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2002년,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다른 도시로 전학갔던 친구가 동네에 와서 놀고 있었다. 우리집 앞 사거리쪽을 걷고 있었는데 친구가 말했다. "나 생리대 사러 가야하는데 저 슈퍼에 아저씨만 있어서 못 사러 가고 있어. 아줌마 계시면 사러 가려고 했는데."
그걸 듣고 내가 말했다. "야 아저씨 있는 게 뭐가 창피해~ 저 아저씨도 결혼했고 생리는 여자라면 다 하는건데"
다시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창피하잖아
내가 말했다. "야 내가 사줄게 같이 가자"
그렇게 생리대를 구입함
장면 둘
2012년 대학교 4학년, 과방은 거의 국문과 09학번들의 동기방이었다. 희한하게 우리과 동기 애들은 1학년 때부터 과방에서 죽치고 놀기를 잘했다. 전공수업 직전에 과방에 가면 늘 동기 애들로 북적였다. 특히 4학년 땐 나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길 좋아했다. 다 친구들이어서 편하니까.
아무튼, 4학년 1학기였나, 어느한 날 예기치않게 생리가 터져서 과방에 있던 동기애들에게 "야 생리대 있는 사람?!"이라고 물었고, 그때 저 앞에 있던 여자동기가 다가와 속삭이며 다그쳤다. "야 윤정아 남자애들도 있는데 그걸 그렇게 크게 말하면 어떡해"
장면 셋
2016년 여름, 전전직장에 다닐 때 입사한지 보름밖에 안 된 워킹맘이었던 20대 직원이 병원에 입원했다며 병가를 썼었다. 그 이야길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왜 입원했지? 남편한테 맞았나?"
그리고, 얼마 전 지역 맘카페에 들어갔다 한 날에 본 게시물 두 개는 출산한 여성이 '클리토리스'를 처음 들어봤다고 묻는 게시물과 역시 출산한 여성이 '임신하면 생리 제 날에 나오냐'고 묻는 게시물이었다.
월경을 터부시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월경을 월경이라 하지 못하고 '생리현상'을 줄여 '생리'로 불렀다. 생리대 사러 가길 부끄러워하고, 생리대란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나도 초경 후에 책으로 배웠던 '생리 예절' 중엔 생리대를 돌돌 말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 말고도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손수건에 싸가지고 다녀야한다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멋진 숙녀라면'이 붙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하는 성교육도 백날천날 "정자가 난자와 만나면" 하는 레파토리고, 학부모라는 사람들은 성교육 때 콘돔 쓰는 방법 같은 "불경한" 건 가르치지 말아야 하며 성은 고귀한 것이라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출산까지 한 여성들이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일테다.
성범죄도 그렇다. 우리나라, 아니 전세게 여성 중 가볍게는 성희롱부터 성추행/폭행, 강간까지 당해온 여자보다 안 당해본 여자를 찾는 게 더 빠르다.
인터넷을 보면 허구한 날 "왜 안 만나줘"하며 여성을 죽이고 폭행했다는 기사가 수두룩빽빽이다.
네이버 지식인엔 임신한 와이프 기 꺾는 방법 같은 게 질문으로 올라오고, 여성 취업을 제한해 강제로 결혼하게 하면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것 따위도 올라온다.
"여성 따위가" "감히" 성욕이 있다는 사실이 쓰인 킨제이 보고서가 나온 게 1948년이다. 출간된지 100년도 안 됐다는 거다. 가장 진보적이라는 뉴질랜드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게 150년도 안 됐다. 그 시대 가장 민주적이었던 고대 아테네도 여성은 빈민층, 노예계층과 함께 시민이라고 치지도 않았다. 그나마도 페르시아전을 치르며 노잡이로 참전했던 빈민층 남성은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여성이 우월하다는 게 아니다. 그냥 '공평'하자, '평등'하자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면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