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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모리 May 17. 2021

[절뚝거리는 걸음4] 여름

가장 좋아하는,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

봄이다, 하는 게 석 달쯤 넘어가니 여름이 왔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려 그런지 꿉꿉하고 너무 더워 새벽까지 더위에 잠을 잘 못 이뤘다. 결국 올해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고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이렇게 여름이 왔다. 여름의 더위와 습도는 너무 싫지만-특히 나는 습도가 높으면 너무 더워하는 사람이라- 여름이 주는 생동감과 여름밤의 청량함이 좋다.


뇌혈관질환자인 나에게 약간의 더위는 컨디션을 좋게한다. 더우면 혈관이 살짝 풀어져서 혈류가 잘 도는 느낌. 그도 그럴 것이 뇌혈관질환자에게 추위는 쥐약이다. 추우면 어깨를 움츠리게 되고, 어깨부분이 경직된다. 목 뒤에는 뇌로 바로 가는 동맥이 있는데, 어깨가 경직되고 움츠러들게 되면 이 혈관이 수축되어서 혈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게 된 건 뇌출혈로 쓰러졌던 그 해 여름이었다. 고1 여름방학 때,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요양 겸 읍내 병원에 입원해있던 적 있다. 그때 아빠보러 완행버스를 타고 집에서 읍내로 나가는 길에 온 사방이 초록초록한, 무주답게 선선한 바람이 너무 좋았다. 그땐 마침 '죽었다 되살아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기도 하고 언제 죽을지 모른단 불안함에 매일 잠 못이루던 때여서 온 만물이 눈에 새롭게 들어오던 참이었다. 16년간 당연했던 풍경이 새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본 여름 서울골목. 정말 딱 내가 좋아하는 청량함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했던 드라마나 영화는 대개 여름배경이었다. 커피프린스나 아일랜드, 네멋대로 해라, 김삼순, 명랑소녀 성공기ㅋㅋ, 은하해방전선 등등.

그 여름만의 공기가 좋다. 여름해가 만드는 짙은 그림자도 좋고, 채도가 높아 모든 사물이 찐하게 보이는 낮도 좋다.

 

학창시절 추억도 여름의 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 때 토요일 오전수업 마치고 집에 올 때 장날이면 엄마 미용실은 할머니들이 파마 하느라 바빴고 미용실 들어가자마자 다녀왔습니다 인사하고 '엄마 점심 라면 끓여먹을게~' 하고 3층 올라가서 창문 열어놓고 라면 끓이면 열어놓은 창문에 장날의 시끌벅적한 기분좋은 소음을 BGM삼아 라면을 먹고 티비를 보곤 했었다. 


여름밤은 설천 우리집에서 선풍기 미풍으로 틀어놓고 창문도 열고 살짝 추워서 이불 덮고 누워서 드라마 보면 딱인데. 여름휴가 때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올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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