계를 선호한다.”


- 당신의 말처럼 인생은 결국 나를 견디는 일이다. 나를 잘 견디는 방법이 있다면.


“못 견디고 있다. 너무 힘들다. 오늘도 인터뷰하러 오기 전까지 힘든 일이 많았다. (웃음) 근데 견뎌야지 뭐. 별 수 있나. 견디는 데 거창한 방법은 없다. 그냥 견디는 거다. ‘이게 내 인생이지’하고 견디면 된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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