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 이야기(3)
나는 통장을 스친 월급들의 행적을 쫓는 탐정이 되어보기로 했다. 분명히 회사를 다니며 월에 한번 착실하게 월급을 받았다. 세후 약 200만 원의 돈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연유도 없이 카드빚으로 둔갑했을 리가 없다. 차마 두 눈 뜨고 제대로 쳐다보기도 무서운 카드 명세서를 다시 들여다봐야 했다. 작년 9월 한창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시기의 명세서를 살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 많은 돈이 증발되어버렸을까.
반복적인 내역이 눈에 들었다.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이상을 꾸준히 이용한 곳. 바로 '택시'였다. 출퇴근 왕복 약 25,000원. 주 5일 하루도 빠짐없이 이용했다면 내가 택시로 날린 금액이 자그마치 월 50만 원이다. 드문드문 사용하지 않은 날도 보였지만, 필시 그날은 현금을 썼으리라.
출퇴근 때마다 나는 택시를 이용했다. 아침에 택시를 타러 가면 택시 기사님들은 나의 얼굴을 이미 외워두고 있었다. '아침마다 OO으로 가는 아가씨' 그분들에게 나는 그렇게 기억되고 말았다.
"OO으로 가는 아가씨 왔네!"
매일 아침 택시로 출퇴근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의아함을 느낄 법도 한데. 그분들은 조용히 눈인사만 하고 늘 나의 출근길 메이트가 되어주셨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기억해주는 그분들의 암묵적인 배려가 감사했다. 아침에 내가 택시에 몸을 실으면 구태여 목적지를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택시가 목적지까지 움직였다.
택시는 내가 달아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주는 고마운 교통수단이었다. 버스는 타는 순간 나는 도망칠 구실을 머릿속에서 그렸다. 그냥 이대로 지나쳐서 출근하지 않고 도망쳐버릴까. 환승구역에서 그냥 반대편 버스를 타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버릴까. 시시때때로 드는 충동으로 진짜 정류장을 지나쳐 내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죄책감과 공포심으로 두세 정거장만에 내려서 택시를 잡아 회사로 출근했다.
월 50만 원. 내 월급의 25%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돈은 그렇게 매일 아침 드는 나의 어리석은 충동심을 억제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