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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룡 Aug 12. 2022

퇴사하려고 보니 너무 억울하잖아.

내가 겪은 최악의 상사 이야기 2

빌런 상사 F는 험악한 분위기를 즐겼다.

그는 늘 짜증이 나있었고, 후배들에게 상처되는 말을 즐겨하곤 했다.

"회사에서는 긴장을 해야 돼. 그래서 그러는 거야"

(응, 김장이나 할게)

팀원 모두는 F가 만든 분위기에 위축되었고, 사무실은 절간 마냥 고요해져 버렸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악용해 후배들을 하수인 마냥 쥐락펴락 하는 꼴을 보기가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고, 나의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강자에게 강한 사람이 되기로 굳게 다짐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상대방에게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은 나를 깔보지 않도록 말이다.


1. YES맨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빌런 상사의 요청을 거절하기란 어렵다. 오후 6시, PC를 종료하려던 찰나 아무렇지 않게 술 한잔 하자는 연락에도 yes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거절했다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괴롭힐 것이 뻔했다.

F는 무례하면서도 악독했다. 기본 원칙을 정해야 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 또한 F를 배려하지 않기로 했다.'


F : "토요일 저녁때 시간 되나? 우리 집 근처에서 한잔하자".

말룡 : "부모님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힘들 것 같습니다.".

F : "하.. 그래? 일요일에 보자 그럼."

말룡 : "아, 그날은 교회를 가야 해서 안될 것 같은데요."

나는 있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 삼았고, 어떨 땐 크리스천으로 빙의해서 그의 요구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요구를 거부당한 F는 출근한 순간부터 나를 괴롭히기 위해 폼 잡고 있는 게 보였다. (부들부들)


F : "야, 너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거 전부 진행사항 정리해서 회의실에 띄워놔."


뜬금없는 요구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고, 이 정도에 물러서면 말짱 도루묵이라 생각했다. F는 팀 전체 인원을 회의실로 소집했다. 그리고 나를 앞에 홀로 세워놓았다. (취조하니...?)

잔뜩 인상을 쓰고는 최대한 카리스마 있는 척하며, 뜬금없는 업무 보고를 지시했다.

(그래 이 XX, 이렇게 나를 X 먹이려고 하는구나.)

당황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차근차근 브리핑을 시작하려는 찰나, 역시나 F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풍 질문과 욕설 섞인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주변 동료들도 어리둥절해했고, 그의 억지스러운 지적질은 계속됐다.


F : "야, 넌 진짜 생각이 없다. 숫자는 ARIAL체로 해서 진하게 하라고 했잖아. 보기 안 좋잖아.

누가 엑셀로 정리하라고 했어?. 옆에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 넌 그래서 안...(뒷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에라, 모르겠다.


혹시 주말에 술 먹자고 한 거 거절해서 이러시는 겁니까?


이 말을 처음 꺼내는 건 어려웠지만, 그다음부터는 방언 터지듯이 날 선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면, 지난번에 회사 콘도 잡아달라는 부탁 거절해서 그런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이사할 때 일 손좀 도와 달라는 고 한 거 안 가서 그러시는 건지?

그게 아니면..."


F : "그... 그만 얘기하자. 바쁜데 회의는 그만하고 각자 일 봐." 


그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자기 자리로 앉아 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 3일 동안은 내게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그도 자신의 행동이 부당하고, 부끄러운 걸 아는구나 싶었다. 이 얘기가 회사에 소문이 나면 자칫

직장 내 괴롭힘 상사로 낙인찍힐까 걱정하는 건가 싶었다. 어찌 됐든 F는 나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별거 아닌 녀석이었다.


2.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험담에는 험담

우리 팀 조직은 팀장 - 매니저 - 실무 순으로 수직구조를 띄고 있다. 여기서 F는 매니저 직책이었고, 나는 실무자 선임 위치였다. 그 위에 팀장님이 한 분 계셨는데, F는 그의 앞에서는 자신이 MZ세대와 기성세대를 연결하는 이해심과 배려심이 충만한 관리자인 양 연기했다. 발연기도 그런 발연기가 없다.

어느 날, 팀장님이 나에게 면담을 하자며 따로 회의실로 불러냈다. 개인적으로 면담을 하는 분이 아니라 좀 의아했고, 그의 첫마디는 더욱 황당했다.


팀장 : "F가 너를 다른 부서로 옮기겠다고 얘기하더라. 네가 팀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 같다던데... 확인을 좀 해보고 싶어서 불렀어".

아...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려고 했구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악역이구나 싶었다. 나도 F에게 악역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말룡 : "저는 팀에는 불만 없습니다. F에게만 불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생략) 온갖 부조리한 행동을 최대한 팩트에 기반해서 전달했다.

팀장 : "음...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구나. F가 내 욕도 많이 하고 다니는 거 같더라. 너희 괴롭히는 것도 분위기 보면 딱 보여."


팀장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됐다. 팀원들 모두 순차적으로 면담했고, F를 다른 부서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그를 마주치지 않아도 됐다.

통쾌했고 후련했다. 만약에 힘든 시기에 좌절하고 도망쳐 버렸다면, F는 계속해서 후배들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다.

어느 조직에나 확률적으로 몇% 정도는 소시오패스가 존재한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누구든지 빌런을 마주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임에도 사람 한 명 잘못 만나 퇴사를 선택하는 건 꽤나 억울한 일이다.


퇴사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나의 선택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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