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의 대표곡 'Superstar'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는 수많은 명곡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은 'Superstar' 와 '호산나', 그리고 '겟세마네' 였다.
1. Superstar - 유다와 예수(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누구인가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예수 그리스도의 일주일에 대한 뮤지컬이다. 하지만 유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에 대해서 해보기 힘든 깊은 사색과 의문 제기가 펼쳐진다. 예수를 배신하고 팔기까지의, 그리고 죄책감에 자살을 선택하기까지의 유다의 처절한 고뇌와 절규를 보면 그가 가엾기까지 하다.
예수는 그에게 "너가 해야 할 일을 하라" 고 한다. 예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일은 예정되어 있었다. 유다는 버림받을 운명이었다. 그는 이용당한 것일까? 예수의 인류 구원의 대업을 위해 희생된 것일까?
이 뮤지컬은 대부분의 곡이 파워풀한 '락' 음악이다. 배우들의 실력은 매우 뛰어나고 곡은 모두 완성도 있어서 여러 번 보는 관객들이 많을 정도로 두터운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락 음악' 과 예수님과 그 제자들 치고는 지나치게 잘생기고 근육질의 배우들을 제외하면 교회에서 부활절에 진행하는 '교회 연극' 이라고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온건하게 진행된다. 브로드웨이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불매 운동을 벌일 정도로 반발했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간다. 배신자 '유다' 가 진심으로 굶주린 민중을 사랑하는, '고뇌하는 인간 유다' 로 그려지긴 하지만 그것이 심기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공감이 갔다. 사실 성경 그 자체만 보아도 유다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예수의 12 제자 중 가장 매력 있는 인물은 유다와 도마라고 생각한다.)
정말 불편한 장면은 거의 마지막에 나왔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 앞에서 부르는 유다의 'Superstar' 이다. 가장 절박한 장면 앞에서 불러지는 곡 치고 매우 경쾌한 분위기의 댄스곡이다. 비록 지금은 교회에 별로 열심히 나가지 않는 나이지만 꽤 충격을 받았다. 이 노래가 나올 때는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불경스러운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아직도 난 당신 뜻을 알 수 없어 / 왜 모든 걸 내던지고 가버렸나? /좀 더 멋진 다른 방법 없었을까
왜 하필 그 시절 그 시간을 택한 걸까? /2015년 여기라면 끝내줄텐데
뉴스, 잡지, 인터넷도 없던 그 옛날에
난 모르겠어. 알고 싶어, 난./ 왜 희생했나요? 뭘 위해? / 왜 그런 희생을 했나요?
하늘나라 친구들은 어떠세요? / 부처님 그 분과는 사이 좋으세요?
위대함과 바꾼 죽음 만족하시나요? / 실수인가, 계획인가, 당신의 죽음은?
Jesus Christ, Jesus Christ
당신은 누구인가요? / 무엇을 위해서 희생한 것인가요?
이 장면과 이 노래가사는 며칠 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괴롭혀서 나중에는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였다. 여기저기 인터넷 정보를 뒤지던 나는 이미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 누군가의 글을 발견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통당하는 예수님 앞에서 그런 노래는 이해할 수 없고 불편하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댓글이 "그 불편함이야 말로 이 극의 핵심" 이라는 것이었다. 십자가 앞에서 양의 옷을 입은 무희들을 거느리고 노래를 하는 유다는 현대인의 복장을 하고 있다. 너무 이질적이고 어울리지 않아서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장면에서 노래부르는 유다에 대해서는 '자살한 유다의 영혼' , '유다의 입을 빌린 작사가 팀 라이스' 등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다. 이 장면의 유다는 작중 화자냐, 액자 소설에서 액자 밖 인물 같은 존재냐 등 흥미진진한 의견도 있다. 가장 재미있는 의견은 노래의 핵심 메시지가 당신은 그렇게까지 했는데, 당신에게 기대를 거는 헐벗은 민중들과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까지 다 외면하면서 그 참혹한 고통 속에서 그렇게 죽어갔는데 어째서 세상은 변함없이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는 의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죽어가야만 했던 인간 예수에 대한 짙은 연민과 성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같은 희생자'로서의 동지 의식도 느껴졌다. 하지만 핵심은 이 노래와 극을 관통하는 커다란 물음표이다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성부 하나님, 대단하신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당신의 계획은, 아니 당신의 존재 자체는 합당한가요?"
기괴한 걸 넘어서서 섬뜩하기까지 한 장면은 또 있다. 바로 유다의 자살 장면이다. 예수를 판 후에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하자 유다는 죽음과도 같은 고뇌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예수 당신이 원하는 일이기에 나는 한 것뿐이다, 나도 결국 당신의 그 위대한 구원 사역 중의 일부가 아니냐, 당신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분노하며 오열한다. 그런 그의 앞으로 천장 가까이 매달려 있던 밧줄이 내려온다. 그는 "당신이 날 죽이는 거야." 라고 중얼거린 후 목을 매단다. 쿵 소리와 함께 암전이 되고 어둠 속에서 "잘 했어 유다, 불쌍한 유다" 라는 합창이 음산하게 울려 퍼진다. 많은 관객들이 공포영화 속 웬만한 장면보다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는 이 장면을 두고도 많은 의견이 있었다. 목소리의 정체에 대해서도 유다를 바라보는 천상의 천사들, 유다를 부추기는 악마의 속삭임 등의 의견이 있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유다 자신의 환청' 이었다.
2. 호산나 - 민중과 예수(지저스 크라이스트, 당신은 우리를 속였나요?)
'호산나' 는 이 뮤지컬의 대표곡은 아니다.(대표곡은 예수가 부른 '겟세마네' 와 유다의 '수퍼스타') 군중들은 "우리를 위해 싸워주실거죠?" 라고 노래하고 예수는 이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너희와 나를 위한 축복의 노래를 천국을 향해 소리쳐서 불러라" 고만 노래한다. 예수가 잡혀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실망한 군중은 같은 노래를 가사만 "지저스 크라이스트, 당신은 누구인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당신은 우리를 속였나" 로 바꾸어 부른다.
가장 밑바닥에서 억압당하고 착취당해온 민중들에게 예수는 희망이자 구원과도 같았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그들은 세상의 주인이 되기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 꿈을 가능하게 해줄 '수퍼스타' 가 예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실망한 그들은 예수가 그들을 속였다고 생각하고 예수를 증오하고 예수를 버리게 된다. 혁명가로 추정되는 바라바를 예수 대신 선택한 배경에는 예수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깔려있다. 유다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에게 붓자 이 값비싼 향유로 몇 명의 굶주린 민중들을 구할 수 있냐고 반문할 정도로 그런 민중들을 생각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superstar에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민중들은 이 땅에서 그들을 구원해줄 수퍼스타를 원했고 예수가 바로 그 수퍼스타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는 이 땅의 수퍼스타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내세에서까지 영혼을 구원해줄 진정한 수퍼스타이다.
하지만 현실이 고통스러운 민중들, 그리고 그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던 유다는 말할 것이다. 죽음을 택하는 당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가? 신의 길이기에 옳다는 것인가? 신의 길이 아닌 인간의 길을 나와 함께, 이 민중들과 함께 가자.
민중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내세가 무슨 소용인가?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죽으면 끝인지 아닌지 알 게 무엇인가?
3. 겟세마네 - 예수의 대답
이 뮤지컬이 정말 좋았던 이유는 위의 저 두 질문이 나의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마음에 들지 않고 신은 손도 까딱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십자가였다. 성부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지만, 도대체 뭘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만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어느 순간 희미해지고 멀어졌다. 그러다가 이 뮤지컬을 보게 되었고 나는 극 중의 민중들, 또는 유다가 되어서 질문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그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로 답하는 것 같다.
나 오직 한 가지 물어봅니다
이 순간 나에게 주신 이 독잔을 거둬줘요
다가오는 죽음이 난 너무나 두려워져요
흔들리는 맘 지쳐버린 몸
무얼 위해 싸워왔나 누굴 위해 죽는 건가
이 고통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되나요
나 죽을때 예언하신 당신 뜻을 이루시겠죠 날 못박고 치고 찢고 죽이시겠죠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있었으니 두려웠을 것이다. 고난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땀이 피가 되게 기도할 정도로. 하지만 그는 고난의 잔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채찍을 맞는다. 그의 온몸으로 피가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되묻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너희는 나를 의심하느냐
유다의 노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의문을 담고 있다. 당신은 그저 불쌍한 희생양 아닌가? 당신이 그렇게 피를 쏟고 갔지만 2000년이 흘러도 이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힘없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쌍하고 억울하다. 이럴 거면 뭐하러 그 때 온 것인가? 2015년인 지금 와도 되지 않았나?
며칠을 생각해봐도 여기에 대한 답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도, 유다도 억울한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 뮤지컬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 '가상칠언' 을 한 뒤 돌아가시는 것으로 끝난다. 부활이 없다면 슬픔과 비통함과 허무함만 있을 뿐이다. 거기에 '인간 예수' 는 있지만 '신의 아들 예수' 는 없다. 하지만 부활하셨기에 그 모든 비통함과 슬픔이 환희와 소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사실 모든 신앙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결론은 이 뮤지컬의 문제 제기는 예리하고 매력적이지만 예수의 부활을 제외했으므로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면 이 뮤지컬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다만 한 가지가 궁금할 뿐이다.
"예수님, 당신은 정말로 부활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