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오르고, 온갖 양념과 채소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절정을 살짝 지나치기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흔은 한 움큼 잡히는 옆구리 살에서 시작한다. 술 취한 다음날 아침이 괴로워지고 숙취가 길어지면 마흔도 익어간다. 읽기 위해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고 신문을 점점 멀리 보내면서 마흔의 황혼기로 접어든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중 -
나는 이 책을 30대 후반에 처음 접했다. 그리고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비록 직업도 IT 쪽이고 문과 출신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 선동되어 나만의 책을 쓰는 저자가 되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책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IT에 인문학적 감성을 더한 2권의 책을 쓴 저자가 되었다. 더불어 나이는 마흔을 넘겨, 이 책을 다시 읽고 있다.
나의 마흔은 어떤 모습일까? 정말 걸쭉해진 매운탕처럼 깊은 맛을 내고 있는가? 부끄럽게도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마흔이 넘어서 시작한 무기력증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고, 아직도 확실한 뭔가를 이루지 못한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실망하고 있었다. 벌써 마흔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조바심만 더해갔다. ‘40대가 되면 현실주의자가 된다’고 했던가. 그렇게 나는 마흔에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방황의 시기가 지나고,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 나는 걸쭉해지지 않아도 돼! 나는 이대로 나만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가면 그걸로도 충분한 거야.” 인생은 누구나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경주가 아니다. 이미 늦었다고 단념하지만 않으면 된다. 이 생각이 나를 다시 한번 더 다잡게 했다.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이 오히려 무엇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시기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처럼 천천히 그렇게 나만의 속도에 맞춰서 나아갈 것이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며, 나만의 걸쭉한 인생의 맛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을 마흔이 주는 특혜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언젠가 다시 이 책을 펼쳐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