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에 다 나와 있잖아.
요즘 많은 직장인들은 블라인드를 사용한다.
블라인드(Blind)는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소통의 범위 또한 넓다.
같은 회사 동료는 물론이고, 비슷한 업종이나 평소 관심을 갖던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과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실제로 직장인들은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통해 여러 궁금증을 손쉽게 해결하고 있다.
올해 임금 협상 진행사항
경쟁사 과장급 연봉
관심회사의 업무강도
익명성을 등에 업은 유저들은 민감한 정보들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제 우리는 타 부서 사람들과 친해야만 알 수 있던 내용이나 '카더라'로만 접해야 했던 경쟁사의 근무 여건도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접할 수 있다.
어제 블라인드 XX 씨 글 올라온 거 봤어요?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한다는 이점 이면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이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공개적 험담'이 이뤄진다. 근거 없는 비판, 외모 비하, 성과 폄하는 물론이거니와 실명까지 언급해가며 동료나 선후배를 깎아내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상사에게 싫은 소리라도 들은 날이면 블라인드가 시끄러워진다.
'A팀장 그XX, 꼰대야 집에 좀 가라.'
'김 상무님 지잡대 나오신 분이 무슨 전략을 짭니까'
사내 갈등도 자주 발생한다.
특히, 본사와 현장 직원들 간에 서로를 깎아내리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본사 얘네들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도 없는 것들이 워라밸을 따지냐?'
'야 현장 애들아 여름에 땀 흘리기 싫으면 너네도 좋은 대학 나와서 본사로 들어오지 그랬냐?'
몇몇 불만 가득한 직원들이 집단의 생각을 대표하는 것처럼 비치고,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져버린 채 소모적이면서 꽤 유치한 논쟁으로 게시판이 가득 차곤 한다.
상황이 심각해지다 보니, 어떤 부서는 담당 임원의 욕이 올라오면 바로 글을 내리기 위해 댓글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사내 익명게시판을 만들어서 블라인드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에너지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불만을 갖고 계시나요?
블라인드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
칭찬에 인색한 임원
지각을 자주 하는 후배
계속 알려줘도 자주 깜빡하는 신입사원
공개적인 장소에 그들을 전면에 내세워 비난을 하고 여러 명이 똘똘 뭉쳐서 함께 욕하는 게 정당한 걸까?
정작 본인은 뒤에 꽁꽁 숨어서 말이다.
이런 방식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상대방에 대한 아쉬움은 서로 풀어나가는 게 맞다.
나 또한 지독히도 괴롭혔던 상사와 직접 맞선 경험이 있다.
(이전 글)
퇴사하려고 보니 억울하잖아
우린 모두 성인이고 무지성이 아니다.
블라인드 게시판이 무분별한 험담과 마녀사냥으로 도배된 공개처형장이 되는 게 안타깝다.
평소 간지러웠던 곳을 긁어주고, 발전적인 의견이 오가는 소통 창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