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욱 Aug 27. 2017

점보 이야기

B747에 점보란 별명이 붙은 사연

 

    요 몇 년 사이에 제주공항에서 B747‘점보’를 자주 본다. 초대형 여객기로 국가대표급의위상으로 세계의 하늘로 날던 점보가 A380이 취항하면서 이제 국내선으로 전역한 것이다. 그나마 가장 긴 노선인 김포~제주 노선에 취항하는 덕분에 제주공항에서도점보를 보는 일은 특별한 것도 아니다. 나는 점보 3대를 동시에 본 적도 있는데, 그땐 공항이 정말 비좁았다.  

    주기장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점보, 토잉카에 스르르 뒤로 밀리는 점보, 활주로를 내달려 우아하게 이륙하는 점보,…이 점보를 보노라면 매끈한 유선형의 고래가 생각난다. 하지만 B747에붙은 별명 점보 Jumbo는 아주 유명했던 코끼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점보 코끼리. 위키백과사전 자료


    1862년에 아프리카 북동부지역에서 나이는 1~2세 정도, 키는 1m 정도 되는 새끼 코끼리 한 마리가 생포되었다. 파리동물원에 입주한 이 코끼리는  유럽 땅에 발을 디딘 최초의 아프리카코끼리였다. 3년을 파리에서 지내다가 런던동물원의 코뿔소와 맞교환되어 런던으로 건너갔다. 코끼리의 이름은 '점보'였다. 점보의 정확한어원은 알 수 없지만,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인사(잠보) 혹은 우두머리(점베)에서온 것으로 보인다.

    런던에 건너왔을 무렵, 점보는이미 키가 3.3m에 몸무게는 5톤을 넘는 육중한 코끼리였다. 그래서 점보는 귀여운 아기 코끼리의 이미지보다는 ‘뚱뚱보’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성격은 순했던지 점보는 등 위에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며 동물원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동물원은 점보 위에 타는 값으로 2펜스를 받았고, ‘과자를 주면 코로 받는~' 즐거운 체험을 하는 데 2펜스를 받았다. 아이들은 점보의 등에 타거나 과자를 주는 체험을 좋아해서 부모들을 졸라댔다.점보는 역사상 최초의 동물 슈퍼스타가 되었다.

    16년 동안 잘 지냈는데, 위기가 왔다. 사람과 비슷한 수명을 가진 코끼리인지라 스무 살 정도가 된 1881년부터 '사춘기'가 찾아왔다. 영원한 아기 코끼리로 재롱을 부리며 지낸다면 정말 좋겠지만, 유전자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핏속으로 쏟아져 나오자 점보도 질풍노도의 극심한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꼬맹이들도변성기에 접어들고 수시로 버럭 화를 내는 나이가 되면 '중2병'이라며 어른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데, 광활한 초원에서사자를 밟아 죽일 수 있는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아프리카 수컷 코끼리를 사람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가두어두고 쇄사슬로 묶어둘 수밖에…  

    런던동물원은 별로 망설이지 않고 점보를 미국의 동물 서커스단인 <바넘 앤 베일리 Barnum& Bailey Circus>에 팔아버렸다. 점보의 매각 소식이 알려지자 전 영국이 들썩거렸다. 영국의 자랑거리를 미국에 팔아버리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라며 영국 전역에서 매각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꼬맹이들은서툰 글씨로 쓴 탄원서를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냈다. 하지만 열화와 같은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1882년 봄에 ‘청년; 코끼리점보는 대서양을 건너갔다. 점보에겐 세 번째 대륙이었다.

    대서양 뱃길은 보름 정도 걸렸는데 그동안 점보는 술에 절여졌다. 바다 한가운데서 난동이라도 부리면 큰일인데, 무엇으로 코끼리를 잠재울수 있을까? 엄청난 술을 먹이는 수 밖에. 뉴욕항에 도착한 점보는 16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실려 서커스단이 진을 치고 있는 메디슨 스퀘어가든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상 최대의 쇼'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미국에서도 영국 못지않게 '대박'을 터뜨렸다.


배넘 서커스 포스터. 1882년. 위키백과사전 자료.



    미국에서 점보는 생각 외로 사나워지지도 않고 고분고분했다. 키도 점점 더 자라 4m에 육박했다(공항을 오가는 리무진 버스의 높이도 3.5m에 불과하니 그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뚱뚱보'의 대명사였던 점보, 이제 미국에서는 '아주 큰 것'의 대명사가 되었다.  


점보는 아주 큰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제주국제공항. 박지욱 사진.

 

    하지만 무대 조명이 꺼지고 나면 가혹한 학대와 그 학대를 견디게 해줄 4리터의 위스키가 점보를 기다렸다. 점보는 서서히 '알코올중독 코끼리'가 되어갔다. 뉴욕은 술로 코끼리를 다잡은 것이다. 술이 점보를 망가뜨린 걸까? 미국에건너간 이듬해부터 점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후에 철길을 건너다가 화물열차에 부딪혀 죽고 말았다. 1885년 여름이었고 점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점보의 죽음. 위키백과사전 자료.

 

    최초의 동물 슈퍼스타였던 점보의 죽음을 전 세계가 애도했다. 하지만 점보의 주인은 점보의 심장은 코넬대학교에 팔고, 뼈는 추려서골격 표본을 만들어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하게 했다. 가죽은 벗겨서 실제보다 조금 더 큰 박제로 만들어 보스턴의 터프츠대학교에 기증했다. 대학은 점보를 학교의 마스코트로 정했다(실물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대한항공 배구단의 이름도코끼리 점보.

 

    점보의 죽음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41년,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아기코끼리 덤보 Dumbo>를 내놓았다. 주인공인덤보는 서커스단의 엄마 코끼리 '점보'의 새끼로 '점보 주니어 Jumbo Jr.'란 이름 대신 멍청이, 바보, 얼간이란 뜻인 덤보로 불렸다. 점보 주니어가 덤보가 된 이유는 몸치인 데다가 귀가 너무 커서 곡예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장에게 갖은 수난을 다 당하던 덤보, 하지만 엄마 코끼리 점보의 격려에 힘입어 신체적인 결함인 큰 귀로 맘껏 하늘을 날게 되었고, 서커스단의 스타가 되면서 행복하게잘 살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같은 시기, 미국 해군은보잉사가 만든 폭격기 B-17 ‘플라잉 포트리스FlyngFortress(날으는 요새라는 뜻)’를 개량한 해상의 수색 구조기를 개발했다. 해군은 이것에 '덤보, 플라잉엘리펀트Dumbo, Flying Elephant(하늘을 나는 코끼리라는 뜻)'라는 별명을 붙였다. 더 나아가서 나중에는 해상 수색 구조 임무를아예 '덤보 임무(Dumbo mission)'이라 불렀고이런 임무를 도맡은 비행정이나 SB-29 플라잉 슈퍼 포트리스 같은 해상 수색 구조기들을 기종 구별없이 모두 덤보로 불렀다(625전쟁에 투입된 덤보는 SB-29 로 B-29 폭격기의 개조형이다). 덤보기는 해상 수색 구조기란 의미가된 것이다.

덤보기로 쓰인 보잉 SB-17G. 위키백과사전 자료.

 

    1969년에 보잉사는 역사상 가장 큰 제트여객기 보잉 747을개발해서 띄우기 시작했다. 기존의 대형 여객기였던 보잉 707에 비해 무게는 두 배나 되며, 최초의 광동체 (복도 2줄이나 될 정도로 폭이 넓은 동체) 여객기였고, 3세대 제트 여객기였다. 승객은 무려 374명이나 태울 수 있는 역사상 가장 큰 초대형 여객기였다. 그런데 여기에 점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설에는 보잉사가 미리 준비한 별명은'슈퍼 에어버Super Airbus'였다고 한다. 하지만한 언론사가 '엄청나게 큰' 코끼리 점보를 떠올리게 한다고 '점보'라고 불렀고, 이것이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바람에 회사도 그 이름으로 정했다고도 한다. 지금도 점보 제트기, 점보 택시, 점보 기저귀, 점보버그, 점보 세트, 등등..에 점보는 ‘큰 것’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하지만 아기 코끼리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들이 어렸을 때 빨간 램프가 켜지고 엔진 소리가 나는 장난감 여객기한 대를 사주었다. 물론 '점보제트'다. 지금도 장난감 가게에 가면 제일 흔하고 눈에 띄는 것은 콩코드도, A380도, B777도 아닌 여전히 ‘점보제트’다. 점보 코끼리는벌써 죽었지만, 점보제트기는 여전히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완전히 혁신적인 제트여객기가 나오지 않는 한 점보의 명성은 아마 한 세대는 더 갈 것 같다.


B747 점보. 박지욱 사진

                                      


이전 05화 <타우베>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