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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모리 Sep 11. 2021

[절뚝거리는 걸음6] 이른 출근, 혼자만의 시간


시간관념으로만 본다면 평생을 성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단순히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뿐만 아니라 수업시간, 도서관 대출도서 반납기한 등 약속한 시간에 대해서는 칼 같다. 애쓴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집 내력이 그렇다.

우리 엄마아빠는 두 분 다 시간에 철저했다. 엄마는 공과금 지로용지가 나오면 바로 그날 요금납부를 해야하는 사람이고, 줄 돈이 있으면 돈이 생기자마자 줬다. 물론 역으로 받을 돈을 제때 못 받으면 스트레스 받아했다. 아빠도 시간에 쫓기는 걸 엄청 싫어해서, 늘 여유롭게 출발하거나 대기했다.

그걸 보고 자랐으니 우리 삼남매는 모두 시간약속에 철저하다. 나만해도 어린이집, 유치원(어린이집과 유치원은 기억에 없지만 우리 엄마 성격이라면), 초중고대, 대학원까지 모두 지각한 적 없다. 대학원 수료할 때까지 도서관 대출도서도 연체한 적 없다. 몸이 아파 수업을 결석한 적은 있어도, 지각은 없었다.


저번 회사에서부터 일찍 출근하고 있다. 전전회사는 야근이 너무 많아서 9시 정각까지 출근하는 건 아무도 못했고(디자인팀 직원이 9시 40분에 와도 아무도 뭐라 안 했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 9시 10분이 넘어서야 출근했다.), 전 회사로 옮기고부터는 거의 칼퇴근을 했었기에 일찍 출근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일찍 출근하는 게 아니라 일찍 일어난다. 이유는 밤에 더 잘 자려고. 잠드는 게 더 수월하려고.

대부분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 일어난다. 읽는 책이 있으면 30분 정도 책을 읽고 준비해서 출근한다. 늦으면 7시 40분쯤 출발, 이르면 7시쯤 출발. 그 시간이면 막히지 않아서 대개 회사까지 25분 정도 걸린다.


그렇게 일찍 출근하면 회사 보안을 해제하고, 사무실 들어가서 창문을 다 열어 환기를 시킨다. 전 회사는 회사 강아지(래브라도 리트리버)에게 아침밥을 주고 커피머신을 켜서 커피를 내려먹었다. 

지금 회사는 그냥 환기시키고 라디오를 켜고, 컴퓨터를 켠다. 사온 아침을 커피와 함께 먹으면서 가계부를 정리한다. 단순히 소비만 기록하는 게 아니라 한 주, 다음달, 다다음달의 계획을 대충이라도 세운다. 그리고선 책을 읽거나, 업무 시작 전 업무노트를 정리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좋아서(잘 자려고) 하는건데, 이게 관리자급에선 성실하다고 어필이 되나보다.


사무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평화롭고 여유로워서 좋다. 아무 눈치도 안 보이는 시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무실 사람들에게 아직 내가 걷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다. 입사한지 얼마 안 돼서 더 그렇다. 그들이 앉아있고, 내가 서서 걷는 걸 보는 거라 더 움츠러들게 된다. 그래서 그들보다 더 일찍 앉아있기 위해 일찍 출근한다.

난 내가 다리 저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고, 창피하지도 않지만,

뭐랄까, 내 약한 모습을 '들키'는 것 같아서 자꾸만 위축된다.

이건 아직까지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좋아서 일찍 출근하는 나는 성실하다고 어필도 하고, 나 혼자만의 시간도 알차게 쓰고 있다. 일찍 일어나게 된 것에(전엔 수면제 먹고 잤으니 잠끝이 너무 길었다) 감사하고, 일찍 잠들 수 있께 된 것에 너무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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