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컨데, 파리에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아마도 연말이었고, 일상에 소소한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덜컥 하프 마라톤을 등록했고, 하루씩 다가오는 D-Day에 초조해하며 연습을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달리기는 파리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었다.
파리의 달리기 코스는 아주 간단하다. 구글 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이다. 세느강을 따라 동서로 달리면 된다. 서쪽의 파리 시청사(Hotel de Ville)에서 에펠탑까지 약 5km 구간 동안 파리 시내의 주요 명소를 거의 다 볼 수 있다. 마레지구 초입에 있는 시청사에서 시작하면, 노트르담 성당,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이 박물관, 국회의사당, 앙발리드(Invalides), 그랑 팔레(Grand Palais), 알렉산드르 3세 다리를 지나며, 점점 다가오는 에펠탑과 함께 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중요한 것은, 명소들을 효율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도시가 연결되고 구성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왕복 10km는 1시간 이상이 걸리는 코스이지만, 편도 5km는 정기적인 훈련 없이도 가볍게 뛸 수 있는 거리이다.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면,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Lime이나 Bird 같은 공유 스쿠터나 Jump 같은 공유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도 좋다.
좀 더 본격적으로 뛰고 싶은 사람은 방문하는 시기에 맞춰 마라톤 대회에 등록을 해도 좋다. 풀 마라톤 대회는 4월에 있지만, 파리에는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수시로 열린다.
Timeto(https://www.timeto.com)라는 사이트에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내의 주요 대회 등록이 가능하다. 주의할 점은 대회에 따라 건강진단서 등록을 요구할 때가 많다는 것인데, 영문으로 된 소견서가 있다면 업로드를 하고, 없다면 미리 준비해도 좋을 것 같다.
진지한 러너들이라면 당연히 파리 마라톤 대회(https://www.schneiderelectricparismarathon.com)를 기대할 것이다. 6만 명이 참가한다는 이 대회는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풀 마라톤 대회 중 가장 규모라고 한다. (참고로 뉴욕 마라톤이 약 5만, 베를린이 약 4만, 보스턴이 약 3만) 대부분의 메이저 대회는 참가자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참가자가 대회의 인기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25만 명의 환호를 받으며 달리는 6만 명의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분명 짜릿한 경험이다.
꼭 풀 마라톤이 아니더라도 함께 뛰면서 파리를 즐길 기회는 많다. 그중에서 가장 추천하는 것은 'Run My City'(www.runmycity.fr)라는 대회이다. 이 이벤트는 기록을 재는 대회가 아니라 말 그대로 파리를 달리면서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코스도 일반적인 마라톤 코스가 아니라 파리 시내 골목까지 들어가서 도시의 숨은 매력을 보여준다. 부담 없이 뛰기 위한 사람들을 위해 9km / 15km로 나눠어 진행되기도 한다.
이 대회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작은 명소들을 발견하는 재미이다. 시청사나 로댕 미술관 같이 파리의 대표적 명소를 지나기도 하지만, 구청 대회의실에 걸려있는 풍경화를 보거나, 오래된 쇼핑센터에 설치된 디스코 덱에서 춤을 추거나, 조폐 박물관 앞에서 아프리카 민속춤을 보는 경험은 이 날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다 :)
참가자들은 빨리 달리는 것보단 재미있는 장소나 이벤트마다 멈춰 서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마라톤 대회라기보단 달리기를 가장한 축제에 가깝다. 이 시기에 파리에 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권하고 싶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여행의 목적에 달리기가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더플백 한구석에 가벼운 조깅화를 하나 넣고 가능한 중심지에 숙소를 잡는다. 이른 아침에 달리면서 지나치는 도시의 풍경은 사뭇 다르고, 여행의 성격도 달라진다. 그리고 새삼 느낀다. 달리기 여행을 시작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곳은 바로 이곳 파리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