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랄 앗 딘 알 루미 -
온종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입을 뗍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영혼은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생의 끝을 마치고 싶습니다.
이 취기는 다른 주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곳 언저리로 다시 돌아가면 나는 온전히 취할 것입니다.
나는 다른 대륙에서 온 작은 새. 그런데 이 새장에 앉아 …..
다시 날아오를 그날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 내 귓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듣는 이는 누구인가요?
내 입을 통해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요?
내 눈을 통해 밖을 보는 이는 누구인가요?
영혼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 해답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그 취기로 이 감옥을 부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곳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건 그가 나를 다시 집에 데려다주어야 합니다.
이런 말들 …..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득문득 이어지는 생각들 …..
이 질문들 너머로, 깊은 고요와 침묵에 들어섭니다.
루미의 시를 보며 나는 마흔의 상처를 위로받았다. 실제 우리는 “나는 어디에서 왔나? 무엇을 해야 하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만 왜 이렇게 힘든가?” 와 같은 질문과 함께 마흔을 불혹(不惑)이 아닌, 미혹(迷惑)의 시기로 받아들인다. 안정적일 거라 여겼던 시기에 예상치 못한 혼란과 마주하며, 우리는 삶의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실제 마흔의 시기에 올라오는 수많은 의문은 우리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사춘기가 정체성의 혼란을 준다면, 마흔은 흔들리는 자신과 조우하게 한다.
다행스럽게도 시인 역시 이에 동의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며, 심지어는 ‘내 눈을 통해서 보는 이도, 내 입을 통해 말하는 이조차도 누구인지 모르겠다’라고 한다. 시인에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나의 영혼이 다른 곳에서 왔다는 점’과 ‘자신은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뿐이다.
떠나본 사람만이 그것이 그리움이며,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를 안다. 그것이 떠남의 본질이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긴 여정 중 하나의 '떠남'인지 모른다. 과거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의 여행. 이 여정은 때론 두렵고, 때론 설레며, 때론 고달프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여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신를 찾아간다.
이러한 '떠남'과 ‘자기 발견’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 비행기 조종사는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던 중, 엔진 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서 상당히 운이 나쁜 일이었다. 8일째 되는 날에는 물통에 한 방울의 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때 만난 것이 어린왕자였다. 당시 어린 왕자는 자신의 행성을 떠나 지구로 여행 중이었다. 이 뜻하지 않은 만남이 조종사의 인생에 큰 전환이 되었던 것 같다. 위기 속이었지만, 어린 왕자의 순수한 시선과 질문들은 조종사가 잊고 있던 인생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는 여기서 마흔에 겪게 되는 인생 중간 지점에서의 불시착과 그것이 제공하는 새로운 기회라는 기가 막힌 병존에 주목했다. ‘중요한 것은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항해하는 것’이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와 여정에서 찾게 되는 '진정한 나'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는 마흔의 위기가 우리 행성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꼭 지나쳐야 하는 ‘바른길’이라는 인식이 함께였으면 한다. 그럼 자신의 행성에 돌아가서도 더 빛나는 별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