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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무게에 시달리다

by 엄태형 Feb 28. 2025

한밤에 짐을 쌌다. 아빠는 이불을 두고 침낭을 챙겼다.

이사를 간 곳은 공사장 앞에 서 있는 봉고차였다.

아빠는 내일부터 공사장으로 일하러 간다고 했다.

잠도 오지 않는데 아빠가 계속 훌쩍거린다.

당분간은 학교에 갈 수 없다.

친구들이 지나가면 얼른 고개를 숙인다.

……………

아빠는 밤마다 약속했다.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어!”

하지만 다음 달이 되면 학교 가는 날은 또 다음 달이 됐다.

……………

몇 달 만에 차가 움직였다.

움직이는 차였다!

돈을 꿔 준 사람들이 귀신같이 쫓아왔다고 했다.

그중에는 아빠 친구도 있었다.

아빠는 얼마만큼 잘못을 한 걸까?

아빠가 엉엉 운다.

- 『다음 달에는』 전미화 그림책 -




나는 그림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지인들이 추천해 준 그램책은 꼭 챙겨서 읽는 편이다. 그 중에서 가슴에 와 닿는 책이 전미화 선생님의  『다음 달에는』이다. 그림과 함께 보면 더 깊은 여운을 주니 꼭 한번 읽기를 추천한다.


책에는 아빠와 아들이 나온다. 아들의 시선에서 설명되는 줄거리는 담담하지만, 그 속에 담긴 현실의 무게는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무엇보다 ‘엉엉’ 우는 아빠를 보며 마흔의 우리들은 함께 울고 싶어진다. 책 속의 아빠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팍팍한 삶 속에서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가 왜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는지, 왜 늘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흔의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내가 아빠가 됐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고, 퇴근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 얼굴 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를 버티게 하는 건 동화책 속 아빠와 같은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밤마다 약속했던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어!” 이 말은 아빠의 희망이며,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있다는 것, 이것처럼 숭고한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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