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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어느날, 요양원 일기_14

_필사적인 나날들

by somehow

췌장암 말기환자인 주신(가명)어르신

내가 1월2일 새로 출근을 시작했을 때, 402호 침상 한칸에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혹은 여윈 새처럼 누워있었다.


나는 그분이 췌장암환자인지 알지 못한 채 처음 민났다.

작고 마른 체구에 숱도 없는 머리카락은 파마기 있는 백발이었다.

다만 그 두 눈만은 땡글땡글하였으나, 목소리는 속빈 고목을 긁을 때 나는 소리인듯 푸석푸석하고 텅 비어있었다.


꼬챙이처럼 말랐지만 어르신은 기를 쓰며 워커를 밀고 걸어다녔다.

몸에 기운이 없기 때문인지, 혹은 온몸의 기운을 몽땅 워커에 의지하기 때문인지, 그 작은 체구에 짓눌린 듯 워커는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는다. 그때마다 나는 어르신께 다가가 워커를 함께 밀어드리거나 앞에서 바를 잡고 힘껏 끌어드려야 한다. 워커 앞부분에는 바퀴가 달려서 밀면 굴러가야 하는데, 도무지 굴러가지 않는 채로 그저 밀려갈 뿐이다. 그러니 있는 힘껏 워커를 미느라 언제나 힘들어하신다.


그 힘든 걸 끙끙대며 밀어가며 주신 어르신은 화장실에 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다행히 화장실 바로 옆에 침상을 마련해드렸으나, 침상에서 다리를 내려 신발을 신고 워커를 고작 1미터쯤 미는 일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요된다. 간신히 변기에 앉으면 한탄을 한다.


아, 똥이 안 나와....! 죽겠어....


아, 그러세요,어르신?? 제가 봐드릴게요.


화장실에 가신다고 일어서면, 그때 내가 어르신을 발견한다면 무조건 달려가서 부축해드린다. 그리고 변기에앉힌 뒤, 소변을 보거나 변을 보느라 용을 쓰는 동안 곁을 지킨다. 그러면서 변기에 똥이 쌓이는지 어떤지 확인을 한다.


아, 저리가...뭘 그렇게 들여다봐....더럽게...저리가....


어르신은 똥싸는 것까지 그렇게 지켜본다며, 혹은 보여주기 싫은듯 저리가라고 손을 내젓는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그 곁을 지킨다.

당연히 나뿐 아니라, 주신 어르신이 화장실가실 때는 어느 요양보호사든 그렇게 한다.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어르신은 거의 매일 변을 보신다.

이런 표현까지 하자니 좀 그렇지만, 가늘고 지리멸렬한 형태로 나올 때도 있고 더 찔끔찔금 새듯이 나올 때도 있다. 또 어느 때는 적당히 단단한 굳기와 길이로 몇 덩어리씩 시원하게 해결을 할 때도 많다. 그러니까 어르신은 매우 정상적으로 하루에 한두번 혹은 이틀에 한두번씩은 꼭꼭 변을 보고 계신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시원하게 변을 본 뒤에도, 일어서며 항상 이렇게 말한다.


변비야....똥이 안 나와....변비약 좀 줘요!


변비도 아니고 변비약도 매일 먹고있는상황임에도 그렇다.


아니에요, 어르신 지금 많이 나왔어요...어 시원하시겠어요~


아니야, 나오긴 뭐가 나와...(뒤돌아 변기 속에 쌓인 양을 확인할 때면) 에잇, 이까짓거....


나는 의아했다. 매일 이렇게 조금씩이든 더 많이든 간에 변을 보시는데도 불만스러워하며 더 나와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어르신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점에 대해 다른 선생님들과 간호사에게 말했던 어느날, 간호사가 나를 조용히 불러 말했다.


주신 어르신, 췌장암이에요...그래서 아랫배 쪽이 늘 찌뿌둥한게 아닐까 생각돼요. 그런데도 본인은 췌장암인걸 몰라요. 그러니, 변이 안 나와서 그런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맨날 자신은 변비라고 말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선생님들도 그걸 알고 계세요!


췌장암이요?? 아.....그렇군요. 그래서 늘 변이 안 나온다고 하시는데, 실제로는 배변의 문제가 아니라 췌장 쪽 문제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 거네요?!

췌장.png

본인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가족들이 당사자에게 췌장암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다.

본인에게 현재의 건강상태를 비밀로 하는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된다. 끝까지 모른채 죽는게 나을까. 아니면 진실을 알고 받아들이도록 하는게 맞을까..... 정답을 알 수 없다.


또한 주신 어르신은 올해로 100세가 넘었다고 한다.

101세라던가 103세라던가, 그 정도.

그럼에도 어르신은 꼿꼿하시다.

췌장암만 아니라면 어르신은 적어도 10년은 거뜬히 더 사실 듯하다.

어르신은 귀가 잘 안 들려서 귀에 바짝 대고 말을 건네야 하지만 의사소통에는 별어려움이 없다.

화장실 오가는 것을 도와드리거나 식사준비는 물론 그외 사소한 일들을 도와드릴 때마다 어르신은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젊어서 30년동안 공무원생활을 하셨다는 주신 어르신은 이곳에 불만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고, 다른 어르신들과 담소나누시던중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 일은, 식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주신어르신은 사실 식사를 거의 못 하신다.

밥은 거의 안 드시고 국만 드시기에 죽을 드려도 그것도 잘 드시지 못한다.

어느날인가는 반찬이 너무 맛이 없어서 못 먹겠다며, 다른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던 중 그에 관한 불만을 토로하신 것이다.


우리가 돈 내고 여기 있는건데, 왜 그런 말도 못하느냐고요! 해야돼요, 요구할 건 해야된다고요!


대체로,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은 자기주장이 그리 많지 않다. 드물게 인지력이 좋은 분들이 불평불만을 느끼고 그것을 가족에게 이야기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주신 어르신처럼 다른 어르신들을 모아놓고 자기주장을 하는 경우는 나로서는 본적이 없어서, 처음엔 깜짝 놀라기도 했다.


왼쪽: 힘겹게 워커를 밀고 거실에서 방으로 이동하시는 모습, 얼굴 사진:거실 식탁에서 식사 전 혹은 식사 후 모습인데, 손과 대비해 보면 얼굴의 황달기가 선명하다.


그런 어르신이, 요즘들어 부쩍 힘들어 하신다.

얼마전부터는 온몸에 황달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며칠전 아침에 출근하여 아직 자리에 누워있는 어르신을 깨우러갔을 때, 전날보다 더욱 샛노란 얼굴빛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가족들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가 주신어르신의 현재이기 때문이다.


어르신, 잘 주무셨어요? 식사하시게 일어나셔야죠, 여기서 드실래요, 나가서 드실래요?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 아침 인사를 드리며 어르신을 깨우면, 어르신은 놀라운듯 반가운듯 화답하신다.


어, 벌써 왔어?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밥 먹으라고? (너는)밥 먹었어?


어르신 보고싶어서 일찍 왔지요! 저는 밥먹고 왔어요!


아유~, (웃으며, 아마도 당신을 보고싶어서 일찍 왔다는 말이 미소를 자아내는 듯하다) 천천히 와~! 힘들게 너무 일찍 오지 말고...(하면서 손을 잡아주신다)


어르신은 웬만해서는 그시각에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잘 밀리지도 않는 워커를 밀고 공용거실의 식탁까지 나와 앉으신다.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루중 자주 침상에 누웠다 일어나실 때면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루한 일상속에서 예전에 즐겨드셨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듯하다.


팥죽 먹고 싶어... 팥죽 없어? 팥죽...


아, 팥죽이요, 어르신? 팥죽이 드시고 싶으세요....어쩌나...없는데...


또 어느 때는, 과일을 먹고 싶다 하신다.


귤 먹고 싶은데 귤 없어? 복숭아도 좀 사와, 그런 것도 좀 사두고 먹어야지...여긴 아무 것도 없네...

청포도 먹고 싶다. 청포도....!


청포도요 어르신? 아드님께 한번 사오라고 하셔요!


그럴때면, 어르신은 어렇게 대꾸하신다.


아들보러 사오라 하라고? (아들이)그걸 어디서 사와?


하루중 두번의 간식시간이 있지만, 어르신들이 각자 먹고싶다는 걸 사실상 요양원에서는 모두 맞춰드리지는 못한다. 그냥 주는 대로 먹는 수밖에 없다. 특히 과일은 간식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르신들이 특히 먹고싶다 하는 음식은 가족에게 알려 면회때 준비해올 수 있도록 하기는 한다.

주신 어르신의 경우도, 그동안 귤과 팥죽과 청포도를 원한다는 내용을 가족에게 전달하였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귤과 팥죽이 들어왔고 어르신은 요즘아들이 보내온 팥죽을 식사때 수시로 드신다.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밥알보다는 훨씬 목넘김이 쉬우신 모양이다.


청포도는 아직도 소식이 없다.

나는 어르신의 청포도그리움을 케어포에 적었다.


어르신께서 요즘 자주 청포도를 드시고 싶다고 하심.


어르신의 일일 케어상황 기록부인 케어포는 가족들도 온라인상으로 확인할 수 있으므로, 곧 청포도가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가 너무 늦지 않기만을 나는 바란다.


주신 어르신의 요즘 하루하루는
필사의 정신력으로 이어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식사가 끝나면 한달전과도 다르게 요즘은
부쩍 피곤해하며 침상으로 돌아가 눕는다.
그리고 바짝 마른 수수깡같은
육신을 천근만근의 무게로 내려놓으며 한숨 잠에 들어간다.

지금, 가족과 요양원근무자들은 주신어르신이 언제 췌장암의 통증을 호소하시게 될까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다. 다행인지, 아직까지도 암으로 인한 통증은 크게 없는 듯하다.

다만 꼬챙이처럼 마른 육신을 정신력으로 일으켜세우는 일조차 점점 힘들어지는 듯 보일 뿐이다.

어르신에게 하루하루 매순간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능하다면, 어르신의 마지막 날까지도 큰 통증없이 지내시기를 바란다.

그저, 고약한 변비때문에 찌뿌둥하다고만 여기며 한숨 깊게 주무시다가 편안하게 영면하실 수 있다면 좋겠다.


+++췌장암
2020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췌장암은 우리나라 전체 암 발생 순위 중 8위를 차지하고 있다.
췌장암 연간 발생 환자 수는 2000년 2710명에서 2020년 8414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40년에는 1만6170명으로 늘어 간암보다 많은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1996년~2000년 8.7%로 보고되었으나 최근 수술과 항암 치료 등 치료 기술이 발전해 2016년~2020년 15.2%로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아직 췌장암 5년 생존율은 10대 암 중에서 가장 낮아, 다른 암에 비해 예후가 좋지 않은 암으로 알려져 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 발견율이 10% 이하로 매우 낮다. 췌장암을 의심해볼 수 있는 증상으로는 복통, 황달, 소화불량, 체중 감소, 당뇨병 등이 있다.

대부분의 췌장암 환자가 명치나 배꼽 주변에 발생하는 모호한 복통을 호소하지만, 초기 증상이 애매해 진료를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췌장암은 위치에 따라 다른 증상을 보일 수 있는데, 췌장 머리에 췌장암이 발생하면 담도가 막히면서 황달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췌장 몸통과 꼬리 부위에 발생하는 췌장암은 거의 증상이 없다.

췌장암은 정확하게 밝혀진 원인이 없기 때문에 예방법 또한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위험 요인으로 알려진 것들을 일상생활에서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 기간 흡연해온 사람이라면 지금 바로 금연해야 하고, 만성췌장염이 있다면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 고지방·고열량 식사보다는 과일과 야채 중심의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오랫동안 당뇨병을 가지고 있거나 갑자기 당뇨병이 발생했다면 진료를 받아야 한다.

췌장암은 치료가 어렵고 치료 결과 또한 다른 암에 비해 좋지 않다. 이로 인해 췌장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이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제들이 개발되는 등 치료 결과를 높이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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