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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Aug 07. 2023

피라미 2/3

부모님

내가 자살을 두려워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아마도 아버지일 것이다. 아버지는 내 상상 속 피라미들의 기원이다. 아버지는 뉴스에서 누구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면 들으란 듯이 혀를 끌끌 찼다.


아버지가 자살하는 사람들을 못난 놈 취급했던 이유는 아마도 아버지야말로 의지로 살아온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날 아버지는 잘 곳도 없이 혼자 얼마의 생활비와 손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다. 중국집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넥타이 매는 회사원이 되었고, 나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 둘을 낳았다. 그러나 한창 분유값을 벌어야 하는 시기에 어쩐지 다니는 회사마다 몇 달을 못 가 연거푸 망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회사 사장에게 사기를 당해서 한순간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후로 대리운전을 하거나 남의 소개로 가망도 없는 사업을 하다가 접는 등 온갖 일을 전전하며 가족을 어렵게 건사했는데, 딸을 서울대에 보내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낸 남자에게는 근성이라는 이름의 표독스러움이 있다. 길고 긴 인생의 격랑을 버틴 사람들에게 젊은이들의 자살은 듣기 싫은 현실도피이자 혐오스러운 의지박약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자살할 때 더욱 분통을 터트렸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죽여버리지는 못할 망정 왜 네가 죽느냐는 것이다. 한 번은 옆에서 어머니가 조용히 일러주었다. 그렇다고 누구를 정말로 죽여버리면 남겨진 가족에게 원한이 돌아올 테니 혼자 조용히 가는 거잖아.


그렇다면 어머니는 어떠한가? 나의 어머니도 솔찬히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결혼 이후 함께 그 모든 경제적 고난을 견뎠지만 남의 극단적인 선택을 입 밖으로 나무라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어머니가 즐겨 들었던 기독교 방송의 목사들이라면 단상 위에서 침을 튀겨가며 자살은 죄악이라고 부르짖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살하는 바람에 천국에 못 가게 된 영혼들에게는 비난보다는 동정이 더 필요할 것 같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가끔 텔레비전 앞에서 왜 이렇게 자살들을 하는 거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외치는 방식으로 우울한 내게 세상에 대한 반발심을 심어주었다면, 어머니는 평범한 한국 부모의 믿음, 이를테면 당신의 자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없다, 약은 되도록 안 먹는 것이 좋다, 건강은 휴식과 영양섭취를 통해 자연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그렇지 못한 나에게 또 다른 종류의 반발심을 부추기곤 했다. 이건 아버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의 부모는 한 번 처방받은 약이나 연고는 몇 년이 지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면서, 딸이 월경 기간에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한두 알 챙겨 먹는 것을 두고는 약에 의존하는 거 아니냐고 타박을 하곤 했다.


인생을 통틀어 부모님을 가장 마음 밖으로 밀어냈던 시기가 바로 20대 중반에 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받았던 기간이었다.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갈등의 원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무기력한 상태가 지나쳐서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안 되기 시작했을 때, 다음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찾아올 때, 인터넷에 검색해서 무료 우울증 자가진단이라는 것을 했고, 위험하니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보았다. 그래서 다니던 대학의 보건소 신경정신과에 진료 예약을 했다.


예약일이 도래하여 처음으로 진료를 받은 날, 비용은 더 들지만 치료 이력이 남지 않도록 비보험 처리를 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괜찮으니 그냥 보험 적용을 받겠다고 했더니 그런 나에게 접수원 선생님이 따뜻한 미소와 함께 잘 생각했다는 말을 건넸다. 초진은 한 달 넘게 기다려야 가능할 만큼 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은데 정신과 치료를 숨겨야 할 것으로 치부하는 세간의 분위기에 선뜻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할지. 그래서 나는 보험처리를 하기로 한, 그래서 치료 이력을 누군가 알아낼 수도 있게 내버려 두기로 한 것을 스스로 어떤 진보적인 결정을 내린 것처럼 생각했다.


다음 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공유했을 때 어머니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녀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보다는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사실에 더 당황하는 것 같았다. 당시에는 혈압약도 되도록 안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했던 것 같다. 마음의 병은 그저 잘 먹고 푹 쉬면 될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봄학기가 한창인 상황이었다.


꼭 약을 먹어야 하냐는 어머니에게, 나는 회복을 원하고 내가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전문의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빈 강의실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복도에 누가 지나가거나 말거나 언성을 높였던 기억이 난다. 전화를 끊기 전부터 이미 이야기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차피 따로 사는 성인인 마당에 대체 무엇을 바라고 부모에게 항우울제 먹는다는 이야기를 했단 말인가.


어머니의 불안과 걱정은 자연스럽게 내원 이력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다. 보험 처리를 하기로 했다고 했더니 네가 아직 학생이고 취업도 하지 않았는데 혹시나 이게 나중에 문제가 되면 어떻게 할 거냐며 당장 비보험으로 바꾸라는 잔소리가 쏟아졌다. 그렇다. 직장이 없어서 건강보험 혜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전화를 끊고 어머니가 나보다 더 미쳐버리기 전에 바로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직전의 치료 이력을 비보험으로 바꿔줄 수 있는 지를 확인했다. 그날 돈을 더 내게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다른 사람들처럼 정신과 치료를 숨겨야 할 일인 양 내 결정을 번복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굴욕감과 패배감을 느꼈다.


어머니의 공포와 내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성인이 되고 나서 수치스러움을 겪었던 순간들은 더 있었다. 어느 날 수업 재료를 사러 외출했다가 갑자기 몰려온 생리통으로 쓰러져 구토를 하고 누군가의 신고로 구급차를 타게 되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짜고짜 구급차에서 내리라는 성화가 쏟아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자 구급대원에게 전화를 바꿔달라고 해서, 엉겁결에 전화기를 건네받은 여성 구급대원이 황당해하며 내게 정말 구급차에서 내릴 거냐고 물어보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미 탈진한 상태였던 나는 어머니가 왜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하는지 이유를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그 상황이 그저 갑작스럽고 창피하여 그냥 그러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그 구급대원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건 경멸에 가까웠다. 그제야 구급차에서 내리겠다고 한 결정이 미련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구급대원들은 곧장 차를 길에 대고 문을 열어서 나를 마치 그물에 잘못 걸린 무언가처럼 길거리에 방생했다. 낯선 빌딩들 사이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을 찾아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대낮의 그 길이 지나치게 밝고 환하게 느껴졌다.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어머니를 혼자 기다리는 동안 온몸에 독처럼 퍼지는 분노와 수치심은 가히 절망적일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는 딸이 행여나 산부인과 진찰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이해하기를 그만두었다.


부모에게는 말하지 않는 게 더 나은 사실들이 더러 있다는 걸 그렇게 깨달았다. 그렇기에는 너무나 사소한 사실들이었다고, 말하기 전의 나는 지레짐작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아빠가 슬퍼할 테니까 자살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저 기회가 될 때마다 항우울제를 단약 하기를 종용했다. 젊고 창창한 딸의 뇌가 이름 모를 약들로 절여지는 상상을 하셨을까. 이것은 나의 부모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료보험 가입을 거절당하거나 구직에 제한이 생길 수도 있다는 염려로, 약물에 의존하게 될까 봐, 사실 아프면 아무 소용없는 문제들로 자녀를 정신과 문턱조차 가보지 못하게 막는 부모들은 지금도 널렸다.


무지에서 비롯된 부모의 채근이 답답하고 지긋지긋했지만 뭐라고 대꾸한들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본가에 내려가 저녁을 먹던 어느 날에는 어머니에게 “솔직히 네가 죽고 싶은 정도는 아니잖아”와 같은 말을 듣기도 했다. 자살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어주었던 사람에게 듣기에는 잔인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곧바로 가방을 메고 집을 나갔고, 휴대폰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모두 차단했다. 원만했던 가족 관계는 이것으로 영영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한 문장으로 벌어진 상처가 아무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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