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고통의 크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처음으로 우울증이라는 병을 맞닥뜨렸던 그 시절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고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굳이 만인을 상대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말할만한 부분이 있다면, 상황이 그 정도로 심각해진 계기에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내게서 찾으려는 사고방식이 있었다는 점이다. 생각은 후회, 자책,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흘러들어 갔다. 모든 일은 결국 내가 죽어야 끝나는 문제가 되었다.
호기심에 타로카드 점을 본 적이 있다. 과거의 우울증 경험을 적은 글을 생각하며 카드를 고르는 순간이 있었다. 검이 5개 그려진 카드가 나왔다. 그림만으로도 그것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검의 개수가 고통의 크기라면, 가장 큰 숫자인 열 개가 나오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내게 그보다 더한 위기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5라는 숫자가 마치 변곡점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살아남을 수는 있었던 고통. 누군가에게는 칼 하나 정도에 불과할 수도, 누군가에게는 빗발치듯 무성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나의 불운의 크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괴롭거나 혼란스러운 사건을 겪고 나면, 어쩐지 몇 달이 지나고 나서 불쑥 우울감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마치 일이 닥친 시점에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그 일을 해결하거나 모면하려고 애쓰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될 즈음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는 것과 비슷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쁜 기억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별들이 타원의 궤도를 그리며 도는 것처럼, 기억들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한다. 멀어지는데 끝모를 세월이 걸린다.
한동안은 방 안이 깜깜하면 무서워서 잠을 청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 밤 문득, 그런 짙은 어둠 속에서는 나조차도 보이지 않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갑자기 어둠이 달갑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리 어두워도 어떤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보낸 끝에야 멀어지고 희미해져서, 다른 빛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게 될 뿐이다.
나를 죽이거나 살리던 심리적 고통을 떠올릴 때, 고통 속에서 나는 늘 혼자 남는다. 끄집어내기 싫은 기억들을 되살리며 어렵게 공들여 글로 적는 일이 나를 더욱 강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글을 쓰기 위해 상념에 잠기는 동안 찾아오는 외로움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