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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진 Aug 31. 2023

우울증에 도움이 된 책들

개인적으로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독서가 도움이 되었다. 하나는 작가가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을 읽는 것이었으며, 주로 자전적 소설이나 수필의 형태를 띠었다. 다른 하나는 인생의 불행과 불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지혜를 담은 책을 읽는 것이었으며, 이미 서점의 인문교양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빛을 받으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5년 4월, 그러니까 산다는 것이 더 이상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무렵에, 동네 서점에서 두 권의 책을 샀다.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과 데이비드 밴의 <자살의 전설>이었다. 두 책 모두 자살과 연관이 있다. 작가가 자살했거나 아니면 가족의 자살을 겪었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책장을 펼쳐 들었을 때 맨 앞의 소개글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 사실에 이끌려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에두아르 르베는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소설가이며, 마흔둘의 나이에 <자살>이라는 작품을 집필한 뒤 제목처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직전의 저서인 <자화상>은 제목 그대로 작가가 자기 자신을 묘사한 책이다. 소설인지 자서전인지 알쏭달쏭한 이 책은 온통 두서없이 ‘나’로 시작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 문장들은 사진작가라는 이력과도 닮아있어서, 마치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셔터를 누른 것처럼 생생하고 간명하다. 그 사이사이에서 작가의 어떤 독백들은 내 머릿속에도 잠시 머무른 적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생각은 나비처럼 날개를 달고 바다를 건너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게 되었을 정도로.


<자살의 전설>은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밴의 자전적 연작소설이다. 작가는 어릴 적에 겪은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여러 개의 단편을 통해 재창조했다. 소설 속에서 아들은 계속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계속. 그러나 개인적으로 백미로 꼽은 부분은 책 중간의 중편 <수콴 섬>인데, 반대로 열세 살인 아들이 아버지 대신 스스로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며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대목이었다. 그 책을 더욱 존경스럽게 느끼게 된 점은 마주하기 힘들었을 기억 속 자신과 주변 인물들을 활자 위로 어렵게 되살리고는, 다시 이런저런 막다른 길로 몰아넣으며 끈질기게 이야기를 앞으로 밀어나가는 작가의 집요함이었다. 그 먹먹했을 창작의 시간이, 작가에게는 결국 치유의 과정이 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하게 되었다.


<자화상>과 <자살의 전설>은 나를 더 깊은 어둠으로 끌어내리는 대신에, 처음으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건설적인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그렇게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며 회복 이후의 미래를 그려보게 되었다면, 어떤 책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당장 필요한 또 다른 일, 즉 심리적 고통을 가라앉히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미움받을 용기>의 제목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는 메시지를 시사하지만, 사실 그것은 이 책을 통해 얻어갈 수 있는 삶의 지침 중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부분은, 내가 겪은 과거의 사건이 무엇이냐보다는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맨 앞장의 내용이었다. 즉,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미 벌어졌고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들이 내 삶에 계속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야 한다는 점, 그 사건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려면 결국은 상황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바꿔야 했다.


알음알음 습득한 지식들은 여러 권의 독서를 통해 서로 연결되며 점차 더 분명한 깨달음으로 다듬어졌다. 최근에는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과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를 읽었다.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은 우울감에서 벗어나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소설이고,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는 문학 작품들에서 나타난 자살 사고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책이다. 공교롭게도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읽은 덕분에, 소설 속에서 꾸뻬 씨가 고안하는 핑크색 안경을 쓰는 방법, 즉 상황을 다르게 보는 법이 일종의 인지치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오래전 <미움받을 용기>가 왜 그토록 큰 위안을 주었는지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당신은 겪어봤을 수도 있다. 분명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임에도 마치 당신의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말이다. 책 속에서 어떤 인물들은 꼭 당신처럼 어리석기도 하고,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 혹은 당신이 그리워하는 사람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고통이 무심코 되살아나기도 한다.


독서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설령 주위에 아무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없거나,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로만 가득 찬 것처럼 보여도, 도서관에 빼곡히 찬 오래된 장서들과 매년 새롭게 쏟아지는 신간서적들 사이에서 당신은 반드시 같은 생각의 터널을 지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한 번 가봤던 길이라고 해서 그 다음번에는 지도 없이도 찾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단지 몇 권의 책이 인간의 마음속 그늘을 완전히 몰아내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독서는 자살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휴식, 운동, 명상, 독서, 약물치료와 심리상담,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마음이 나아지는 데는 기대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내어 각자에게 위로가 되어줄 글을 찾아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소소하지만 귀중한 탐색과 발견의 시간을 응원하고자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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